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0장] 매국외교 반대의 격랑 속에서

2013/01/17 08:00 김삼웅


 

 

함석헌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명상과 독서를 하는 한편 또 한 권의 저서를 펴내는 데 열중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오산고보에 재직하면서 1936년 5월호부터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를 연재하였다. ‘조선역사’의 자매 편인 셈이다. <성서조선> 제88호부터 110호까지 2년여에 걸쳐 연재한 세계역사였다. <성서조선>이 폐간되면서 이 연재도 중단되었다. 함석헌은 해방 뒤 <영단(靈斷)>에 썼던 글까지 모아 책으로 묶었다.

함석헌은 해인사에서 ‘조선역사’를 보완, 개작한 것과는 달리 ‘세계역사’는 예전에 쓴 글 중에 골라서 펴냈다. 제목도 ‘성서적 입장에서 본’을 빼고 <역사와 민족>으로 바꾸었다.

<성서조선>이나 <영단>에 냈던 글을 묶어 책으로 내자는 의견이 왔습니다. 그럴 때 나는 반대했습니다. 내자는 이의 말은, 그 글들이 나왔을 때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말하자면 한 구석에서 된 것이니 이제 그것을 다시 내놔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이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으므로 그럴 마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자는 이의 주장은 또 이러했습니다.

지금 생각이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요, 옛날 생각이라고 다 그른 것도 아니며 또 일단 내는 다음에는, 내 생각이라 해서, 거기 독재권을 쓸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번 의논이 오고 간 끝에 그 중에서 비교적 내 마음에 허락이 되는 것을 후린 것이 이것입니다.
(주석 12)

함석헌은 당초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 그리고 동기집회에서 발표한 기독교사를 3부 자매편으로 낼 계획이었으나 ‘기독교사’는 원고를 잃어서 영영 햇볕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정말 어려운데 빠졌습니다. 정말 깊이 생각할 때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고 ‘어떻게, 어떻게’ 하고 ‘방안’을 찾아서 미치나, 방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속 그 자체가 잘못됐는데, 깊이 생각이라 했지만, 무엇이 깊은 것이겠습니까? 독자적으로, 나로서 하는 것 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뒤져 왔던 방구석을 또 다시 뒤지는 모양으로 그런 심리로 지나간 날에 했던 생각을 또 다시 뒤집어 봅니다.
(주석 13)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일반에 비교적 많이 알려진데 비해 <역사와 민족>은 덜 알려진 편이다. 책은 △ 서언 - 우리들의 세계역사, 성서사관과 진화론에 이어 △ 창시시대 △ 성장기 △ 민족 위에 나타난 신의 섭리로 큰 장을 나누었다.

△ 창시시대 - 1. 우주의 창조. 2. 생명의 창조. 3, 인류의 출현까지. 4. 인류의 진화. 5. 인간의 특질. △ 성장기 - 1. 석기시대. 2. 지리와 인종의 배포. 3. 요람 안의 여러 운명. 4. 종교. 5. 무력국가. △ 민족 위에 나타난 신의 섭리 - 1. 서풍의 노래. 2. 프로테스탄트의 정신. 3. 순교의 정신. 4. 하나님의 정의. 5. 산 신앙. 6. 무교회 신앙과 조선. 7. 존재하는 종교. 8. 제2의 종교개혁. 성삼문과 스테반. △ 20세기의 출애굽 - 1. 민족 위에 나타난 신의 섭리. 애소랜도의 발시로 구성되었다.

함석헌은 이 책의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프로테스탄트의 근본 정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려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프로테스탄트라는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명사는 그 사물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그가 지는 성질을 단적으로 잘 나타낸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의 근본이 되는 프로테스트 라는 말은 번역하여서 ‘반항한다’, ‘항의한다’, ‘선언한다’, ‘공증한다’ 등의 말로 된다. 대체로 말해서 자기의 주장을 공공연히 선언 증거한다는 말로 전투적 기분이 짙은 말이다. 곧 의가 불의에, 진리가 사론에, 선이 악에 강압을 받을 때에 프로테스탄트가 일어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프로테스탄트, 그 주의를 프로테스탄티즘이라 한다. 이 명사의 해석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위인(爲人)이 어떠함은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재미 있는 것은 이 명사가 프로테스탄트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고, 반대자가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제 2스파에르회의 때에 정통파 구교 사람들이 그 결정한 법안에 반항한다 하여서 그들을 불러 프로테스탄트 곧 반항자라 경멸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후에는 자타가 다 승인하여 공용하게 되었다.
(주석 14)

함석헌은 프로테스탄트였다.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을 잇고자 하였고, 그 정신으로 압제자들에게 대들었다. 기독교가 근본정신을 잃고 타락하자 이를 비판하고, 독재권력과 야합하자 거침없이 떠났다. 하지만 기독교의 기본인 성서를 죽는 날까지 놓지 않았다. 그 대신 저항을 통해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함석헌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 그 원류를 설명한다.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의 배후에는 중세의 종교적 질곡에 반항하는 문예부흥 이래의 자유사상, 인문주의사상이 흘러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불충분하다. 한층 더 올라가서 바울주의에서 우리는 근원은 찾을 수 있다. 바울은 그 자신이 주장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 같이, 무엇보다 자유독립의 사람이다. 유대교의 율법주의, 의식주의(儀式主義)의 묵은 물결이 때때로 침입하려는 모양을 보고는 그는 열화 같이 일어서서 신앙의 자유독립을 외쳤다. 갈라디아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알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의문(儀文)의 노예가 아니요, 신앙에 의한 자유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여 온 유대교도들을 상대로 싸우는 바울은 프로테스탄트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석 15)

함석헌은 또 이 책의 <하나님의 정의>편에서, 양심이 마비되고 진실을 보는 눈이 까막눈이 된 사람들을 질타한다.

눈먼자야, 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네가 죽음 구렁이 속에 빠져죽고 생각이 없거든 두드려라. 열심히 두드려라. 정의의 빛이 있을 지어라 하며. 그러면 네 눈을 덮은 두터운 암흑의 빗장이 깨어지고, 눈이 부신 정의의 빛이 스스로 나타나 네 앞을 환하게 비칠 것이다. 만고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정의다. (주석 16)


주석
12> 함석헌, <역사와 민족>, 머리말, 제일출판사, 1964.
13> 앞과 같음.
14> 앞의 책, 242~246쪽.
15> 앞의 책, 249쪽.
16> 앞의 책,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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