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평전/[4장] 전두환 타도의 전위 ‘민청련’ 이끌다

2012/07/16 08:00 김삼웅

 

 

민청련 조직의 준비팀은 누구를 대표로 세울 것인가를 두고 여러 사람을 접촉하였다. 안양로ㆍ조성우ㆍ장영달ㆍ조영래ㆍ장기표ㆍ최민화ㆍ장명국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거론되었다. 모두 유신체제에서 학생ㆍ청년운동에 앞장서온 인물들이었다. 여러날 동안의 검증과 토론, 거론 인사의 접촉 끝에 김근태를 내정하였다.

공개청년단체 준비팀이 대표를 선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게 염두에 둔 점은 노동운동 등 기층 민중운동 현장과의 유기적 연계성이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노동운동 등의 언더조직 연계가 안되면 대중적 기반을 가지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략) 대표 논의에서 김근태라는 이름이 계속 부상되자, 이해찬ㆍ이범영 등이 김근태를 직접 만나 부탁하기에 이른다. 김근태는 당시 인천산업선교회에 적을 두고 노동운동을 지도하면서 한편으로는 공개운동을 뒤에서 지원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양쪽에서 모두 인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근태는 처음 제의에서는 대표직 수락을 사양했다. (주석 7)

김근태는 민청련 대표를 맡아달라는 준비팀의 제의를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우선 그동안 어렵게 피해온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렵고, 자신에게는 과분한 자리라는 것이었다.

그 사양의 논거는 두 가지 이유였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는 학생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근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수배상태로 있었지만 정작 감옥은 가지 않았는데 공개운동판에 나가면 감옥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인간적 두려움이 있었고, 또한 전 민주화운동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는 과분한 자리라는 생각에 선뜻 수락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표직을 사양한 김근태에게 이해찬, 박우섭, 이범영보다 선배인 조성우, 최민화, 이명준까지도 가세하여 대표직을 수락할 것을 간청한다. 그리고 결국 김근태는 대표직을 수락하는데, 이는 매우 친한 후배였던 최민화의 강력한 주장이 가장 영향이 컸다고 본인은 술회하고 있다.
(주석 8)

2ㆍ8독립선언이나 3ㆍ1독립선언서의 서명은 고난을 각오하는 길이었다. 특히 대표자의 경우는 감옥 이상을 각오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누구나 뜻이 있다고 하여 그 자리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위치였다. 김근태는 중의에 따라 “민주화운동 역량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조직운동으로 기반을 잡아가는 단계” (주석 9)의 민청련 대표에 피선되고, 예상했던 대로 혹독한 고난이 뒤따랐다.

민청련 결성식날 오전 준비팀은 거사를 앞두고 이승만 독재와 싸우다 희생된 4.19 민주인사들의 희생정신을 따르기를 다짐하고, 여기서 멀지 않은 산속에 자리를 잡은 무명독립군 묘소를 찾아 참배하였다. 독립운동과 4월혁명의 정신으로 싸우겠다는 행동과 마음은 비장감이 서렸다.

창립대회는 대회가 마칠 때까지 경찰이 참가자들의 입장을 막았을뿐, 대회는 방해하지 않았다. 사전에 집행부에서 경찰당국과 협상하기를 집행부 임원들이 행사 뒤 자발적으로 연행당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이 역시 1919년 태화관에서 3ㆍ1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민족대표들이 자진해서 일경에 연행되었듯이 민청련 집행부는 행사 뒤 자발적으로 연행에 응했다. 연행된 19명 중 김근태와 장영달ㆍ박우섭ㆍ연성만 등 6명은 집시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날 민청련 결성대회에는 지도위원으로 내정된 함석헌ㆍ문익환ㆍ예춘호ㆍ이문영ㆍ함세웅ㆍ김승훈ㆍ권호경 등 재야 원로와 정의구현사제단의 가톨릭 신부와 기독교 목사 등 3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가택연금으로 참석이 저지되었다. 지도위원 중에는 임채정ㆍ김종철 등 동아투위 출신이 간신히 참석하였다.

연행당한 다른 사람들은 금방 풀려났으나, 집행부 6명은 며칠 조사받으며 못나왔는데, 안기부는 집요하게 김근태 의장에게 해체 성명서를 내보이며, 서명 날인하라고 강요했다. 안기부에서는 김근태 의장에게 “서명 날인하고 나가서 민주화운동을 하면 누가 뭐라고 그러겠느냐, 눈감아 주겠다. 협조하면 청와대에 훈방하기로 그렇게 보고를 했으나 끝내 서명을 안하면 재수사에 들어가 구속시키겠다” 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청련 해체는 의장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의해야 하는 일이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나는 할 수 없다” 면서 버텼다. 이 당시 김 의장은 속으로 “지금 내가 구속되면 안 되는 상황인데, 구속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 안 들으면 구속하겠다는 엄포에 긴장도 하고 오금도 저렸지만 한편으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구속한다면 구속되어도 좋다. 구속되어 감옥에 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 고 각오를 단단히 하며 끝까지 버텼다.


그럼에도 결국 김근태 의장은 석방되었다. 민청련 사람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의장이 저렇게 버텨도 구속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용기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석 10)

 




김근태를 비롯하여 집행부 간부들은 민청련을 결성할 때 이미 구속을 각오하고 시작하였다. 그래서 인신 구속에는 별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나 조직이 와해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근태의 의연한 태도는 간부와 회원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창립대회를 ‘무사히’ 마친 민청련은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근처의 파고다빌딩 504호실을 김근태의 부인 인재근 명의로 임대하였다. 출판사를 차린다는 이유를 댔다. 입주 및 현판식은 9월 29일 오후 회원 12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현판은 사회부장 연성수와 부인 이기연이 제작한 두꺼비를 상징하는 나무 재질이었다.

민청련 간부들은 결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징으로 두꺼비를 내세웠다.
두꺼비는 새끼를 가지면 낳기 전에 뱀을 약올리고 싸우다가 뱀에게 잡혀 먹는다. 두꺼비는 결국 죽게 되지만 뱃속의 새끼들이 그 뱀을 자양분으로 삼아 알을 깨고 나온다. 즉 자신을 죽여서 뱀을 죽이고 새끼를 살리는 살신성인의 정신이다. 민청련 회원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민중을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민청련은 깃발을 든 동학농민군에 빙 둘러쌓여 있는 두꺼비를 탱크처럼 그린 판화를 제작, 민청련 기관지 <민주화의 길>의 표지에 로고처럼 실었다.

민청련 집행부와 회원들의 ‘두꺼비 정신’은 치열했다.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살리고, 민족통일을 이루겠다는 신념이었다. 연성수의 담시에서 신념의 일단을 찾게한다. 집행부의 사회부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되었던 연성수는 1986년 3월 25일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뱀이 두꺼비를 삼키다>라는 담시를 읊었다. 그는 결심공판을 받을 당시 폐결핵 등 여러 가지 병을 앓으면서도 10일간의 단식을 결행하면서 담시를 구상했다.

뱀이 두꺼비를 삼키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다오
봄비가 온다 봄비가 온다, 메마른 산봉우리 봉우리마다
민족해방의 봉홧불로 살맞은 가슴을 사르는 봄비가 오는데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게 새집다오
봄비가 온다 봄비가 와
그늘진 산골짝 골짝마다 죽음을 넘어선 사람의 사랑
분이와 돌쇠는 핏빛 진달래되어 흐드러지는데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게 새집다오
그날 무등산이 크게울고, 금남로가 일어서던 날
한많은 인생살이에 MI소총 꺾어들고 헬리곱터 휘어잡고
에라 데헤야
개소리엔 똥약이 최고란다
미친 개 잡는 덴 몽둥이 찜질이 최고란다
전 민중 하나되어 신명나게 휘몰아가는 데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게 새집다오
죽으러 들면 산다
하나로 뭉치면 산다
땅도 땅도 내땅이다, 조선땅도 내땅이다
온갖 잡것 갖은 잡것이 찝적대도 여기는 내땅
한 치도 내어줄 수 없다
땅도 땅도 내땅이다, 쪽바리 땅도 내땅이다
밥이 하늘, 사람이 하늘, 통일이 하늘
두껍아 가자 녹두장군 앞세우고 새끼민중 등에 업고
두껍아 가자, 두껍아 가자
전태일 동지 앞세우고 새끼민중 등에 업고
두껍아 가자 가자
두껍아 가자
4월투사 앞세우고 새끼민중 등에 업고
두껍아 가자, 두껍아 가자
무등신랑 앞세우고 통일꾼들 등에 업고 두껍아 가자 가자 가자
사람이 산다는 게 별거랑가
남 눈치 안 보고 오순도순 힘껏 일해 등다습고 배부르고
신명나면 그만이지
죽으려 들면 산다, 역사를 알면 산다, 하나로 뭉치면 산다
두껍아 가자, 저 압제의 총칼을 향해 개나리 따서 입에 물고
두껍아 가자
두껍아 두껍아 헌집털고 새집 짓자
(주석 11)


주석
7>앞의 책, 201~202쪽.
8> 앞의 책, 202쪽.
9> 앞의 책, 203쪽.
10> 앞의 책, 208~209쪽.
11> 김재희 엮음, <심장에 새기는 이야기>, 182~183쪽, 녹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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