저항인 함석헌 평전/[10장] 매국외교 반대의 격랑 속에서

2013/01/18 08:00 김삼웅

 

 

 

1999년 신문ㆍ방송ㆍ통신사ㆍ편집ㆍ보도국장과 언론학 교수들에 의해 한국의 ‘20세기 최고언론인’으로 선정된 송건호는 1971년 <언론인 함석헌>을 썼다. 몇 대목을 뽑아본다.

함옹은 이른바 직업적 언론인으로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인물이면서도 이 양반이야말로 죽은 언론계가 언제나 생기와 양심과 용기를 붙어 넣어주는 참된 언론인으로서 높이 평가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함옹을 누구도 언론인이라고 보지 않는데도 기실 이 분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아마 가장 진정한 언론인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바로 이 점(자유롭고 독립된 지식인 - 필자)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칭 언론인이 구름처럼 많은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진짜 언론인으로서 활동해 온 것은 이 분의 그 아무것에도 매어 살지 않는 자유롭고 독립된 생활이 한 조건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함옹이 기자들이 우글우글한 신문사 밖에 있으면서도 빛나는 언론활동을 하게 된 것은 이른바 언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언론 활동이 상대적으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직업적 언론인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한 시대의 본질적 문제에 핵심을 찌르는 비판활동을 벌인다. 이런 때의 함옹 글은 비수보다도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글이 된다. 그래서 흔히 권력자들은 함옹을 옥에 가두기도 하고, 그가 내는 잡지를 압수처분하기도 하고, 그를 위협, 겁을 주기도 하고, 때론 미행ㆍ감시ㆍ연금하기도 하며 그의 글을 꺾으려고 하였다.

지킬만한 재산도 없고, 보호할 만한 감투도 없고, 유지하여야 할 정치적 지위도 없었다.
함옹은 철저하게 무욕하고 따라서 잃을 것이 없는 노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의 빛나는 언론활동은 바로 이러한 ‘무욕의 지위’에서 나온 정론이었다.
(주석 17)

송건호의 글을 인용한 것은 언론계 사주들이 서울 시내 중심가에 거대한 사옥을 짓고, 언론인들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비틀거리는 제도언론의 타락에 대해 질타한 모습을 찾기 위해서이다.

함석헌은 <사상계> 1967년 1월호에 <언론의 게릴라전을 제창한다>는 권두시론을 썼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장준하를 면회갔다가 청탁받아 쓴 글임을 서두에 밝혔다.

말인즉, 대통령을 밀수 왕초라 했고 존슨이 온 것은 한국 청년의 피를 더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것은 꺼리가 될 뿐이고, 정말 까닭인즉 군사정권 이래 오늘까지 이 정권과 싸워왔기때문 아닌가? 존슨이 왔던 것이 월남전쟁 때문인 것은 과학적인 사실 아닌가? 대통령이 밀수 왕초라 하는 것은 춘추필법 아닌가? 이 나라 모든 일의 책임이 잘잘못 간에 나 대통령한테 돌아갈 것은 정한 일 아닌가? 그럴라기에 대통령으로 놓은 것이지, 만일 아무 책임 아니진다면 무슨 대통령이라 할 것이 있나? (주석 18)

함석헌은 송건호가 지적한대로 “언론을 업으로 하는 자들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을 때 거침없이 이른바 ‘성역’을 비판하였다. 당시 언론은 박정희를 성역화하면서 직접 비판에서 비켜갔다. 함석헌은 예외였다.

좋기는, 이상대로 된다면, 현 대통령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여 한 번 용퇴를 하는 일이다. 공화당 당수를 그만두고 대통령 입후보를 아니할 것을 선언해 주는 일이다. 그렇기만 한다면 일은 훨씬 쉽고 나라를 위하여 참으로 축제할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설혹 그럴 마음이 있다하더라도 그 주위의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능히 물리치는 데가 그의 정치가로서의 성의와 역량을 증명하는 데다. 한 사람의 값이 큰 것을 또 한 번 생각한다. (주석 19)

함석헌은 박정희가 공화당 대표와 차기 대선 후보로 나오지 말고, 당장 하야할 것을 제의한다. 야당 대표라도 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함석헌이 이 글에서 제기한 문제는 언론(인)의 책임, 나아가서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한 족벌신문에 대해 ‘게릴라전’을 펴라는 주장이다. 해방 이후 이 같은 발언은 최초였다. 금단의 성역에 불화살을 쏘았다.

다음에 오는 선거가 성공이 되거나 실패가 되거나, 실패되면 될수록,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언론의 게릴라전이다. 국민의 양심을 대표하던 사상계가 경영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읽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계획적으로 하는 압박 때문이다. 이것이 전쟁에서 대규모의 정규군의 싸움의 시대가 지나가고 게릴라전이 그 승부를 결정하듯이, 언론에서도 큰 신문 큰 잡지로 여론을 지배해가던 시기는 지나간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규군이 깨지면, 그 패잔부대를 무수한 게릴라부대로 재편성하여 대부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방방곡곡을 보내어 도리어 승리를 거둘 수 있듯이 우리 사상의 싸움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전차 간에서나 버스 간에서나, 결혼식에서나 장례식에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우리의 정의혁명 사상을 고취하고 지금 잘못된 정치의 비판을 하자는 것이다.

새해에는 그대로만 올 수 있을 것이다. 폭력정치, 정보정치, 당파주의의 정치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와야한다. 천지에 버젓한 정의혁명을 청천 백일에 내놓고 생활로 하잔 말이다.
(주석 20)

함석헌이 주창한 ‘언론게릴라전’은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오늘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제도언론(인)의 과제가 되어 있는 한편 진보신문의 창간과 주간지, 월간지와 특히 인터넷신문과 방송, 각종 전자 매체가 속속 나타나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주석
17> 송건호, <언론인 함석헌>, <씨알ㆍ인간ㆍ역사>, 26~29쪽, 발췌.
18> 함석헌, <언론의 게릴라전을 제창한다>, <사상계>, 1967년 1월호, 16~17쪽.
19> 앞의 책, 20쪽.
20> 앞의 책,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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