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 / 31. 함석헌 선생님의 눈물



내가 육본 CID를 거쳐 서빙고에 도착했을 때
함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묵비권으로 일관하고 계셨다.

 

하기사 함 선생님께서 윤보선 전 대통령이나
안병무 박사 이름을 말할 분이 아니시니 그저 온갖 수모만 당하고 계신 것이다.

 

사병들을 통해서 들리는 소문으로 함 선생님께서 수염을 뽑혔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만 선생님께 끼칠 누를 상상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회한에 빠져 있었다.

 

여러 모양으로 이리저리 생각하던 끝에 나는 함 선생님이 계속 함구 중에 있을 것이고
내가 자칫 불필요한 말을 하게 되면 선생님께 더 큰 누를 끼칠 염려가 다분한 터여서
수사관의 비위에 맞추어 요구될 성부른 내용만을 중심으로 거짓 진술을 하기로 작정했다.
 
'이 지경에서 선생님을 편하게 해드리려면 모든 걸 내가 싸 안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나름대로 각본을 만들기로 했다.

 

민청학련 사건 때 고문과 취조를 호되게 당한 이후 내가 터득한 요령 가운데 하나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대방보다 내가 먼저 말해 버리면 수사 방향을 바꾸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피의자가 자기의 범죄 사실을 실토하지 않고 계속 숨기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피의자가 숨길려고 하는 바로 그 범죄 사실을
잘 파헤쳐 내는 수사관이야말로 명수사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 수사관의 결정적인 헛점이 있다.

그것은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숨길려고 할 경우에나 해당되는 일이다.

 

만약에 피의자가 다른 사람의 범죄 사실까지 뒤집어 쓰겠다고 작정한다면

수사관은 사실을 제대로 밝혀 내지 못하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나는 붙잡혀 갈 때마다 고문도 지긋지긋하게 받았지만
나중엔 담당 수사관들과 친근해 지는 경우가 많았다.


미행하고 감시하는 형사들과도 마찬가지다.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들이 원하는 범죄 사실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되도록이면 내가 싸 안으면서
나름대로 아귀가 맞게 진술을 해 주니까 그들은 일단 보고서를 쉽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보안사 대공분실, 소위 서빙고 호텔을 일곱 차례 쯤 연행되어 갔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이 파악한 사실들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거나
내가 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한 것까지도 굳이 내가 한 것이라고
우겨가면서까지 시원시원하게 진술을 하니까 수사관들에겐 내가 아주 편한 상대인 것이다.

 

나는 일단 잡혀 가게 되면 나름대로 육하원칙에 맞게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수사관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데 일가견을 가지게 되었다.

 

"함 선생님은 젊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위장으로 해서 행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거짓 역사를 만든다고요.
그런데 내가 그 날 꼭 참석하셔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드려서 억지로 모시고 갔습니다.
행사 대회장을 맡으신 것도 내가 함 선생님 댁을 방문해서
그냥 일반적인 결혼식 주례를 맡는 것처럼 말씀드려서  허락하시게 된 겁니다."
 
나의 거짓 진술로 함 선생님이 어떻게 국민대회 대회장이 되었고
어떤 경로로 참석하게 되었는지 일단 전말이 밝혀지자
수사관들은 다행이다 싶던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수사관들이 내 진술 내용을 함 선생님께 들이밀고 추궁을 계속하자

함 선생님은 "이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하게 부인하셨다.

 오히려 수사관들이 나를 잡아 넣기 위해 꾸며 낸 사실로 생각하시고 더욱 세차게 부인하셨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수사관들은 내 앞에서
함 선생님에 대해 별스런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면서 음해했다.

듣다못한 나는 수사관에게

 

"내 진술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어떻게 이걸 인정하시겠습니까?
인정하시게 되면 제자가 곤욕을 치르고 감옥에 가게 생겼을텐데...
제자를 어떻게 곤경에 빠트리고 감옥으로 가게 합니까.
당연히 인정을 안하실 테지요.
그러니 가서 선생님께 간곡하게 부탁해 주시오.
제 진술 내용을 그대로 베껴 써달라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 선생님은 전혀 인정을 안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진술한 것이라는 게 확실히 전달되도록 간곡한 편지를 써서
수사관 편으로 함 선생님께 전달했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짐작하고 느끼셨을 것이다.
그래서 들어맞지도 않는 내 진술서를 사실로 부인하다가

거짓으로 시인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의 모습은 한동안 굳어졌을 것이고
그러다가 고개를 내리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시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 얼굴을 붉히시고
어쩔 수 없이 시인하면서 옮겨 적었을 것이다.

 

쪽지를 전달하고 온 수사관은 "이제 됐다!"며
내게 더 이상 추궁을 하지 않고 편하게 대해 주었다.

 

이 일은 신문과 방송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 한 사실이 동참자들의 진술에서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에 의해 검거되자 태도를 돌변하여
......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극구 부인하다가 급기야
최민화의 진술 내용을 열람한 연후에야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떨군 채
사실을 시인하는 비굴성을 보였다......"


"...... 소위 양심 세력을 자처하는 원로 배후 조종자들이
당국자 앞에서 자구적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는 추태를 연출하는 사실로서......"


민청학련 사건 동료 가운데 지금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종원이
바로 이 즈음에 전두환과 노태우 장군 등등 몇몇 분들의 자제들에게 몰래바이트로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단다.

 

당시 이종원이 학부모인 이순자 여사를 자주 만났었는데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에  이순자 여사가 함 선생님에 대해서
상당히 격분해 마지않더라는 것이다.

 

민주 인사니 양심 세력이니 하는 분들이 도대체 그럴 수가 있느냐는 거다.

남편(전두환)한테 들어 보니까 청년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태도가 비굴하기 짝이없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진실이 왜곡된 채로 이 사건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문과 방송에 선동적으로 보도되면서
방방곡곡을 들쑤시고 누벼댔다.

 

결국 함 선생님의 고초를 조금이나마 덜어 드려야겠다는 내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진술을 번복하는 비굴한 사람이라는 소문만 온 세상에 떠돌게 했으니
나는 선생님께 씻을 수 없는 누를 끼친 결과가 되어버렸다.

 

이 진술로 말미암아 함 선생님을 대신해서 이 사건의 상층 지휘부로 분류된 나는
1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연행된 지 22일 만에 8순이 다 되신 함 선생님은 풀려 나고
나는 구속되어 비상계엄군법회의로 송치었다.

 

댁으로 돌아오신 함 선생님은 그날 많은 분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더욱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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