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눈물의 칠순 잔치

 

 

 4 월 18 일 혜숙은 주치의로부터 3 시간 특별 외출을 허락 받았다.

 혜숙은 평소에 얼굴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남자인 나도 세면하고 나서 찍어 바르는 스킨 로션조차 혜숙은 바르지 않았다.

 경기여고 시절 학교의 전통있는 행사로 널리 알려진

 세계 민속놀이 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분장했던 일과 우리 결혼식 때 신부 화장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날 내가 근무하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여직원이 혜숙에게 옅은 화장을 해 주었다.

 그래선지 환자같지 않고 해말간 얼굴이 참 곱게 보였다.

 

 고희연에 앞서 교회 담임 조승혁 목사님 주재로

 교인들과 일가 친척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함경북도 함흥에서 우리나라 초대 교회 고명하신 목사님 가정에

위로 오빠 언니를 두고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 사이에 셋째로 태어나신 어머니

방이 18 개 거실 화장실 합하면 21 개나 되는 함흥중앙교회 사택에서 자라

어렸을 적부터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했다던 어머니...

 

영생여고보와 함경남도립병원 간호부 조산부 과정을 졸업하고

결혼 전까지 원산도립병원 기숙사에서만 생활했던 경험으로

남들처럼 작고 아담한 집에서 단란하게 살아 보는 것이 소원이셨다던 어머니

 

그래서 나까지도 팔자에 없을 큰 집을 그리 자주 드나들어 온 건가?

나 역시 어머니와 외가의 영향 아래 모태 신앙으로 자라 왔다.

오랜만에 해후하게 된 친인척 교인들은 우리 가정의 파란만장한 역경과

혜숙에게 드리운 병마를 익히 알고 있어선지 기쁨에 넘치거나 축하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 착잡한 속내를 애써 감추시는 어머니

 

주재하시는 조승혁 목사님과 참석한 이들 모두

특별히 혜숙의 건강과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합심해서 다함께 하나된 마음으로 감동어린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자 따사로운 봄날 성북동 그윽한 골짜기에 위치한 '녹음정'으로 하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든다.

계훈제 송건호 선생님 등 재야 원로

성내운 김찬국 이영희 정윤형 등 당시 해직 교수협의회 교수님들

현기영 임헌영 정희성 조태일 박용수 안종관 채광석 유시춘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

임채정 정동익 등 해직 언론인

이길재 최종진 등 전국농민회총연맹 대표

임진택 장선우 유인택 등 문화예술인

윤순녀 김명식 등 가톨릭 수녀 수사님

성해용 이상윤 임흥기 이근복 등 개신교 목사님

최 열 김승균 신철영 신대균 등 시민사회단체 분들

민통련과 민청련 식구들 구속자가족협의회 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 분들

초 중고등 대학 동기 선후배들.....

전두환 씨가 개헌불가 4 . 13 호헌조치를 강압적으로 발표한 직후여서인지

5 . 16 군사 쿠데타 이후부터 연대해 온 재야 민주인사들 가운데

구속되거나 수배된 이들을 빼고는 거의 망라되어서 참석한 자리가 되었다.

 

 

 

 

우리 결혼식 주례를 서신 김찬국 교수님은 혜숙의 등을 두드리며 손을 꼭 잡고 봉투를 쥐어 주셨다.

"이 돈은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말고 우리 박 선생 혼자서 맛 있는 거 사먹어야 돼요....."

따뜻하신 말씀이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때 돈으로 거금 30 만 원이 담겨 있었다.

당신께서도 무려 13 년 여 동안 해직되어 계실때인데.....

나는 혜숙이 입원해 있는 동안 교회 집사님 집에 가 있던 막내를 처음으로 보고 품에 안아 보았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스트레스를 말로 표현 못 해선지 마악 첫돌이 지난 막내는 머리칼이 곤두서듯 위로 뻗혀 있다.

 

 

 

잔칫상과 사람들 사이를 천진난만하게 휘젓고 다니는 딸과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혜숙의 친구들 또한 그 모습을 지켜 보면서 손수건을 눈에서 뗄 줄 몰라 했다.

참석한 이들 모두가 혜숙이 예쁘게 화장한 얼굴로 고운 한복을 입고

갓 돌 지난 막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누구랄 것없이 눈시울을 삼켰다.

 

오랜 세월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 왔던 동지이자 후배 이해찬(전 국무총리)의 사회로 식순이 진행되었다.

나는 인사말을 통해서 우리 가정에 드리운 안위에 대해 염려와 걱정을 끼쳐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을

우리 가족과 혜숙이 알아 듣지 못하도록 완곡하게 표현했다.

 

더불어 오늘의 자리가 우리 가족을 위한 행사로 그치지 않고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를 돌파해 내는 데 조그마한 교두보가 되어

허심탄회하게 만나고 서로 의견 나누는 자리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문화연구소 연성수 소장이 이끄는 풍물문화패의 공연과 함께

우리 가족을 시작으로 선후배 동료들이 어머니께 예를 올렸다.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혜숙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혜숙이 절하고, 친구들과 같이 "어머니 은혜"를 노래하고 오랜만에 보는 막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눈시울을 삼키게 했다.

 

▲ 어머니 칠순 행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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