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족 고유의 미술.


시베리아 석기문화 · 우라르투 문화 · 코반 문화 · 스키타이 문화에 속하며 

러시아 여러 곳에 많은 유적을 남기고 있는 미술은 모두 러시아 민족 이전의 것이다. 

러시아 미술이라고 하면 그 근원은 동슬라브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키예프대공국의 

형성기(9~10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으로서, 그 이후의 발달을 크게 보아,


① 훨씬 후인 17세기까지 계속되는 중세미술(통칭 古러시아미술)의 단계와

② 표트르 대제 이후의 제정시대 전체 및 20세기 초기에 걸친 광의(廣義)의 근대미술(소련미술 이전)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층 선명하게 민족적 특색을 보여주는 것은 고러시아 성당 건축, 

이콘(Ikon)형식의 종교회화, 그리고 19세기 후반의 강한 공산주의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사실주의 회화(移動派)이다. 

이 역사에는 유럽 미술의 르네상스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가 결여되어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고 러시아 건축의 발달


오랜 역사를 통하여 2가지 형식이 병행되어 왔음을 찾아볼 수 있다. 

목조 성당의 지붕이 변하여 천막식(天幕式)이라고 불리는 8각추(八角錐)의 탑 모양으로 된 것과 

비잔틴 양식을 이어받은 구근상(球根狀) 돔을 이고 있는 것이 있는데 후자의 지붕이 지배적이다.


그리스 십자형을 내장한 정사각형 또는 그에 가까운 형태를 기본 평면으로 하고, 

그 중심에 세운 굵은 각주(角柱)가 궁륭(穹)을 떠받치고 있으며 

이것을 덮은 드럼[鼓胴]이 높이 솟아 그 정상에 녹색이나 금색으로 빛나는 구근상 돔을 얹었다.


간혹 이것을 중심으로 조금 낮게 4기(基) 또는 보다 많은 부(副)돔이 무리를 이루어 솟아 있다. 

비잔틴의 범형(範型)은 러시아의 독자적 형식이 변형 · 소화되어 시대와 유파(流派)에 따라서 구조법 · 장식 ·

색채의 변화가 풍부하고, 또한 건물의 미적 요소를 강조함에 있어서도 장엄 · 청초 · 우아 등 한없이 다양하다.


초기의 대표적 건축물은 키예프대공국이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삼은(989) 얼마 후 

그 수도에 세운 소피아대성당(1036∼46)이다. 

후세의 증축(增築)으로 창건 당시의 취향이 상당히 손상되었지만, 성당 내부와 모자이크는 

콘스탄티노플리스의 참다운 면모를 그대로 전한 엄격함과 숭고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브고로트의 소피아대성당(1045∼52)은 수직적인 형식이 아름답고 키예프의 양식을 

다시 민족문화적으로 발전시킨 또 하나의 걸작이다. 

노브고로트는 ‘민회(民會)’식 공화제를 기초로 실력을 구축한 상공업도시로서 

키예프를 쇠퇴케 하면서 자행된 ‘타타르인(人)의 파괴’를 모면하고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 

예술상으로도 노브고로트시대라고 불리는 알찬 시기를 이룩하였으며, 시내에는 유리예프수도원, 

근교에는 네레디츠아의 구세주성당, 그 밖에 이색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동부의 도시 블라디미르를 중심으로 또다른 우세한 유파가 일어났는데, 

이곳에도 시내에는 성모피승천성당(聖母被昇天聖堂:1158∼61)·성드미트리성당, 

근처의 네를리 강변에 있는 작은 성당 등의 우수한 건축물이 많다. 

수즈달리 · 프스코프 · 야로슬라블 · 로스토프 등의 여러 도시도 각각 성당조영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15∼16세기에 타타르인의 굴레를 벗어나 민족통일의 길을 연 모스크바대공국이 흥하게 되자 

건축예술도 종합과 약진의 새 기운을 맞이하였다. 

여기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내부의 계획을 의뢰받은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크게 기여했다.


그들은 러시아 건축의 전통을 존중하여 여러 유파의 미적 특성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거기에서 얻은 창조의 근간에 르네상스적인 세부 요소들을 교묘하게 결합시켰다.


크렘린 안에 있는 성모피승천성당 · 수태고지성당(受胎告知聖堂) · 수천사성당(首天使聖堂) · 

이반대제 종탑에도, 고러시아 건축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붉은 광장의 바실리대성당(1555∼60)에도, 

근교에 있는 코로멘스코에의 그리스도승천성당에도 민족의 힘찬 숨결이 어려 있다. 

실제로, 바실리블라젠누이성당은 한국(汗國)의 영토인 카잔의 정복을, 

또 노보데비치수도원은 스몰렌스크의 탈환을 기념하여 착공한 것이었다.


17세기는 고러시아 건축에 있어서 최후의 위기와 모색의 시기였다. 

서서히 바로크의 요소가 침투하여 대체로 장식적 성격이 강화되었고, 

어떤 것은 호화로운 축제 기분에 차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몽상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기의 우수한 작품으로는 모스크바 푸틴키의 성모탄생성당, 

근교인 필리에 있는 성모대원(聖母代願)성당, 크렘린의 텔렘노이궁전을 들 수 있다.


이콘 회화와 그 특징


러시아 미술에서 회화적 표현형식으로서의 벽화와 이콘(Ikon)도 역시 

그 원천은 비잔틴 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양자는 일체가 되어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 듯 성당건축과 함께 발달하여 왔다. 

그러나 점차 러시아적 특색이 이콘 회화 쪽에 짙게 나타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명작 《블라디미르의 성모》는 비잔틴 화가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나, 

러시아의 이콘 화가들에 의해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음울한 색조와 풍부한 내용을 가진 정통파적(新헬레니즘적)인 작풍이 충실하게 지켜졌다.


이런 수법은 12세기 말의 유명한 이콘인 《금발의 천사》 등을 보아도 분명하며 

노브고로트파(派)의 거장 페오판 그레크가 그린 노브고로트 성당 벽화 등에는 

그 정통파적 수법이 러시아적 양식 속에 훌륭히 살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브고로트시대 말기 (14∼15세기)에 이르면 그것과는 이질적이지만 

지극히 러시아적인 표현특성이 두드러진다. 

이상하게 환상적인 분위기, 극단적으로 가늘고 긴 인체비레(人體比例),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은 여러 산(山)들의 공간적 왜곡, 

금속의 감촉을 느끼게 하는 색이나 선의 선명함, 화면 전체에 넘치는 리듬의 신선함과 또렷함, 

이러한 특성은 중세 그리스나 동유럽의 이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15∼16세기의 모스크바파에 이르러 이콘 회화는 또 다시 큰 전기를 맞이한다. 

이 유파의 최대 화가인 루블료프의 이콘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에도 또한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성당 프레스코에도 음악적으로 매끄러운 리듬, 미묘한 색채적 조화, 고귀한 표정과 자태 등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이콘 회화는 빈틈없는 양식화의 짜임새로 고귀한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한결같은 심정을 느끼게 한다. 

러시아 이콘 회화의 황금시대가 이 시대의 모스크바파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스펜스키 사원 (Uspensky Cathedral, 성모승천 성당)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 서쪽 대성당 광장(Cathedral Square) 북쪽면에 위치한다. 

15세기 말 이반 4세의 명으로 1475년에 지어지기 시작해 1480년에 완공되었다.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건축가인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디(Aristotele Fioravanti)를 러시아로 초빙하여 건축하였다. 

그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건축과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블라디미르(Vladimir)를 여행하였으며 

그곳에 있는 대성당(Assumption Cathedral)의 구조를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5년에 걸쳐 만들어진 교회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건축 예술과 르네상스 교회 건축 미술을 잘 조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건물의 외형은 5개의 황금색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예수와 네 명의 사도 

마테(matthew), 마가(mark), 누가(luke), 요한(john)을 의미한다. 

그리고 건물의 형태는 직사각형을 이룬다. 


주 출입문은 동쪽을 향하고 북쪽과 남쪽에 출입문이 위치한다. 

재단은 건물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당 내부는 화려한 재단과 성인들의 이콘화가 프레스코로 그려져 있으며, 

특히 블라디미르의 성모(Theotokos of Vladimir),  성 게오르기 상과 삼위일체 상이 유명하다. 

과거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성모승천 대성당 (The Assumption Cathedral, Успенский Собор)


우스펜스키(Uspenski) 대사원이라고 일컬으며 성모 마리아의 승천(昇天)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사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기 위해 다섯 개의 황금을 입힌 양파 모양의 아름다운 지붕을 완성하였는데 

이반 3세는 이러한 아름다운 양식을 이탈리아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건축가 '알베르티 피오라반티'를 

감옥에 투옥하였으며 그는 결국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다.


크렘린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역대 황제들의 대관식이 치러졌고, 총주교들이 선출되었으며, 

전쟁에 앞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가지는 등 국가 공식 행사 때만 사용하면서 가장 신성시 여겼던 곳이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감사하는 기도회를 자졌으며, 

국가문서나 명령서를 발표하였고 대주교와 총주교들의 장례를 치룬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도 새해 전야 등 특별한 날에는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내부는 천장과 벽 전체가 러시아 정교 교리의 요구 사항들을 충실하게 담은 성화(이콘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나폴레옹군이 점령했을 당시 이 사원은 마굿간으로 사용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러시아 정교회를 이끄는 핵심적이고도 역사적인 성당이다.


5개의 황금돔은 나폴레옹군이 퇴각할 때 빼앗은 금 300kg과 은 5톤으로 장식한 것으로 

중앙에 커다란 돔은 예수 그리스도를 4면의 돔은 사도들을 상징한다. 

러시아 정교회의 특징은 의자가 없고 서서 예배를 본다.

사원내부는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이꼰과 조각, 황제 일가들이 예배를 보던 자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스펜스키 사원 (Assumption Cathedral, 성모승천 성당)


우스펜스키 사원은 러시아 제국의 국교 사원으로 지정되어 이곳에서 차르의 대관식을 치르기도 했다.

양파 모양을 하고 있는 4개 푸른돔의 중앙에는 금색의 큰 돔이 있어 마치 큰 과자의 나라로 보일때도 있다. 

사원의 벽과 지붕은 이콘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곳의 이콘을 그린 화가의 수가 무려 천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12세기의 성 게오르기상과 13~14세기의 삼위 일체상이다. 

그외에 나폴레옹이 퇴각할 때 훔친 300kg의 금과 은을 되찾아서 만들었다고 하는 은 샹들리에가 볼만하며 

검은색 래커를 입힌 동판 위에 그린 성서의 20장면을 금으로 묘사해 놓은 작품도 멋지다.


대성당의 벽과 지붕은 이콘의 프레스코화로 꾸며졌는데 이곳에 성화를 그린 화가의 수는 무려 1천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볼만한 것은 12세기의 성 게오르기 상과 13-14세기의 삼위일체상이다. 

서쪽의 반을 둘러싸고 있는 벽 주위에는 부주교와 총주교의 영묘가 있다. 

이밖에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훔친 300kg의 금과 5톤의 은을 되찾아 만들었다는 은 샹들리에와 

검은색 락카를 칠한 동판 위에 성서의 20장면을 금으로 그린 그림도 있다.


우스펜스키 사원 (Uspensky Cathedral)


우스펜스키 사원(성모승천 성당)은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의 이콘들이 보존되어 있고 

1540년대부터 약 300년 간 주교의 임명식과 황제의 대관식,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후에는 법령을 공포하기도 하였다.


5개의 황금색 돔 중에서 중앙의 커다란 돔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위의 4개 돔은 4명의 사도들을 상징한다.


우스펜스키 사원의 남동쪽 외관


우스펜스키성당 (성모승천사원) 사원 내에는 15∼17세기의 벽화, 11∼17세기의 이콘,   

19세기의 은칠 한 부조가 있는 성단과 예배당의 벽 등이 있다. 

특히 12세기의 성 게오르기상이나 14세기의 성삼위일체 이콘화, 이반 황제의 조옥좌, 주교석조의 목조옥좌, 은 샹들리에 등이 있다.    

혁명 전에는 국가의 전통적인 양식, 황제의 결혼식 등이 행해졌던 곳이다.


Paintings on the southern faсade the Assumption cathedral. 17th – 18th centuries

우스펜스키 사원의 남쪽 정면에 그림. 17 ~ 18 세기


황족들이 이용했다는 남문 위에는 ‘블라디미르의 성모’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여섯 명의 성자들, 그리스도와 천사들이 그려져 있다.
문 주변에는 아름다운 무늬의 아치형 기둥들이 몇 겹으로 세워져 있다.

​러시아 정교회를 이끄는 핵심적인 장소였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 12사도 등 성경 내용을 담은 성화로 가득하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종교 화가인 디오니시의 작품으로 섬세함이 돋보인다.
성당 안은 창문이 작아 빛이 적게 들어와 종교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 같다.

우스펜스키 사원의 외부 벽화는 17 세기에서 18 세기 동안 반복적으로 다시 그려지고 개조되었다. 
그러나 그림의 디자인과 초기 처형은 아마도 성당 건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성당 광장을 향한 주요 남쪽 정면의 중앙 벽 부분은 장엄한 블라디미르 버진과 
대천사 마이클과 가브리엘의 이미지에서 볼 수있는 기념비로 장식되어 있다. 
이미지는 우스펜스키 사원에 보관되어 러시아의 주요 성물과 팔라듐으로 숭배된 기적의 아이콘을 확대하여 재현한 것이다.

성모님의 이미지 아래에는 피터, 알렉 시우스, 요나, 필립, 그리고 노브고로드 성도 니스타스 주교와 
이오안 대주교를 대표하는 성모상이 그려져 있다. 
노브고로드(Novgorod) 성도의 이미지는 모스크바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1478년 
이반 3세 (Ivan III)에 의해 이전 독립 보아공화국인 노브고로드의 정복과 관련이 있다.

Paintings on the southern faсade the Assumption cathedral. 17th – 18th centuries

남쪽 Fafaade 우스펜스키 사원에 그림. 17 ~ 18 세기


프레스코 화 (fresco painting)


소석회(消石灰)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

본래의 뜻은 회반죽 벽이 마르기 전, 즉 축축하고 '신선'(이탈리아어로 프레스코)할 때

물로 녹인 안료로 그리는 부온 프레스코(buon fresco) 기법 및 그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회반죽이 마른 후 그리는 기법을 세코(secco), 어느 정도 마른 벽에 그리는 것을 

메초 프레스코(mezzo fresco)라고 부르지만 이들 기법이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아 확실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작과정은 회반죽으로 미리 벽에 초벌질을 하고, 그 위에 시노피아 (sinopia)라고 하는 실제 치수의 소묘를 그린다. 

시노피아를 그릴 수 없는 경우에는 인토나코(intonaco) 다음에 스폴베로(spolvero)나 카르퉁(판지) 방법을 쓴다.


채색할 때에는 아침에 완성 가능한 예정부분(조르나타:giornata)에만 마무리칠의 회반죽을 칠한다.

이어 내(耐)알칼리성 토성안료를 물에 개어 그림을 그린다. 

정해진 시간에 조르나타가 다 채워질 수 없을 때에는 말라버리므로 

그 부분의 회반죽을 긁어내고 다시 인토나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정이 불가능하므로 숙련을 필요로 하는 기법이다.


The virgin of Vladimir. 블라디미르의 성모

Fresco on the southern faсade of the Assumption cathedral.

17th – 18th centuries.


Metropolitan Philip, bishop Nicetas and archbishop Ioann

메트로폴리탄 필립, 니스타스 주교 및 이오안 대주교

Fresco on the Southern facade of the Assumption cathedral.

17th – 18th centuries.


Foundation of the Assumption Cathedral

Marginal scene from the icon “Metropolitan Peter with Scenes from his Life”.

Workshop of Dionysius. Early 16th century


Assumption Cathedral

Marginal scene from the icon “Metropolitan Peter with Scenes from his Life”.

Workshop of Dionysius. Early 16th century


Assumption Cathedral

Marginal scene from the icon “Metropolitan Peter with Scenes from his Life”.

Workshop of Dionysius. Early 16th century


Assumption Cathedral

North-eastern facade 북동쪽 정면


Assumption Cathedral. Construction plans

13th century (?)

1326-1327

1472-1474

1475-1479

Draft by V. Fyodorov


건축가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티 (Aristotele Fioravanti)는 1475년 3월 26일 

아들 안드레이 (Andrey)와 하인 피에트로 (Pietro)와 함께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피오라반티(Fioravanti)는 대성당을 건축할 때 혼합 기술을 사용했다. 

그는 기둥, 아치 및 드럼을 만드는 데 특히 단단한 벽돌로 블록 작업과 전통적인 흰색 돌 블록을 번갈아 대체했다. 

이것은 건물의 상단 부분이 벽과 기둥에 가해지는 하중을 크게 줄였다.


러시아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칩 스톤 백필과 함께 벽돌을 사용하는 대신, Aristotele은 보다 단단한 컷 스톤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오크는 아니지만 건축을 강화하기 위해 철제 끈을 벽에 깔았다. 

건물은 정확한 계산에 기초하여 세워졌다. 

Muscovites를 놀라게 한 이탈리아 건축가의 새로운 보조기구 및 기구의 구현은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건축 가격을 낮추었다.


건설 기간 동안 대도시의 무덤은 이반 대 벨 타워 (Ivan the Great Bell Tower) 기슭에 위치한 

세인트 존 클라 마쿠스 교회 (St John Climacus Church)로 옮겨졌다. 

새 건물이 건립 된 후 엄숙한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무덤은 이전 장소로 돌아 왔다.


Assumption Cathedral

황제와 황태자 미하일 표도로비치의 대관식. Moscow, 1672-1673


Cathedral Square of the Moscow Kremlin - F. Alekseev, 1800s

모스크바 크렘린의 대성당 광장 - 알렉 세프, 1800 년대


Assumption Cathedral. View from the Cathedral Square

크렘린의 대성당 광장에서 보기


Assumption Cathedral, Eastern facade 동부 외관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티 (Aristotele Fioravanti)는 고대 크로스 앤 큐폴라교회인 블라디미르 (Vladimir)의 대성당 패턴을 따랐다. 

동시에 그는 새로운 건축 구조를 만들었다. 대성당은 작은 흰색 돌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특히 단단하다. 모든 부분의 크기가 같고 제단 apses는 평평하고 

거대한 lesenes 뒤에 숨겨져 있으며 거대한 tholobates는 더 가깝다. 

좁은 창문과 작은 블라인드 아케이드 프리즈가 벽의 표면을 강조한다. 


대성당의 건축 독창성은 내부에서 더 잘 보인다. 

새로운 기술 지원의 구현으로 성전의 모든 부분이 확대되었다. 

둥근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는 곳으로, 거대한 구개 방의 인상을 준다. 

동시대의 사람들은 대성당의 "특별한 위엄과 높이, 광도 및 넓음"에 놀랐다.


Anointing of Dmitry Ivanovich (grandson of Ivan III). Mid 16th century

이반 3세의 손자 드미트리 이바노비치의 기름 부음. 16 세기 중반


Anointing of Ivan the Terrible. Mid 16th century. 

이반의 기름 부음. 16 세기 중반

Anointing of Ivan the Terrible. Mid 16th century

이반의 기름 부음. 16 세기 중반


Anointing of Mikhail Romanov. Moscow, 1672-1673

미하일 로마노프(Mikhail Romanov)의 기름 부음. 모스크바, 1672-1673


Anointing of Mikhail Romanov. Moscow, 1672-1673

미하일 로마노프(Mikhail Romanov)의 기름 부음. 모스크바, 1672-1673


Procession at the Cathedral Square. Moscow, 1672-1673

대성당 광장에서 행렬. 모스크바, 1672-1673


The Assumption Cathedral. Eastern facade

우스펜스키 사원의 동부 외관


우스펜스키 사원의 건축 이미지는 동시대 인들을 놀라게 했으며, 

전통과 독창성의 혼합에 의해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모스크바 대성당과 블라디미르 모델 사이의 유사점은 첫눈에 분명하다. 

숭고한 5 돔 대성당은 모두 흰 돌담, 기둥 모양의 프리즈 및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 속도의 교차로 형성된 중심 십자가의 가지는 높이 또는 너비로 눈에 띄지 않으며 

대성당의 건축의 원래 특징을 구성한다. 

결과적으로 성전의 레이아웃은 동일한 사각형으로 나뉜다. 

파사드 벽의 수직 부분은 동일하므로 볼륨의 견고함을 인식하고 건물 파사드의 표현성을 강조합니다.


Assumption cathedral. Southern facade

우스펜스키 사원의 남부 외관


Assumption cathedral. Southern façade. 1475-1479

Drawing by F. Richter. Mid-19th century.

우스펜스키 사원의 남부 파사드. 1475-1479

F. Richter의 그림. 19 세기 중반.


르네상스의 건축 원칙에 따라 이탈리아 건축가는 건물이 볼륨 관점에서 인식되지 않고 

대성당 광장의 앙상블에 조화롭게 통합 될 것으로 기대했다. 

17세기까지 대성당 광장의 모든 건물은 우스펜스키 사원의 기본 건축 형태와 

구체적인 장식 요소에 중점을 두고 때로는 복사했다.


건물의 주요 남쪽 외관은 가장 장관이다. 

그것은 단단한 필라스터 끈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똑같은 반원형의 아치형 아치로 상단 창문이 좁아져 있다. 

화이트스톤 블록으로 만든 벽은 거대한 프로파일 형판에 배치된다. 

블라디미르 성당에서 빌려 왔지만 사원의 외관을 둘러싼 기둥 모양의 프리즈에는 

블라디미르와 수즈달 건축에 전형적인 소성 표현이 없다. 

비행기를 깨뜨리지 않고 벽의 덩어리에 새겨진 것처럼 보인다. 

하부 창문은 각 벽 부분의 중앙에 있는 프리즈의 아치에 새겨져 있다.


대성당 광장과 메트로폴리탄 궁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의식으로 사용되는 선조와 북부 포털은 

반원형 아치와 모스크바 장식 “비드”의 패턴이 심한 확장 포털로 구성되어 있다. 

차르와 계층의 의식적인 출발을 위해 넓은 제단이 있는 높은 계단이 그들을 방문한다. 

피오라반티 (Pioravanti)는 메트로폴리탄의 궁전과 

홈 오브 더 디포지션 (Deposition of Deposition)을 마주보고 있는 서쪽에만 있으며, 

전통적인 역 피라미드 모양의 장식 디테일로 석재를 지었다.


우스펜스키 사원의 외관은 건축의 비대칭 성을 특징으로 한다. 

대성당의 돔은 거대한 중앙 큐폴라 주위에 밀접하게 그룹화되어 있으며 

남쪽과 북쪽의 포털은 동쪽으로 이동한다. 

동부 제단 apses에 관해서는, 블라인드 미르 대성당의 것과는 달리 

부피가 적고 맹인 아치에 비해 약간 낮으며 북쪽과 남쪽의 기둥으로 숨겨져 있다. 

이것은 성전이 "단일 돌처럼"지어 졌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동시대 사람들이 분명히 느끼는 건물의 견고함에 대한 인식을 과장했다.


 Assumption cathedral. Photograph Early 16th century

우스펜스키 사원. 15 세기 말 ~ 16 세기 초 사진


30. Ivan Mikhailovich Snegirev : 우스펜스키 사원 (1856)


모스크바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정 대성당은 1812 년 전쟁 중에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프랑스 군이 모스크바에 입국 한 날인 9 월 2 일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화재는 9 월 8 일까지 

모스크바 건물의 거의 4 분의 3을 파괴했다. 

크렘린은 불을 피할 위험이 너무 커서 가드와 함께 있던 나폴레옹이 잠시 그를 떠나야했지만 불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나 불은 아끼지 않았고, 적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Assumption cathedral. Photograph Early 20th century

우스펜스키 사원. 20 세기 초 사진


우스펜스키 사원 북동쪽에서 인증샷


우스펜스키 사원 북동쪽에서 인증샷


우스펜스키 사원 북


Murals on the northern portal of the Assumption Cathedral

우스펜스키 사원의 북쪽 정면 포털에 벽화


총 대주교의 궁전을 마주하고 있는 북부 외관은 6명의 가장 존경받는 러시아 성도들과 

주요 수도원의 창시자인 보로프스크의 파프누티우스, 이사야, 이그나티우스, 로스토프의 레온티우스, 

드미트리 프리루츠키, 라도네즈의 세르지오 이미지로 맹목적인 아케이드 프리즈로 장식되어 있다. 

이 성도들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남쪽 성전 벽의 벽화에 묘사된 성도의 선택과 비교하여 

15~16 세기 예술의 기념비에 더 전통적이다.


로스토프의 세 성도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로스토프 대주교 Vassian이 벽화를 주문하고 

새로운 우스펜스키 사원의 상징성에 참여함으로써 설명할 수있을 것이다. 


Northern portal of the Assumption Cathedral.

우스펜스키 사원의 북쪽 정면


Henry Charles Brewer (1866 ~ 1950)

헨리 찰스 브루어 (영국 1866-1950)


Cathedral Square of the Moscow Kremlin. F. Alekseev. 1800s

모스크바 크렘린의 대성당 광장. 알렉세프. 1800 년대


옥사나 파블로바. 러시아의 심장. 2002년


1479년 이반대제가, 이곳에 맨 먼저 세운 석조 성당이다.

타타르의 지배를 벗어나 중앙집권 체제로 국력을 과시한 것이다.

맨 위 아치형 박공 아래, 기둥 위에 모자를 씌우듯 돔을 얹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돔의 개수가 특정한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돔이 하나이면 그리스도, 셋이면 성삼위, 다섯이면 그리스도와 4복음서를 쓴 네 사도를 뜻한다는 것.

5개의 황금색 돔 중에서 중앙의 커다란 돔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위의 4개 돔은 4명의 사도들을 상징한다.

 

곡선 지붕 아래(박공)에는 '블라디미르의 성모' 성화가 그려져 있다.

12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숭앙받는 이콘이다.


[영상] 우스펜스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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