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ply of the Zaporozhian Cossacks to Sultan Mahmoud IV (study). 1880.

oil on canvas. 67 X 87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터키 술탄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쓰는 자포로제의 카자흐인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4세가 카자크 족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대해 어마어마한 쌍욕이 담긴 답장을 보내서 복수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말대로 세상에서 일리야 레핀만큼 사람의 삶을 잘 표현해서 그린 화가는 없는 것같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데 너무 익살스러우면서도 너무 진지하고...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편지 한 장 쓰면서 쓰러지고 난리가 났다. 

 

16세기 몽골로부터 독립한 러시아는 모스크바랑 키예프랑 이런 곳에서 

몽골이 살고 있던 시베리아로 제국을 넓혀갔다. 

남쪽으로도 영토를 넓혔는데, 이제 독립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던 때라 

아직 제대로 만들어진 체계가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그림 역시 레핀의 주특기인 굉장한 사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권한을 등에 업고, 시베리아 등 각종 미개척지를 돌아다닌 자유분방한 민족답게

그들 얼굴 하나하나에 사실감이 넘친다.

그림의 배경인 조롱거리로 답장을 쓰는 현장답게 편지를 쓰는 서기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도를 가진다.

 

가운데 탁자위에서 글을 쓰는 서기는 정작 이 중요한 현장에서 답장을 쓰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건만,

그의 모습은 안경쓴 샌님같은 모습에 복장도 시커먼 것이, 별반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않게 한다.

 

작가가 신경써서 연출한 중요한 인물들은 탁자를 중심으로 배치된 코사크족 인물 개개인들임을 알 수 있겠다.

진지한 모습, 익살스런 모습, 박장대소하는 모습, 담배 피우는 모습 등 개개인의 얼굴은 참으로 다양하다.

 

주요한 얼굴 모습은 모욕적 답장을 씀으로 인해 비웃음이다.

근데 이렇게 많은 인물들 개개인의 웃는 얼굴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실제 현장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이다.

 

또한 인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비류도 사실주의가 묻어난다.

유목민족 특유의 야생적인 복장과 러시아의 투르크 양쪽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장비와 장비에 그려진 문양.

거칠게 살아왔음을 반증하는 멋드러진(?) 수염과 쭈글쭈글한 주름.

 

지금 쓰고 있는 답장이 여차하면 거대한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음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하하 웃고 있는 것이 이들의 와일드함과 저항정신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1676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트 4세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던 

자포로제 코사크인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다. 

자포로제 코사크는 코사크의 한 일파로 드네프르강 유역에 위치해 있었고, 

그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 등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서 여러 번 싸운 적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의 편지 내용인즉슨

"술탄이자, 무함마드의 아들, 해와 달의 형제, 하느님의 손자이자 총독으로,

마케도니아와 바빌론, 예루살렘, 상 이집트 왕국의 지배자, 황제 중의 황제, 군주 중의 군주,

패배할 줄 모르는 훌륭한 기사, 예수 그리스도의 묘를 지키는 단호한 파수꾼,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

무슬림들의 희망이자 기쁨,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방어자로써 짐은 그대들 자포로제 코사크인들이 

어떠한 저항없이 자발적으로 짐에게 복종할 것과 무의미한 공격으로 짐의 심기를 건들지 않을 것을 명하노라"

 

쉽게 말해 "순순히 항복하고, 국경지대를 찝적거리지 말도록"이란 말을

아주 거창하게 타이르듯 내지른 편지다.

이에 대해 코사크인들은 콧방귀 뀌듯이 답장을 쓴다.

편지를 쓰는 현장이 박장대소의 장이 될 정도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느냐 하면,

10원짜리 대사가 난무하는 무지막지한 편지였다.

 

-자포로제 코사크 형제들이 술탄에게

터키의 임프이자 똥같은 악마들의 친구이자 형제이며 루시퍼의 꼬붕인 술탄아. 

얼마나 병신같은 기사길래 니 후장에 붙은 고슴도치 한마리도 족치지 못하냐? 

악마의 똥같은 짬 찌끄레기야. 너 같은 개새끼는 절대로 기독교 형제들을 이기지 못할꺼다. 

우린 니네 좆만한 쫄따구들이 무섭지도 않고, 땅에서든 바다에서든 박살내서 니 애미를 따먹어 주마! 

 

너는 바빌론의 설걷이꾼, 마케도니아의 마부, 예루살렘의 양조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염소와 떡칠 새끼, 

이집트의 돼지치기, 아르메니아의 돼지새끼, 포돌리아의 도둑놈, 타타르의 창남, 카먀네트의 망나니, 

그리고 이 모든 세상에서 가장 골빈 놈이다. 

신 앞의 천치, 독사의 손자, 우리의 쥐가 난 좆 대가리, 돼지 주둥아리, 

당나귀 엉덩이에 도살장의 똥개이자 이교도의 대갈통이나 달고 있고 니 애미와 할 씨발새끼야!

 

이것이 너같은 좆만한 새끼에게 주는 우리 자포로제 형제들의 답장이다. 

너는 기독교의 돼지에게 먹이를 줄 정도도 안되거든? 

이제 끝을 맺는데, 우리는 달력 그딴거 안키워서 오늘이 몇 일인가 몰라. 

달은 하늘에 있는 것이고, 몇 년인가는 책에 적혀있고, 날짜는 니가 있는 동네와 똑같다. 

우리 똥꾸녕이나 쭈욱 빨아라!

-코사크의 수령 이반 시르코와 자포로제의 형제들-

 

어쨌든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메흐메트 4세는 별반 다른 군사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당시는 이미 다른지역과의 전쟁으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편지 자체가 코사크인들에게 한번 크게 패하고 나서 보낸 것이기에

다시 전투를 치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키와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거린 역사적 사실의 한가운데에서

 

이 정도의 역작을 그려낸 일리야 레핀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세부)

 

 

일리야 레핀이 메흐메트 4세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카자흐인의 회신을 그릴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을 남겼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스케치와 스터디 습작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4세에게 답장을 보내는 자포로제의 코사크'. 움직이는 버전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on November 16, 1581. 1885. oil on canvas. 254 x 19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일리야 레핀 '이반 이바노비치를 죽인 뒤 오열하는 이반뇌제. 1581년 11월 16일'

(Иван Грозный и сын его Иван 16 ноября 1581 года)

 

'이반 뇌제'라고도 불리우는 이반 4세는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남다른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대귀족들의 궁정 혁명과 전횡으로 숱한 고초를 겪은 까닭에 의심이 많고 성품이 잔인했다. 

그의 어머니 옐레나 대공비는 그가 친정에 나서기 전 권력 투쟁의 희생양으로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그의 치세 동안 치위대는 그의 사촌 형제와 친척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한때 중앙집권화를 위해 개혁을 단행하고 ‘타고난 예지와 뛰어난 언변 그리고 평론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되기도 한 그였지만, 

궁중의 어두운 유산인 암투와 음모 때문에 광신적인 사람, 모든 일에 의심을 품는 기인이 되었다. 

이 최초의 공식 차르는 심지어 아들을 때려 죽이기까지 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아들의 처소에 들른 이반 뇌제는 며느리인 황태자비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입은 옷이 매우 무례하고 음란해 보였다. 

진노한 뇌제는 갑자기 임신한 며느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내가 지르는 비명에 놀란 황태자가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왔는데, 

그 모습을 본 뇌제는 더욱 분이 치밀어 쇠지팡이로 아들의 관자놀이를 내려쳤다. 

결국 그렇게 유일하게 믿던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이반 4세가 자신의 황태자인 이반을 지팡이로 폭행해서 죽인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다. 

제목의 '1581년 11월 16일'은 이반 4세가 이 일을 저지른 날짜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러시아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레핀도 예외가 아니었다. 

레핀은 여기서 영감을 얻어서 이 이반 4세의 일화를 통해 그 광기와 공포의 감정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반 4세의 모델은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어느 노인의 얼굴을 레핀이 발견해서 따왔고, 

황태자 이반의 모델은 당시 레핀이 매우 아꼈던 작가인 프세블로드 가르쉰(Всеволод Гаршин)의 얼굴에서 따왔다.

 

그런데 레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그림은 러시아에서 이반 4세를 재평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이반 4세는 단순히 난폭한 폭군이란 평가만 받았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이반 4세를 대단히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해서 '인간미'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반 4세의 또다른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가 단순한 폭군이 아닌 입체적인 면모를 가진 군주라는 재평가를 내리게 된 계기가 된 것.

 

이 그림은 살해 장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해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반 뇌제의 모델로 레핀은 시인 겸 화가였던 그리고리 먀소예도프를, 

왕세자의 모델로는 작가 프세볼로드 가르신을 택했다.

 

그 후 일어난 일들이 물론 모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후 정신이 이상해진 가르신은 계단으로 떨어지면서 세상을 마감했다. 

계단에서 떨어질 때 그가 부딪힌 머리 부분은 불운한 그림에서 왕세자가 피를 흘리는 부분과 같았다.

 

 

공포에 질린 이반과 아들 이반 (세부)

 

잔인했지만 용맹하고 현명한 황제였는데 한번은 이반 4세가 왕자의 집을 저녁에 방문했하고 한다. 

황제를 맞는 왕자비는 겉 옷을 한 벌만 입고 있었다. 

당시 풍습은 손님을 맞이할 때는 세 벌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황제는 

며느리를 폭행하고 왕자가 이를 말렸고 격한 성격의 자제력이 없었던 이반 대제는 언쟁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맏아들 이반을 죽이게 된다.

 

황제는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왕자의 관자노리를 내려쳤다. 

이 장면은 바로 머리를 후려 치고 난 그 다음 장면이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아들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있으며, 

죽음을 앞둔 황자는 무력한 손으로 주단을 짚고 있다.

 

​이렇듯 레핀은 이반 대제의 신경질적인 외모와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아들을 죽인 자의 폭군의 비극을 여실히 폭로하였다. 

바로 그 순간 벌어진 사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희망으로 아들을 향해 몸을 던진다. 

레핀은 종종 인생에 있어서 극도로 긴장된 열정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상한 사건들에 흥미를 보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닫고 정신이 나간 아버지 이반 4세와 한 팔로는 아버지 어깨를 잡고 

한 팔로는 바닥에 팔을 기댄 아들 이반의 비극적인 모습이 펼쳐있다. 

새빨간 피가 스며 나오는 듯한 화면의 색채는 이 작품의 정서를 더욱 고양시켜준다. 

또한 이 작품 속에서 보이는 섬세한 심리, 조형적, 색채적인 뉘앙스에 대한 레핀의 붓놀림은 

이 비극적인 상황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켜준다.

 

극적 묘사에 탁월했던 레핀의 감성은 정말 최고이다. 

실제로 아들 이반은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이반 4세가 죽고 나서 왕조는 바뀌고 만다. 

광기어린 폭군이 자신의 손으로 황태자를 죽였고, 이로 인해 사실상 왕조의 대가 끊기게 된다. 

폭군 사후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하자 찬탈자들은 남은 폭군의 아들을 암살하고, 

병약해서 후손을 생산할 수 없는 폭군의 다른 아들을 허수아비로 세웠다가 그가 죽자 왕국을 빼앗는다.

 

하지만  “폭군의 암살된 아들은 사실 도망쳤고, 다른 소년이 대신 살해된 것”이라는 소문을 통해 

가짜 왕자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민중의 지지를 얻고 정권을 얻었던 소설 같은 역사가 있다.

 

[영상] 아들을 죽인 미친 왕, 뇌제 이반 4세 !

 

 

Ada girl. 1882. sketch and study.pencil. paper. 11.5 x 1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Head of a Man. 1882. oil on canvas. 11.5 x 1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Tatiana Rechinskay.  1882. oil on canvas. 77 X 57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오똑한 콧날, 살짝 벌린 아이 같은 입술과는 대조적으로 

살며시 내려뜬 그녀의 깊은 눈이 우리를 궁금하게 한다.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공업자이며 예술 후원가였던 S. I. 마몬토프의 조카인 타티야나 마몬토바를 그린 이 작품은 

러시아의 국민화가이자 인물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일리야 레핀(I. E. Repin, 1844-1930)의 드문 여성 초상화이다.

 

거장의 솜씨답게 18살 아름다운 소녀의 풍부한 감수성을 붓질 하나하나에 살려낸 화면에서는 

그녀의 오랜 고민과 조심스러운 희망이 엿보이고 단정하고 품위 있는 옷차림에 

곱슬머리를 단단히 올려 묶은 현재의 그녀가 꿈꾸듯 표현되어 있다.

 

예술사가 그라바르는 “구성의 참신함과 놀라운 기법, 섬세한 붓터치로 인해 

레핀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작품의 하나”라고 평했다. 

 

카키의 의자덮개와 벽의 색감이 정말 부드럽게 잘 어울린다.

우울한 모습의 표정 표현이 리얼하다.

 

 

Portrait of the Actress Pelagey Strepetova. 1882. oil on canvas. 50 x 61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the Artist Ivan Kramskoy. 1882.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이반 크람스코이 (Ivan Kramskoy, 1837~1887) 초상화

 

일리야 레핀 평생의 스승인 이반 크람스코이는 러시아 사실주의 발전의 공로자이고 이동전람파 결성의 주역이다.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은 문학과 음악 분야뿐만 아니라 회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이 수도사인 정교회의 이콘 화가들을 제외하고, 서구 화풍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의 근대 화가들은 

주로 황실에 소속되어 황제 일가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실주의적인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민중들의 일상적 삶의 풍경이나 

러시아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1860년대에 들어와 인텔리겐치야들의 영향을 받은 바실리 페로프와 같은 화가들은 술을 마신 성직자나 

마을의 어린이, 장례식 등과 같은 러시아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

 

러시아 민중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사실주의 화풍은 187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반 크람스코이의 주도로 결성된 이동 전람파가 그것이다.

이동 전람파 화가들 사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크람스코이는 

인물의 외면적인 모습만을 재현하는 초상화 기법과 아카데미즘 화풍의 구태의연한 기법에서 벗어나 

러시아 민중들에게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들을 선보였다.

 

<레오 톨스토이의 초상(1873)>, <황야의 그리스도(1872)>,<산지기(1874)>,<미지의 여인 (1883)>,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막에 홀로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에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Portrait of the Artist Ivan P. Pohitonov. 1882. oil on canvas. 53.5 x 64.5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the Military Engineer Andrey Delvig.  1882. oil on canvas. 108 X 86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the Poet Afanasy Fet. 1882. 1882. oil on canvas. 82 X 6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Yuriy Repin, the Artist's son. 1882. oil on canvas. 55 x 110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Railway guard. Hotkovo.1882. oil on canvas. 35 x 5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Rest. Portrait of Vera Repina, the Artist' s Wife. 1882. oil on canvas. 57 x 6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Boots of the prince. 1883. oil on cardboard. 23 x 1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Female figure in a landscape. 1883. oil on canvas. 65.5 x 8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Interior (etude). 1883. oil on canvas. 23 x 1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

 

 

Kubana. 1883.  14 x 2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painter Grigory Grigoryevich Myasoyedov. 1883. oil on canvas. 44 x 55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Russian Federation )

 

 

Portrait of Pavel Tretyakov, Founder of the Tretyakov Gallery. 트레티야코프 초상화

1883. oil on canvas. 76 x 98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writer Vsevolod Mikhailovich Garshin. Study.  1883. oil on canvas. 40 x 48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Annual Memorial Meeting Near the Wall of the Communards in the Cemetery of Père Lachaise in Paris. 

1883. oil on canvas. 60 x 37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he Revolutionary Meeting. 1883. oil on canvas. 173 x 10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Dragon Fly. Portrait of Vera Repina, the Artist's Daughter. 1884. oil on canvas. 84 x 111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composer and journalist Pavel Ivanovich Blaramberg. 1884. oil on canvas. 60 x 78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General in the form of royal guards. P.A. Cherevin. 1884. oil on cardboard. 14 x 2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Historian Nikolai Kostomarov in a coffin. 1885.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Dmitry Mendeleev. 1885. watercolor. 46 x 58 cm .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the Artist Vasily Surikov. 1885. oil on canvas.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그림 출처 : http://www.abcgallery.com
 

[영상] 일리야 레핀이 그린 초상화와 스크랴 빈의 왼손을 위한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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