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 1905. oil on cardboard. 38.6 X 34.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블라디미르 예고르비치 마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화가인 '콘스탄틴 예고르비치  마코프스키'와 
'니코라이 마코프스키'와 형제이고. 누이동생인 '알렉산드라 마코프스키'도 화가였다. 
러시아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기반이 되는 사실주의 양식에 영향를 끼쳤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마코프스키의 집안은 대단하다. 
아버지는 미술품 수집가였고 모스크바 예술 학교의 설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마코프스키의 아버지는 3남 1녀를 두었는데 타고난 자질에 
집안 환경이 더해진 탓인지 나중에 모두가 유명한 화가가 된다.

​15세가 되던 해, 마코프스키는 러시아 화가들을 소개할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6년간의 학교 성적도 좋았던지 졸업하기 바로 전 해와 졸업하던 해에는 은메달을 수상했다. 
그 뒤로 3년 정도 더 공부를 했는데 학교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당시 학생들의 진학 경로를 참고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아닌가 싶다.

​1870년 공부를 끝낸 마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된 
방랑파(The Wanderers)의 창립 멤버로 참여한다. 
이후 그는 방랑파 소속으로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나중에는 방랑파를 이끄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
방랑파는 그때까지 러시아 미술을 좌지우지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 아카데미에 
대항해서 만든 모임인데 그 멤버들 중 그 학교 출신이 많다는 것이 흥미롭다.

1870년대, 그러니까 서른 즈음에 마코프스키는 
두드러진 러시아 사회의 강자와 약자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다. 
이것은 훗날까지 그의 작품 주제가 된다. 
압제 받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세계에 대한 그의 연민이 솔직하게 그림에 담겼다. 
서민들에 대한 황제 군대의 학대와 압박도 그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마코프스키의 가슴에는 세상을 향한 불덩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Self portrait. 1893.

​어찌 보면 ‘삐딱선’을 타고 있었던 마코프스키였지만 1878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다. 
1880년대 러시아 회화가 다양하게 발전되는 ‘민주화’ 시대가 오면서 그의 걸작들이 탄생한다. 
그림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그에게는 신나는 시절이었다.
서른여섯이 되던 해 모스크바 예술 학교의 교수로 임명된다. 
바실리 페로프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자리를 이어 받게 된 것이다.

​1880년대 말부터 마코프스키의 작품은 조금 더 ‘우울’해졌다. 
좀 더 그의 이야기 톤이 높아졌다고 봐야겠다. 
1894년 마흔 여덟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 학교의 교수로 임명되는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일흔까지 학생들을 지도한다. 
또 예술아카데미 예비학교의 교장을 맡게 된다. 그는 화가이자 선생님이었다.

마코프스크의 작품은 끝없는 유머와 냉소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풍자가 특징이다. 
초기 작품은 비교적 점잖은 냉소를 깔고 당시의 관습과 도덕 기준을 묘사했는데 
작품 무대는 주로 작은 러시아의 도시들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힘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동정을 비판했다. 
그의 의식 속에 사회적인 문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밑에 깔고 있는 러시아 작품들은 
나중에 정형화된 이념만 걷어내고 보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70년대, 그러니까 서른 즈음에 마코프스키는 

두드러진 러시아 사회의 강자와 약자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다. 


이것은 훗날까지 그의 작품 주제가 된다. 
압제 받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세계에 대한 그의 연민이 솔직하게 그림에 담겼다. 
서민들에 대한 황제 군대의 학대와 압박도 그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마코프스키의 가슴에는 세상을 향한 불덩어리가 있었던 것 아닐까?

1905년 1월 9일은 일요일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등을 요구하며 

왕궁을 향하여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를 진압하고자 하는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러시아 제1혁명이 시작된다.  
혁명을 지켜 본 마코프스키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과 같은 약자 편에 선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시작된다. 
마코프스키는 늘 마음에 두었던 힘없고 핍박 받는 사람들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완성되고 난 후 2년 뒤, 일흔 넷의 나이로 마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난다.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가슴에 담고 그 때 떠났기 때문에 행복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뒤로 흘렀던 역사를 보면 혁명은 혁명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마코프스키는 사실주의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연결시켰다.  

 

어린 시절 마코브스키의 모습, 1854년, 화가였던 친형 콘스탄틴 마코브스키의 작품. 

그림은 황제와 귀족 등 지배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가난한 농민도, 노예도 그림을 감상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다.
자신들이 그린 사실주의풍 그림을 들고 러시아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무료로 전시회를 개최했었던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미술운동 그룹 이른바 '이동파(移動派)'의 외침이다. 

이들은 짧게는 5~6시간, 길게는 보름 이상씩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서 러시아어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동파'란 이름이 붙여졌다.
블라디미르 마코브스키 역시 이동파의 일원이었다.

이동파의 목표는 예술을 관료행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예술을 통해 민중을 교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보수적인 아카데미 미술교육에 반발하여 창작의 자유와 예술을 통한 민중 계몽에 역점을 두었으며,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핵심 인물들이 참여했다.
따라서 미(美)에 대한 탐구보다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
시골과 도시의 일상생활 장면이 주요 테마가 되었고, 일상과 축제 속의 농민과 도시민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해방된 농노들은 도시로 몰려 들여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빈민층을 이루었다.
풍요로운 집에서 태어난 마코브스키는 따뜻한 시선으로 러시아 민중의 삶을 묘사했다. 
러시아 사회의 모순에 대한 유머와 냉소, 부조리에 대한 풍자를 통해 서럽고 고통 받는 사람들,
힘없고 핍박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비참한 생활을 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였다.

 

At the Boulevard. 가로수 길에서. 1887. oil on canvas. 68 X 5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겨울 초입, 벤치에 앉은 부부의 모습이 애처롭다. 
옆에 보따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일을 찾아 올라온 것 같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얼굴에는 좌절이 어렸고 눈은 생기를 잃었다. 
남편은 풀리지 않는 삶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겠지. 
부부가 꿈꾸었던 세상은 벤치 뒤 철책 너머이다. 
손풍금을 꺼내 망향가를 불러 보지만 답답한 심사가사라질까? 
어떻게든 겨울을 넘겨야 한다. 부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라고 소설의 처음을 연다.

<가로수길에서> 부부가 만들어내는 쓸쓸한 느낌의 아우라는
어떤 연유에서 만들어진 불행일까?
1861년 허울뿐인 농노해방 이후 러시아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 없었다.
수많은 농노들은 토지를 잃고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의 최하층을 구성한다.
그리고 산업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한다.
다른 말로 하면 도시 이주 농노들은 춥고 헐벗고 굶주린 최악의 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로수 길에서>는 이런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하루종일 보드카에 쩔어 사는 젊은 남자가 무릎에 아코디언을 끼고 벤치에 걸터 앉아 있다.
온몸에 적당히 퍼진 알코올의 힘과 두 손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적 감흥이 더해져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옆에는 시골서 갓 올라온 듯한 그의 앳된 아내가 갓난 아기를 품에 안고
일하지 않고 돈도 벌지 못하는 남편 곁에서 근심 어린 얼굴로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곧 눈보라가 휘몰아 칠텐데 아내의 마음엔 이미 걱정이 폭풍우가 되어 내리친다.
남편의 대책없는 낙관과 아내의 현실 비관이 교차하는 그림의 느낌이
발밑에 구르는 가을 낙엽만큼이나 메마르고 우울하다.

이 그림은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으로 새로운 틀을 가지기 전에
보여지는 체제 미성숙을 풍자적으로 꼬집은 장르화다.
당시 러시아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회화는 가치가 없다라는 예술적 풍토가 만연했다.
작가들은 붓필의 힘으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스토리 텔러가 되어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정돈 되지 않은 사회, 불평등한 사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을 수 없는 사회.
어디에 서야 할지를 몰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결국은 알콜에 의존하게 만드는 병든 사회.
19세기 말엽 제정 러시아의 모습이다.

<가로수 길에서>는 그림이 주는 메세지 또한 휼륭하지만 주제를 표현한 회화적 기법이 아주 뛰어나다.
유화지만 마치 맑고 투명한 수채화처럼 농도가 가볍고 산뜻하다.
배경의 초록빛과 노란빛의 자연스런 조화, 회색빛 하늘의 쓸쓸한 늦가을 정취,
오래된 명화의 한 장면처럼 그림이 주는 아우라가 강렬하다.
그림답다라는 말이 너무도 어울리는 작품이다.

 

‘못 들어가요!!’, 1892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의 수많은 마르멜라도프에게 술을 마셔 좋은 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술이 지나쳐 생기는 나쁜 결과가 너무 많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는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친 전형적인 인물 마르멜라도프가 나온다.
라스콜리니코프와의 첫 만남에서 마르멜라도프는 술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저도 한때는 공무원이었죠. 집에는 아픈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데, 
나는 아내의 양말마저 내다 팔아 술만 마시고, 이제는 부인이 무서워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렇게 술 마시기 벌써 닷새째..
​나에게 하나뿐인 딸은 황색 감찰(매춘부) 일을 하러 나가고, 그
 애가 그렇게 벌어온 돈도 술값으로 다 써버렸지요. 
난 돼지 같은 인간이에요" (중략) 

라스콜리니코프가 몸도 가누지 못하는 그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자, 그의 부인이 울부짖는다.

​"몰래 갖고 나간 11루블 다 어쨌나요? 옷마저 달라졌어! 
입고 나간 옷은 도대체 어디 벗어놓고 온 거죠?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굶주리고 있는데! 아아, 저주받는 게 낫다! 그러고서도 부끄럽지 않나요?"

​보드카는 맑고 깨끗하지만, 코를 빨갛게 만들고 평판을 검게 한다고 안톤 체호프는 말했다. 
러시아만큼 술이란 주제가 문학에 자주 등장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역사를 뒤흔든 나라도 드물다. 
심지어 대통령이 금주령을 선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지나친 음주는 자신만 병들게 하는 게 아니다. 
함께 사는 가족과 주변 모두를 음울하게 만든다.

​마코프스키의 그림에서도 알코올 중독 말기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집을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온몸에서 알코올에 찌든 술 냄새가 막 풍기는 듯하다. 가족의 행색이 남루하다. 
필사적으로 남자를 막아서는 아내의 절망적이고 힘든 몸짓. 
엄마에게 딱 붙어 아빠를 바라보는 겁에 질린 딸아이. 
남자의 손엔 술값으로 맡겨버릴 가족 중 누군가의 외투가 쥐어져 있다. 

고골의 <외투>에서 알 수 있듯이 혹독한 날씨의 러시아에선 외투가 곧 생명이다. 
러시아에서 외투 없이 겨울을 보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온몸으로 남편을 막아서는 아내의 눈빛이 슬프다 못해 공허하다. 
이 가족이 엮어내는 슬픈 아우라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알코올 중독으로 주위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인간이 만드는 가장 슬픈 범죄 중의 하나다. 
<탈무드>를 보면 아담이 처음으로 술을 빚을 때 
신기한 음료수에 호기심이 이끌린 악마가 다가와서 한 모금을 청한다. 
술 맛에 감동한 악마는 아담에게 감사의 선물을 하겠노라며 양, 사자, 원숭이, 돼지의 
4마리 짐승을 잡아 와 포도밭에 동물들의 피를 거름으로 부으니 포도는 풍성하게 자라났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의 피 탓에 부작용이 생기게 되고 그 때문에 사람이 술을 마시면 
처음엔 양처럼 순하다가 점차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있으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다가 지나치면 돼지처럼 더러워지는 단계를 거친단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적당히’가 해답이겠지만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 많아 안타까울 뿐이다.
마시는 당사자의 몸 또한 병들지만 그런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가슴엔 피멍이 든다.
이게 1800년대 러시아에서만의 현실일까?

 

Visit to the Poor, The Philanthropists or The Visit. 박애주의자들. 1874. oil on canvas. 69 x 96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아주 잘 차려 입은 부유한 사람들이 남루한 집을 찾아 왔다. 
그런데 그를 맞이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맨 왼쪽 고개를 돌린 남자의 표정에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손을 뺨에 대고 있는 문 앞의 소녀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고 있다. 
할머니와 아이만 손을 앞에 모으고 여인을 맞고 있지만 할머니도 마지 못한 얼굴이. 
집 주인이 밀린 집세라도 받으러 온 걸까?  


작품의 제목을 보면 부유한 두 사람은 밖에서는 박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로 불리고 있겠지만 
장작도 별로 없어 차갑게 식은 난로가 여인에게 묻고 싶다.  
박애주의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지? 
가장 낮은 자세로 힘없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눈 높이에 맞춰 나란히 앉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럼 옷부터 벗고 목과 어깨 힘부터 줄이야 하지 않을까?

 

Dinner (Farmer's Market in Moscow), 1875. oil on canvas. 108 X 71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식사 때가 되자 농산물을 팔러 온 농부들이 모였다. 
식사는 달랑 접시에 담긴 것 하나 뿐이다. 
나이든 남자들 사이에 여인들 모습도 보인다. 모두 힘든 얼굴들이다. 
1861년 러시아는 농노해방을 단행한다. 

근대화를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지만 극심한 경제공황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농민들과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양광이 내리는 시장, 죽 한 그릇이란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화면 오른쪽 햇볕을 등지고 앉은 사내의 멍한 얼굴을 보니 그는 그나마 죽을 살 돈도 없는 모양이다.

 

The Village Children, 시골 아이들. 1880.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다. 맨 오른쪽에는 싸움이 난 모양이다. 
모자를 쓴 아이가 맞았는지 울고 있고 제법 큰 아이가 때린 아이를 나무라고 있다.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이다. 
아주머니 앞에 앉은 아이는 발을 잡고 우는데 가만히 보니까 범인은 닭이다. 
고개를 숙이고 도망을 치는 중이다. 
두건을 쓰고 벽에 기댄 여자아이의 얼굴이 붉다. 뜨개질을 하는 중인가? 
가을 어느 날, 시골 양지바른 곳에 모인 아이들은 러시아 아이들의 모습보다는 
우리의 예전 추억으로 먼저 다가온다.

 

Date. 랑데부 (만남). 1883. oil on canvas. 40 × 31.5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24번방


부모로서는 자식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지켜볼 때 아마도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께다.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는 것이 
삶의 가장 큰 행복이고 목표였던 시절에 자주 듣던 말이다.
물론 지금도 다른 형태의 무한 애정을 쏟으며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다.
솔직히 자식을 통해 느껴지는 사랑만큼 벅차고 흐믓하며 행복한 느낌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것이 짝사랑일지라도 말이다.

열살 남짓해 보이는 그림 속의 남자 아이는
어린 나이에 도시로 나와 팍팍한 노동자로서의 눈물겨운 삶을 시작했나 보다.
엄마의 품속에서 좀더 보호 받아야 할 나이로 보이는데 말이다.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농촌에서의 삶은 아주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굶기를 밥먹듯 했다고 한다.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모들은 어린 아이들을 

도시로 도시로 보내서 끼니라도 연명하게 했다고 한다 .

엄마는 그렇게 떠난 보낸 아들이 그리워 먼길을 찾아온다. .
얼마나 걸었을까? 엄마의 행색을 보아도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이 간다.
걱정, 근심, 애틋함, 반가움... 수많은 감정이 엄마의 얼굴에서 교차한다.
얼른 " 엄마 잘 지냈어? 난 괜찮아" 하며 엄마의 하얀 손을 잡아주고 지친 어깨를 감싸주면 좋으련만
무심한 어린 아들은 엄마가 품고 온 빵 한덩이만을 허겁지겁 베어 물고 있다 .
섭섭함이 일기도 전에 엄마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단함은 잠시 잊어버린다.
분명 엄마도 배고픔을 참으며 달려왔을 텐데 말이다.
그리곤 가슴 한켠에 올라오는 뜨거움과 애틋함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아들을 쳐다본다 .
이들의 랑데뷰는 표현 못할 무엇이 되어 화폭 전체를 메우고 우리의 가슴도 어루만진다.

마코프스키는 이 가난한 모자의 만남을 보여주며 우리 가슴에 잠자고 있는
기본적이고 순수하지만 쉽게 외면해 버릴 수도 있는 절대적 사랑을 차분히 일깨워 준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
요샌 사랑의 척도를 물질로 가늠하는 몹쓸 풍토가 만연하지만
그래도 진정한 사랑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어루만지고 처지를 이해할 때 진정 느낄수 있다.

 

The Collapse of a Bank (study). 1880. oil on canvas. 71 X 46 cm.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Bankruptcy,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81. oil on canvas. 104.2 X 68.2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두 장의 그림이 거의 같은 내용이다. 
화면 속 많은 사람들이 은행의 파산 소식을 듣고 달려와 자기가 예금한 돈을 돌려 달라고 아우성이다. 
기가 막힌 소식에 정신을 놓고 의자에 쓰러지다시피 한 노인의 모습도 보인다.

​퇴역 군인들은 받아야 할 연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는 말에 울분을 토하고 있는데 
날아간 것은 돈뿐만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했던 시절도 날아간 것이겠다. 
창구에 매달려 하소연을 해보지만 직원이라고 뾰족한 수가 없다.

​이런 아수라 판에서도 자기 것을 확실히 챙기는 사람이 있다. 
속 호주머니에 뭔가를 넣고 화면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의 눈은 정직해 보이지 않다. 
어느 때고 힘 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 남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사람은 계속 좌절해야 했다. 

 

Goodbye, Papa  (also known as The Farewell),  1894. oil on canvas.
Samar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mara)

눈물이 흐를까 봐 눈을 크게 뜨고 애써 아빠의 눈을 피해 보지만 입술까지 와 있는 슬픔은 어쩔 수가 없다. 
앙상하게 야윈 두 손으로 딸의 손을 감싸고 있는 아버지는 이제 떠나는 모습을 
가슴에 담으려고 눈길을 딸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또 다른 세상을 여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담긴 눈빛이다. 
시집가는 딸을 보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눈 빛 아닐까?

 

Study to "January 9, 1905 on Vasilyevsky island". 1907. sketch and study.

​<1905년 1월 9일 바실리에프스키 섬의 스케치>
바실리에프스키 섬은 상트페테르브르그 근처에 있는 섬이다. 
이 날 섬에서는 무장한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사람들을 향해 발포한 일이 있었다. 
마코프스키가 현장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장면을 그림으로 제작했다.

​뒤에 있는 남자는 겁에 질린 모습이지만 가슴을 열어 젖힌 남자의 표정은 비장하다. 
억울하고 분해서 금방 울 것 같다. 배경만큼이나 흰 가슴이 안타깝다.
내 가슴은 눈처럼 희고 착하다. 너희처럼 시꺼멓고 힘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가? 
내가 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최소 권리에 대한 주장이 총을 맞아야 할 일인가? 
정말 그렇단 말인가? 좋다, 그렇다면 내 이 흰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목이 터질 것 같은 사내의 외침이 저에게 들려오고 있다. 
생각해보면 역사의 일정 부분은 힘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1905년 1월 9일은 일요일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등을 요구하며 
왕궁을 향하여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를 진압하고자 하는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러시아 제1혁명이 시작된다. 
혁명을 지켜본 마코프스키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과 같은 약자 편에 선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시작된다. 
마코프스키는 늘 마음에 두었던 힘없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완성되고 난 후 2년 뒤, 일흔넷의 나이로 마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난다.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가슴에 담고 그때 떠났기 때문에 행복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뒤로 흘렀던 역사를 보면 혁명은 혁명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A boy selling brew. 186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The artist, selling old stuff to Tatar (Artist's Studio). 1865.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Literary reading. 1866.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Peasant Boys Guarding Horses at Night. 186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Lover of of antiquity. 1869. Watercolor.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Knuckles (Children Playing). 1870.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he Church Choir. 1870. oil on canvas.
Sevastopo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evastopol)

 

The Doctor's Waiting Room. 1870.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A deacon. 1871. oil on canvas. Omsk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Omsk)

 

Fans of nightingales. 1872. oil on canvas. 76 X 55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A girl with geese. 1875. oil on canvas. 27.5 X 39 cm.
Nizhny Tagil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y Tagil)

 

A gypsy lady. 1875. oil on canvas.

 

A Party. 1875. sketch and study. panci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Anticipation,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75. 83 cm X 122 cm,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1861년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귀족의 토지에 매인 농노를 해방했다. 
전근대적인 농노 제도의 철폐는 역사적 당위였으나 해방된 농민의 
사회통합 방책이 미비한 상태에서 졸속으로 이루어진 개혁은 혼란을 가져왔다. 
땅 한 뙈기 없는 농민들은 전보다 더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농민의 참상을 목격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농민 속으로 들어가 
이들을 교육하고 농촌을 개선하자는 브나로드운동을 일으켰다.

 

미술도 이에 반응했다. 
1871년 젊은 예술가들은 아카데미의 전통을 거부하며 이동파를 결성했다. 
이동파는 주제와 전시 방식 모두를 혁신했다. 
브나로드운동에 동조해 농민의 일상생활과 러시아의 자연을 주제로 삼았으며, 
이름 그대로 지방 도시를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열어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마코프스키는 1872년 이동파에 가담했다. 
그는 뚜렷한 현실 인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검열제도가 엄존했기 때문에 사회 비판은 조심스럽게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이 그림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춥다’. 
세상은 눈으로 덮여 있고, 누런 건물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숄, 모자 등을 뒤집어쓰고 있다. 
문기둥 위쪽 아치에 쓰인 글씨가 이곳이 감옥임을 말해 준다. 
이 사람들은 왜 감옥 앞에 모여 있을까?

 

이 부분에서 역사적 배경이 개입한다. 
이들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죄수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는 가족들이다. 
각자 죄수에게 전해 줄 보퉁이를 지니고 초조하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가운데 있는 세 사람(관객을 향하고 서 있는 남자와 그 옆의 두 여인)은 
말쑥한 차림새로 그 옆의 누추한 농민들과 구분된다. 
브나로드운동에 뛰어들었던 중산층 젊은이는 정치범으로 체포돼 
정당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시베리아 유형을 갔다. 
이 가족의 아들도 아마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죄수들은 무슨 죄를 저질렀을까? 
불순분자일까? 테러리스트일까? 아니면 사법제도의 희생자일까? 
그림은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가가 이들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관객에게도 동의를 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술평론가 이미혜

 

Making Jam,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76. oil on canvas. 49.5 X 33.9 cm.
Samar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mara)

 

The Distribution of Pensions. 1876. oil on canvas.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Old Lady's Promenade. 1877. oil on canvas.
Nizhny Novgorod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Nizhni Novgorod)

 

Two Peasant Girls. 1877 .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Private Conversation. 1878. ink on paper. 20 x 25.5 cm. Private Collection

 

Buddies. 1878. oil on canvas.
Chelyabinsk State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Chelyabinsk)

 

Congratulations. 1878. oil on canvas. 35 X 29 cm.
Serpukhov Historical and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erpukhov)

 

At Noon, 1878. oil on canvas. 125.5 X 84.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Brew seller. 1879.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Guitar player. 1879. oil on canvas.
Saratov State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aratov Region)

 

Moscow types. 1879.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Organ grinder. 1879.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Condemned. 1879. oil on canvas. 113 X 76.5 cm.
The State Russian Museum - Sain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St Petersburg)

 

A portrait of E. I. Makovsky. 1880.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easant boys. 1880.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Midday Sun. 1881. oil on canvas. 32 X 24 cm. 
Serpukhov Historical and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erpukhov

 

Old man with a pipe. 1881. oil on canvas.
Karelia Fine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Petrozavodsk)

 

Fair. 1882.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The Prisoner. 1882. oil on canvas. Kharkov Museum of Art  (Ukraine - Kharkov)

 

Two ukrainians. 188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Not Guilty,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82 , oil on canvas, 105 X 7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Village Fair. 188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 letter. 1883.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In a Country School,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83. oil on cadboard. 42.5 cm X 66 cm. 
Tula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Portrait of the Artist Illarion Mikhailovich Pryanishikov. 1883. ​oil on canvas. 
70 X 87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eprimand. 1883. oil on canvas. Ivanovo Arts Museum (Russian Federation - Ivanovo)

 

Fishing (The Angler). 188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Off to Get Medicine,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84. 64.6 cm X 47 cm.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In the Entrance. hall. 1884.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Politicians.1884.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menia (Armenia - Yerevan, Armenia)

 

The secret. 1884. oil on panel.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Zaporizhzhya Cossack, 1884. 

 

Two pilgrims. 1885. oil on panel. 
The State Museum of Fine Arts of Tatarstan Republic  (Russian Federation - Kazan)

 

Fisherwomen. 1886. oil on cabvas.
Krasnodar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Krasnodar)

 

Mother and daughter. 1886.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Prayer service at the farm in Ukraine. 1886.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Wandering fiddler. 1886. Watercolor.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From the rain. 1887. oil on canvas.
Ulyanovsk Regional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Ulyanovsk)

 

Hunters at Rest. 1887. oil on canvas.
Serpukhov Historical and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erpukhov)

 

Miracle at Cana. 1887. oil on canvas. Vitebsk Art Museum (Belarus - Vitebsk)

 

Easter Te Deum,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87~1888. oil on canvas. 119 X 192 cm.
Serpukhov Historical and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Serpukhov)

 

In the Tavern. 1887. Private collection

 

Crimean seashore. 1889. oil on canvas. State Literary Museum  (Russian Federation - Moscow)

 

Portrait of Alexei Ivanovitch Strelkovsky. 1889. oil on canvas. 39 X 5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Doss House. 1889. oil on canvas. 143 X 9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I. E. Tsvetkov. 1890.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A portrait of E. S. Sorokin. 1891.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Declaration of Love. (The Explanation). 1889~1891. oil on canvas. 39.5 X 53 cm.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Hiring a servants. 1891. oil on canvas. Perm State Arts Gallery  (Russian Federation - Perm)

 

Hiring a servants. 1891. 

 

Morning tea. 1891. oil on panel.  Private collection.

 

Over the chips. 1892. oil on canvas.
Kursk Deineka Picture Gallery  (Russian Federation - Kursk)

 

His First Suit,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1892. oil on canvas,
Arkhangelsk Regional Museum of Fine Arts  (Russian Federation - Arkhangelsk)

 

At the porter's room. 1893. oil on canvas.
Taganrog Art Museum  (Russian Federation - Taganrog)

 

Two sisters. 1893.

 

 A portrait of Dmitry Rovinsky. 1894.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

 

Jesus Christ. 1894.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 Moscow  (Russian Federation - Moscow)

 

Amateur Artist Working en Plein Air. 1896. Watercolor. Private collection

 

[영상] Vladimir Makovsky (1846 - 1920) Realism Rus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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