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10장] 매국외교 반대의 격랑 속에서 2

013/01/16 08:00 김삼웅

 

 

플리커(@Dan Stovall)

함석헌의 비폭력주의는 투항이나 패배주의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비폭력저항이었다. 독재세력과 싸우되 비폭력으로 저항하자는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사상을 배운 것이다. 그의 “비폭력이라는 좁고 곧은 길 외에는 희망이 없다”면서 “진리는 곧을 때는 금강석 같으면서도 연할 때는 꽃 같은 것이다”란 신념대로였다. “오직 비폭력만이 인류의 희망”이란 간디의 철학은 바로 함석헌의 철학이었다. <사상계> 1967년 2월호에 쓴 <저항의 철학>에서 잘 나타난다.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인격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엇인가? 자유하는 것 아닌가? 우선 나는 나다 하는 자아의식을 가지고, 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는 자주하는 의지로써, 내 뜻 대로 내 마음껏,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이다.
(주석 7)

다음은 앞 장에서도 인용하였지만, 함석헌의 저항사상의 핵심 부문이다.

저항! 얼마나 좋은 말인가? 모든 말이 다 늙어 버려 노망을 하다가 죽게 된다 해도, 아마 이 저항이라는 말만은 새파랗게 살아나고 또 살아나 영원의 젊은이로 남을 것이다.
아마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하던 그 말씀은 바로 이 말 곧 ‘저항’이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고? 말씀은 근본이 반항이다. 가슴 속에 갇혀 있지 못해 터지고 나오는 기(氣) 즉, 음(陰)한 주머니 속에 자지 못해 쏟아나오는 정(精), 맨숭맨숭한 골통 속에 곯고 있지 못해 날개치고 나오는 신(神), 그것이 곧 말씀이다. 깨끗하다는 동정녀의 탯집도 그냥 있을 수는 없어 말구유 안으로라도 박차고 나오는 아들이 곧 말씀이다.
(주석 8)

함석헌의 저항정신을 연구한 송기득(한신대) 전 교수는 “함석헌의 저항은 단순히 인간의 개체적 존재와 삶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사회와 역사의 현장에서 육화(肉化)시켰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역사적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는 데 그것은 그대로 ‘존재적 저항’의 연장이다. 그는 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보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에게 있어 전체이다.” (주석 9)고 분석한다.

송기득의 분석대로 함석헌의 저항은 역사적이었다.
일제로부터 시작된 그의 저항은 소련,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에게까지 이어진다.

“정치가 깡패식 폭력주의로서 민중을 억압하는 채제로 나갈 때 그것은 함석헌에게 있어서 무섭게 저항하는 상대로 부상한다.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어떤 이유로서도 민중을 억누를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주석 10)

함석헌이 좋아했던 러시아의 저항인 베르쟈예프는 “나는 일생을 통하여 저항인이었다”고 고백할만큼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역사의 위대한 반역에 모두 찬성투표를 한다고 했다. 루소의 ‘자연’의 반역, 프랑스혁명의 반역, 객체의 권력에 대한 관념론의 반역,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반역, 이성과 도덕에 대한 니체의 반역, 사회에 대한 입센의 반역, 역사와 운명에 대한 톨스토이의 반역 등 모두가 베르자예프의 반역과 동질적인 것이었다.” (주석 11)는 평가는 함석헌이 이은 비판과 저항정신이다.


주석
7> <사상계>, 1967년 2월호, 10쪽.
8> 앞의 책, 13쪽.
9> 송기득, <함석헌의 저항론>, <씨알, 인간, 역사>, 88~89쪽.
10> 앞의 책, 89쪽.
11> 신민현, <저항의 자유인 베르쟈예프>, <기독교사상>, 1970년 4월호,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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