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계엄포고 1호 위헌·무효 첫 법원 판단

“계엄포고 발령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

군병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민주화 인사들이 1979년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인 ‘YWCA(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5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조용현)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등 11명의 계엄법 위반 재심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979년 발령된 계엄포고 1호가 위헌이고 위법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공소사실 또한 무죄라고 판단했다. 당시 계엄포고 1호가 무효하다고 본 법원의 첫 판단이다.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 사건은 1979년 결혼식을 가장해 열렸던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다. 그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자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포고 1호를 발령했다. 백 소장 등은 11월 24일 서울시 중구 명동의 와이더불유시에이 강당에서 결혼식을 가장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를 열었다. 제적학생 모임인 민청협 활동가 홍성엽씨를 신랑으로 위장 결혼식을 연 뒤 500여명 앞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반대한다”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유신헌법 철폐를 주장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듬해 백 소장 등은 계엄법 위반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최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계엄포고 1호는 △모든 집회는 허가를 받고 시위와 같은 단체 활동 금지 △언론, 출판, 보도 사전 검열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금지 △ 모든 대학 휴교 조치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담겼다.

백 소장 등은 2014년 3월 재심을 청구해 지난 10월 재심이 개시됐다.



당시 와이더블유시에이 위장결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민주화 인사들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을 방문했다. 권진관 전 교수(앞줄 왼쪽부터)·김정택 목사·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상익 복지관장(뒷줄 왼쪽부터)·양관수 교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우회 출판인·최민화 출판인 ·박종열 목사 ·김진영 사건 담당 변호사·고 강구철씨 유족. 사진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재판부는 당시 계엄포고 1호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발동 요건(군사상 필요할 때)을 갖추지 못했고 그 내용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엄포고가 발령될 당시 국내외 정치·사회 상황이 경찰력만으로는 비상사태의 수습이 불가능하고 군병력을 동원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 헌법 규정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도록 했는데, 계엄포고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를 위배했다. 계엄포고가 규정한 위법 행위 또한 추상적이고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백 소장은 이날 몸이 아파 재판에 출석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재판 결과를 전해들은 백 소장은 “법률적으로 무죄라고 판결을 냈다는데 피해 당사자로 볼 적에 그동안 겪은 정신적인 고통, 왜곡된 인권 유린의 현장을 잊을 수가 없고 달랠 수가 없다”며 “형식적인 재판 절차로 끝낼 게 아니라 (당시) 권력을 담당하고 있던 집권자들이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하고 이런 끔찍한 고문의 역사는 낱낱이 조사해서 말끔히 청산해야 하고 정신적 피해까지도 어루만져 줘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통일문제연구소 관계자가 전했다.


고한솔 정환봉 기자 sol@hani.co.kr

등록 :2019-11-15 17:13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7218.html#csidx8caf21c9c5b9bee92db49daf10d11f0 








Joan Baez / Johnny I Hardly Knew Ye

- 미국 남북전쟁 반전 가요, 우리에게는 훌라송으로 잘 알려진 노래 -


With your drums and guns and guns and drums, hurroo hurroo

With your guns and drums and drums and guns, hurroo hurroo

With your guns and drums and drums and guns

The enemy never slew ye

My darling dear, Ye look so queer

Johnny, I hardly knew ye


Where are your legs that used to run, hurroo hurroo

Where are your legs that used to run, hurroo hurroo

Where are your legs that used to run

Before you left to carry a gun

I feel your dancing days are done

Johnny, I hardly knew ye


Where are yoru eyes that were so mild, hurroo, hurroo

Where are yoru eyes that were so mild, hurroo, hurroo

Where are yoru eyes that were so mild

When my heart you did beguile

Why did ye run from me and the child

Oh Johnny, I hardly knew ye.


Ye haven't an arm, ye haven't a leg, hurroo, hurroo

Ye haven't an arm, ye haven't a leg, hurroo, hurroo

Ye haven't an arm, ye haven't a leg

Ye're an armless, boneless, chickenless egg

You'll have to put with a bowl to beg

Oh Johnny, I hardly knew ye.

 

They're rolling out the guns again, hurroo, hurroo

They're rolling out the guns again, hurroo, hurroo

They're rolling out the guns again

But they won't take back out sons again

No they'll never take back our sons again

Johnny, I'm swearing to ye.
























비문 속 주인공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과연 존재했는가?
흉노족은 정말 한반도 남단으로 내려왔는가?
과연 수수께끼 같은 문무왕 비문의 비밀은 풀릴 것인가?
 
- 투후 김일제와 성한왕은 어떤 관계인가? 
  문무왕 비문에는 ‘투후 제천지윤 전7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서 ‘투후제천지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의 자손이라는 뜻. 
  그리고 ‘7엽’은 일곱 개의 잎사귀, 즉 7대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 김일제’의 자손이 7대를 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15대조 성한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김일제의 7대손이 성환왕이라는 이야기일까?  
  문무왕의 15대조는 김알지의 아들 세한이다. 추사 김정희가 비문의 내용을 집대성한 [해동비고]에 보면 문무왕 비문에 기록된 성한왕은 바로 ‘김알지’라는 기록이 나온다. 비문의 성한왕에 대한 묘사는 김알지 설화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성한왕은 바로 신라 김 씨 시조 김알지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투후 김일제의 나라 투국은 실존했나? 
  중국에서 김(金)씨는 흉노계를 상징하는 성씨와 같다. 중국의 김씨는 대부분 투후 김일제를 시조로 모시는 흉노족. 산동성 하택시 성무현 옥화묘촌 입구에는 이곳이 김일제의 투국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투국성 유적지에는 김일제를 기리던 투후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 주민들은 투국성을 김성(金成), 금성이라고 한다. 조림사업이 시작되면서 숲으로 바뀐 이 일대 지하에 투후국의 흉노족이 ‘금성’이라 부르던 성이 있었다. 
  김일제의 성을 딴 투후국 ‘금성’과 신라 수도 ‘금성’ 두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 신라는 이주민이 세운 나라?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서 사용되던 청동제 동전 ‘화천’이 출토된다. 
  이것이 발견된 지역은 중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무역로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 왕망의 난에 가담했던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은 왕망의 피살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지동이전 등 역사서에는 대륙의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북방의 이주민이 한반도 남단 진한 땅으로 이주해왔다는 기록이 여럿 등장한다. 그렇다면 투후 김일제의 자손들도 신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흉노의 후손임을 선언하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대당전쟁마저 승리한 문무왕. 그의 비문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석탈해가 사라지고 성한왕 만 존재한다. 신라는 이제 김씨 단독 왕국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바로 문무왕 비문인 셈이다. 
  신라 김씨왕족의 자신감은 신라김씨 시조 성한왕과 더불어 흉노 태자 투후 김일제까지 자신들의 뿌리가 닿음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무왕 비문은 신라 김씨가 한반도의 패자로 성장해간 비밀을 담고 있는 고대사의 블랙박스였다.






경주 문무왕 비문에 새겨진 수수께끼 같은 암호들 
신라의 시조라는 성한왕은 누구인가? 투후는 누구인가?
과연 신라왕족은 흉노의 후손인가?

- 문무왕 비문에 기록된 성한왕은 누구인가?
  문무왕 비문에는 신라의 태조가 성한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한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의 묘비에도 역시 신라의 태조는 성한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베일에 싸인 인물 성한왕은 누구인가?
  
- 문무왕 비문에 새겨진 의문의 글자 ‘투후’ 
  한서에 의하면 투후는 흉노족의 태자 김일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흉노족은 몽골 및 중앙아시아 일대에 자리 잡은 기마민족으로 중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진시황은 흉노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흉노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한무제가 흉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김일제는 포로가 되었고 
  나중에 한무제에 의해 투후 작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무왕 비문에 등장하는 암호 같은 표현들은 김일제와 성한왕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흉노와 유사한 신라의 유물들, 김씨 왕조는 흉노의 후손일까?
  초기 신라 무덤과 흉노족 무덤은 적석 목곽분이라는 동일 양식이고 
  동일한 오르도스형 흉노 동복(솥)이 신라 무덤에서도 출토됐다. 
  신라 김씨 왕조 집권기에 등장한 금관은 황금을 신성시 여기는 
  흉노의 문화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유물들이 과연 신라 김씨 왕조가 
  흉노족의 후손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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