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내가 미워서 그러는 거지?


" 들어보나마난데 뭘 그래! 내가 견디다 못 하니까 오빠가
육동휘 오빠 병원에 데리고 가서 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 다 하고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시설 좋은데서 하는게 더 좋겠다 그래서
이 병원으로 온 건데 뭘 그래!
수술하기 전에 조직 검사 결과도 다 듣고, 수술 받고 난 다음 상태도
오빠들한테 다 들었단 말야.
아무려면 내가 명색이 약사인데 지금 내 병이 어떤 상탠지 모르겠어?
당신이 어디서 잘못 안 거야. 당신 좀 이상하다.....
당신 혹시 내가 미워서 그러는 거 아냐?
당신 내가 미워서 그러는 거지???....."
    
솟구치는 감정 억누르지 못하고
계속 흐윽~흑 거리는 나를 두고서

혜숙은 오히려 안스럽다는 듯
설득하고 다독거리려는 게 아닌가?

혜숙의 반응이 주치의 말대로
죽음을 앞둔 암 환자 심리 상태에서
첫 번째 단계와 바로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확인하고 있는 순간이다.

더 이상 혜숙을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혜숙이 알고 있는대로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고 거부하는 편이 낳을 듯 싶다.

혜숙이 세상을 증오하지 않고
저주하지 않도록 하는 게
옳을 듯 싶기도 하다.

죽음을 앞두고
몸서리치는 공포와 절망을
혜숙이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면

전혀 모른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차라리 그 편이
혜숙을 위해서
더 편안할 듯 싶기도 하다.

" 허~억..... 허~억....."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 내는 대신
가슴 속 깊은데서 치솟아 오르는 한숨을
그냥 토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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