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항구에서 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17세기 초에 세워졌다.
건설 당시에 번역상의 오류로 황금 미나렛 하나를 세우는 대신 6개의 미나렛이 세워졌다.
"alti(여섯)"과 "altin(황금)"을 혼동한 것이다.


건축가에게는 천만 다행스럽게도, 술탄은 미나렛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고,
덕분에 6개의 미나렛 모두―그리고 건축가도―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 술탄아흐메트는 터키에서 유일하게 6개의 미나렛을 자랑하는 모스크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은 배로 이스탄불로 들어올 때 보이는 전경이다.


멀리서도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웅장한 실루엣을 알아볼 수 있다.
황혼 무렵 보스포루스 해협의 크루즈를 타면 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와 성 소피아 성당 (Hagia Sophia)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직경이 27.5m, 높이가 43m에 다다르는 술탄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는
규모면에서 터키 최대의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양식을 모방, 발전시켜 건축한 독특한 형상의 회교사원이다.


그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다.
돔의 200개가 넘는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 오는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 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성 소피아 사원에 대적하기 위해 1616년 슐탄 아메트가 건축하였으며, 블루 모스크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돔 주위에 7개의 첨탑과 4개의 부속 돔에 기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외국 관광객에게는 블루 모스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보스포러스해협 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2006. 3. 14 인증샷.


바다를 배경에 두고 뒤에서 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1609년부터 1617년까지 7년간의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터키의 대표적인 모스크(사원)로서
내부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터키 블루색상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슬람의 중요 종교 행사와 집회등의 공식 행사를 치루던 곳으로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공식 방문한 곳이다.
푸른 타일의 화려한 장식 뿐 아니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스테인 글라스 장식도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위에서 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터키어: Sultan Ahmet Camii)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대표적인 모스크로,
세계문화유산인 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유서깊은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스크 안 벽면을 온통 뒤덮은 푸른빛을 띠는 도자기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늘을 배경에 두고 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하기아 소피아에서 불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가운데 커다란 돔에

수많은 작은 돔을 얹은 형태로 구성되어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수많은 기둥이 받치는 각각의 아치 위에

작은 돔이 둥글게 솟았고, 4단을 이루며 돔 숫자는 점점 작아지다가 마지막 거대한 중앙 돔에 이른다.
직경 23.5m의 거대한 중앙 돔은 작은 네 개의 돔이 받치고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출입구 풍경


돔 주변에는 수많은 창을 내어 자연의 빛이 내부로 비치게 했다.
돔 위에는 황금색 장식을 달았고 맨 꼭대기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별과 초승달을 얹었다.


2006. 3. 13. 방문 기념 인증샷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전경


오스만 제국 때의 모스크는 신학교, 목욕탕, 시장, 병원 등 사회 시설을 주변에 다 갖추고 있었는데,
이런 시설을 퀼리예라고 부른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도 이 같은 복합 시설을 갖춘 모스크였다.


이 모스크는 전 세계에서 여섯 개의 미나렛을 갖고 있는 유일한 모스크로

오스만 제국 술탄은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예배를 보았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전경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크고 작은 돔의 균형과 모스크 양쪽에 쭉 뻗어 세워진 미나렛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모두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이중 모스크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개로 이 남쪽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2006. 3. 13.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출입구에서 인증샷.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출입구


모스크의 안뜰 가운데는 샤드르반이라는 분수대가 있고 사원 옆에는

신자들이 기도 전에 손발을 닦는 수도 시설인 육각형 모양의 세정소가 있다.


지금은 밀려드는 신자들을 위해 정원 바깥에 따로 대규모 세정시설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에

이 세정소는 오늘날 쓰이지 않는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첫 번째 입구


모스크 내부는 약 2만 1,000개에 달하는 파란색의 이즈닉 타일과

푸른빛의 260개 유리창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서양 사람들은 발음하기 어려운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로 부르기보다는 파란색의 타일이 많은 사원이라 하여 ‘블루 모스크’라 부른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두 번째 입구


모스크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2층 회랑은 현재 방문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에 있는 거대한 돔은 네 개의 거대한 기둥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다.


돔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육중하게 만들어진 이 기둥은

직경이 5m가 넘어 일명 코끼리의 다리라고 불린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두 번째 입구 돔과 탑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모스크의 설교단(민바르)에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 설교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술탄의 전용 기도실이 있다.

여름에는 모스크의 내부를 아름답게 밝혀주는 조명이 켜진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두 번째 입구 탑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의 바로 북쪽 자리에 히포드롬이라 불리는 고대 동로마 제국의 경기장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도 이곳을 말의 광장이라는 뜻의 아트 메이다느라고 불렀다.


히포드롬에는 과거의 웅대한 모습은 다 사라지고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청동 뱀 기둥, 유스티니아누스 기념탑 등
세 개의 기념물이 독일이 만들어 기증한 분수대와 함께 남아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건물 탑


1616년에 오스만 제국 술탄 아흐메트 1세가 건축가 자개기술공(세데프캬르)

메흐메트 아아(Sedefkâr Mehmet Ağa 1540~1617)에게 명령하여 짓게 한 모스크로,
건축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메흐메트의 마지막 건축 작품이다.


당시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간 술탄이 금(알튼 altın)으로 모스크를 지으라고 무리한 명령을 내리자

도저히 불가능했던 터라 금이 아닌 6개(알트 altı)로 잘못 듣었다고 하여 첨탑을 6개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두 번째 건물 문을 지나면서


모스크는 첨탑이 몇 개인가가 그 모스크의 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성지인 메카의 모스크와 첨탑의 수가 같다는 건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메카의 카바(Kâbe) 신전도 처음에는 첨탑이 6개였으나 술탄 아흐메트 1세가 건설비를 지원해서 7개가 되었고,
나중에 2개를 증축하여서 현재는 9개나 된다.


공교롭게도 아흐메트 1세도 메흐메트 아아랑 같은 1617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메흐메트 아아는 50살이나 나이 차가 있어 27살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옆 세정소


사원 옆에는 신자들이 기도 전에 손발을 닦는 수도 시설인 육각형 모양의 세정소가 있다.
지금은 밀려드는 신자들을 위해 정원 바깥에 따로 대규모 세정시설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에

이 세정소는 오늘날 쓰이지 않는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그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하기아 소피아에 비해서 평가가 낮은 편이다.


아야 소피아가 거대한 돔형 건축물로 탄생한 것이 537년이고

블루모스크의 완공은 1616년이니 무려 1079년 후이다.


하지만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를 건설하기 전에 오스만 제국도 셀리미예 모스크 등의 많은 건축적 경험을 쌓았고,
아야 소피아가 가지고 있는 많은 단점들을 넘어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좀 더 완성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에 쓰인 푸른 타일들은

17세기 이즈니크 타일의 걸작으로 높은 문화, 예술적 가치가 있다.


아무튼 역사적 의의야 아야 소피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지만,

어찌되었건 둘 다 나란히 위치한 건축의 걸작이란 점은 분명하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입구


역시나 관광객이 많이 온다.

다만 박물관인 아야 소피아와 달리 여긴 모스크라서 들어가기가 까다롭다.


현지 무슬림들이 기도할때는 더더욱. 다행히 비(非)무슬림들도 들어갈 순 있지만,

신발을 벗어야 하는 등 예배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여자라면 스카프를 챙겨가야 한다.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으면 모스크 안에 들어갈 수 없는데 후드 모자를 써도 안된다.


입구에서 스카프와 치마를 빌려주기 때문에 없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지만,
이스탄불에 모스크가 워낙 많다보니 이쪽을 여행할 땐 그냥 속편하게 스카프를 준비하는게 좋다.


하지만 무슬림국가에 온 이상, 비무슬림이어도 어느정도 예를 갖춰 옷을 챙겨입는게 좋다.
모스크에 들어갈 때 남자는 무릎부터 팔뚝까지 가리고,

여자는 발목부터 손목, 머리카락을 다 가려야 한다.


사원 앞 정결을 위한 세정소.

정원 바깥에 따로 세정소를 마련해 놓았다.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손과 발을 씻는다.


예배하러 온 사람들은 여기 세정소에서 모두 손과 발을 씻는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해가 뜰때 들어오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타일에 반사되어 정말 아름답다고 한다. 
다만 그 시간대에는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입구의 경비들과 이야기를 하던지 아니면 무슬림인척 하던가 하라고.


참고로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으로 입장이 통제될 때는

근처의 건물에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에 대한 소개영상을 상영하고,
이슬람교 전반적인 것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광경. 예배하는 모습


내부 광경.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관광객이 다니는 통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예배드리는 곳.

오른쪽(Minbar)에 민바르가 있다.


민바르 (Minbar)


미흐라브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편에 위치한다.
모스크 전반에 사용된 건축 자재에 따라 민바르의 제작 재료도 달라지는데,
목재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우에 따라 석재로 만들기도 한다.


민바르는 부조 혹은 투각, 상감기법으로 《코란》명문을 새겨 넣거나
이슬람 예술에 주로 사용되는 식물 문양의 패턴으로 장식한다.


기능은 예배 의식을 마친 후 이맘이 올라가 설교를 하는 곳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 개의 단으로 구성된 곳에 올라 설교한 것이 민바르의 시초이다.
이후 여러 개의 층계가 놓인 설교단이 제작되었다.


가장 높은 단에 올라가는 것은 절대자(하느님, 알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은 언제나 겸손한 존재여야 한다는 종교적 교리 및 해석에 따라 최상단에 올라가는 것을 금기하고 있다.


이맘의 경우에도 위에서 두 번째 층계에 올라선다.
원칙상 민바르 위에 올라서서 설교하는 것은 무슬림이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종교 지도자로 여겨지는 이맘만이 이용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전경.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전경.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디자인


○ 스테인드 글라스는 여러가지 빛의 조작효과와 구조상 여건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 요구된다.
반면 어떤 재료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고도의 동적인 현상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비세속적이며 생생하고 재치 있는 독특한 효과를 낸다.


광선은 하루의 시간과 계절, 날씨에 따라 계속 변화해서 빛의 효과에 의한 색조와 강도가

부드럽고 온화한 것에서 찬란하고 화려한 것으로 끊임없이 바뀌게 된다.


또한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초원과 숲, 온실과 감옥 등)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지며,
개개인이 취하게 되는 시각의 자발적인 선택 과정도 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 창을 통한 광선으로만 건축물의 밝기를 조절했던 중세 교회 건축물에서 12~13세기초의 예술가들은
주변의 어둠과 대비하여 찬란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위해 깊고 진한 루비와 푸른색의 유리창을 창작했고,
또 효과적으로 광선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그리자유 화법으로 불투명 메시(mesh)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교회의 벽이 더 많은 광선을 받아들이도록 개방됨에 따라 14~15세기에는

전보다 완화되고 절제된 색상조화로써 덜 침침한 효과를 선호하는 실질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재료와 기술 유리를 만들 때 유리의 착색은 녹은 상태의 유리에 붉은색은 동(銅), 푸른색은 코발트,
자주색은 망간, 노란색은 안티모니, 초록색은 철과 같은 금속 산화물을 첨가하여 이루어진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 중세의 유리판은 유리불기법(blow-molding)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녹은 유리를 대롱을 통해 방울을 불어 만든 다음 그것의 끝을 잘라 통형이 되게 한다.
한쪽 끝에서 길이로 이 통형을 갈라서 펴 판형을 만들고 이를 가마에 넣어 서서히 냉각시켜 완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얇은 색유리판은 스테인드 글라스 작가의 디자인에 따라 여러 조각으로 잘라낸 다음
이 색색의 유리조각들은 납띠를 가장자리에 고정시켜 모아 붙여서 전체 디자인에 맞게 구성한다.


이때 납띠는 그 자체도 디자인의 한 부분 역할을 하며,

개개의 납띠를 두른 조각들을 모아 철틀에 끼워넣어 유리창을 만든다.
또 유리조각들 표면에는 검은색 유리질 에나멜로 세부 디자인을 그려넣어 섬세한 장식 표현을 만들고 있다.


12~13세기에 만들어진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은 우연이든 계획된 의도였든간에
유리의 두께가 일정치 않은 등 미숙하면서도 세련되어 이상적인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리기술이 발전해 더 크고 얇고 판판한 유리를 생산할 수 있었으나
이후에는 미학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이전보다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후에 고딕 복고주의자들은 이런 결과를 인식하고 12~13세기에 쓰였던 소위 앙티크 유리의 색과 질,
음영효과를 발전시켜 초창기 수법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천장.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전통 수법


스테인드 글라스 예술은 '모자이크'와 '에나멜링'예술이 투명한 소재로 전환,

표현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모자이크 제작에서 여러 조각의 유리로써 기념적인 도상을 구성하는 개념이 생겨났고,
에나멜링에서는 금속 띠(테)로 유리조각들을 모아 붙이는 기술과 금속띠 자체를 디자인한 점,
또 세부장식이나 명문을 그려넣는 안료인 유리질 에나멜을 만들어 쓰는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에나멜 세공).


1110~40년 사이에 테오필로스(12세기 헬마쉬하우젠의 야금술사 루제루스로 추정됨) 수사가 쓴
〈공예 개설 Schedula diversarum artium〉에 최초로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기술이 서술되어 있다.


이 전통기법은 먼저 색깔의 구분이 나타나 있는 백도제(白塗劑)가 입혀진 탁자 위에 그려놓고,
색에 맞추어 각각의 유리판에 달구어진 뜨거운 철로 된 연장을 대고 움직여서 정확한 크기와 형태로 유리를 잘라낸 후,
눈금이 새겨진 인두(grozing iron)로 다시 가장자리를 다듬는다.
이때 조각들은 서로 접합시킬 납테를 두를 여분을 고려해야 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기둥과 내부 천장.


○ 스테인드 글라스의 필요한 세부 디자인은 유리질 에나멜로 유리조각 위에 그려넣은 후에
가마에 넣어서 에나멜이 유리에 녹아 붙기에 적절한 온도로 가열한다.


그리고, 탁자 위에서 2개의 긴 납띠로 유리조각을 서로 연결하여 모아 붙여 전체 디자인에 맞게 구성하게 되는데,
유리의 가장자리에 둘리어지는 홈이 패인 납띠는 그 단면이 H자형으로 되어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천장.


○ 스테인드 글라스의 초창기 작품인 〈예언자 Prophets〉 같은 단일상으로 된 란셋 창에서는

납테에 의한 구획은 순전히 기능적이었으나, 이어 창의 크기가 커지면서 이런 구획은 다루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유리창을 수직과 수평으로 더 작게 분할하는 방법이 개발되었으며

따라서 유리창 전체 디자인에 맞도록 기하학무늬를 이루게 되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천장.


○ 이는 사실 큰 고딕 성당의 원형 창이 생겨나는 시기에 맞춰 디자인된 독창적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화면·장식·구조의 완전한 화합이 각기 단독으로는 이룰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조화가 스테인드 글라스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의 화려한 내부 천장.


14세기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의 발달


14세기초에 이르러 여러 가지 발달을 보게 되는데 초창기에 불가능했던 2차적인 색깔,
즉 흐린 황색, 이끼색, 자주색의 일반화가 가능해졌고 은염(銀鹽)으로 그린 노란색 색조유리도 발명되었다.


유리화가들은 유리 전면에 반색조의 투명 매트를 붙이거나 강조할 부분을 유리질 에나멜로 음영을 표시하고 모델링하는 등
많은 기술 발전을 이룩했으며, 특히 15세기에는 점차로 선의 사용도 숙달되고 세련되어갔다.


또 기술상 새로운 방법들도 추가되었는데, 맑은 투명 유리를 녹은 색유리에 잠깐 담그어 얇은 색유리 막을 입히는

입힌 유리(flashed glass)라든가 스테인의 두께와 열의 정도 또는 마연법에 따라 색상의 정도가 다르게 표현되기도 했다.

이로써 납띠에 의해서만 좌우되던 스테인드 글라스의 디자인이 차츰 납띠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천장.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후기의 발달


15세기말경 유리질 에나멜의 새로운 영역이 개발되고,
16세기 중엽에는 유리 위에 에나멜 안료로 그리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유럽전역의 정치적 혼란으로 색유리가 귀해졌고

전통적인 색유리 기법은 점차 새로운 방법으로 대치되어갔다.


16~20세기까지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술의 발전은 순전히 실용적인 것이었다.
16세기에 다이아몬드로 된 유리 커터가 발명되고

18세기에 에칭 입힌 유리기법을 위해 플루오르화수소산이 사용되었다.


19~20세기에는 가스·전기가마·납땜인두(soldering iron)도 쓰였으며,

색·질·두께가 다양한 커다란 유리판도 역시 20세기에 개발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1930년경 프랑스에서 납띠를 대신하여 콘크리트에 유리를 끼우는 방법을 포함한
여러 기술 혁신과 투명 합성수지 접착제에 유리를 접착시키는 것 같은 실험적 기술이 쓰이면서
현대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가는 다른 것이 따를 수 없는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게 되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내부 천장.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의 주제


중세의 교회예술은 교훈적인 내용을 근본으로 하므로, 유리창에 그려진 주제는
성서의 해설과 교회나 성인(聖人)들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창문이 커짐에 따라 스테인드 글라스는 미적으로나 교리의 전달에서도 더욱 중요해졌다.


교회 건축에 쓰였던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의 도상학적인 배치계획은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정해졌는데,
교회 건축의 십자형 평면은 그 자체가 4개의 중심지역으로 구분되고
각 지역의 건축형태나 태양의 방향에 따라 일정한 주제가 발달하게 되었다(→ 도상학).
예를 들어 샤르트르 성당에서는 성단의 5개 중앙 채광창과 북쪽 장미창은 성모 마리아에 봉헌되며
남쪽 장미창은 그리스도의 영광, 서쪽 장미창은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헌정되어 있다.


보통 성서에서 채택된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의 주제는

성인, 예언자, 그리스도, 성모의 생애, 최후의 심판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12사도,〈신약성서〉·〈구약성서〉·〈요한의 묵시록〉의 내용, 황도12궁,
또한 이삭에서 그리스도에 이르는 계보 등이 가장 인기 있는 주제들이었다.


때로는 도상학적 배치와는 관계없이 유리창의 작품 헌납자의 뜻이나

개인의 기호에 따른 주제도 묘사되었다.


가장 큰 성당인 샤르트르 성당에서 보면, 176개의 창에 2,500㎡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쓰였으며,
3개의 장미창은 각각 직경 12m로 거대하게 구성되었는데,
이는 1203~40년 사이의 40여 년에 걸쳐서 9명의 작가가 완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성직자들이 창의 드로잉을 유리 숙련공들에게 제공해 제작하기도 했는데
대영박물관의 12세기 문헌에는 성 구트락의 생애를 그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로 되어 있다.


중세 후기에는 글로 쓴 드로잉을 받아서 예비 스케치를 마련해 후견인의 승인을 받은 후,
실제 크기의 최종 도안을 완성했던 과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글로 된 교시의 예는 헨리 7세가

영국 그리니치의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에 봉헌한 드로잉에서 볼 수 있다.


14세기에는 양피지나 종이 위에 그려진 각각 다른 모양의 완성된 도안들을 보관하는 것이 유리공들의 관습이어서
이러한 도안그림들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 오랫동안 다시 사용되었는데
1450년에 죽은 요크 지방의 한 유리공은 유언으로 도안그림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중세 후기에는 숙련공의 유리공장은 고도로 조직된 사업체로서 각종 등급의 디자인을
후견인이나 주문자의 비용 여하에 따라 생산해내고 있었다.


봉헌자가 성직자이든 평민이든 간에 주제 선택과 표현방법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최종 디자인은 반드시 당대 예술 성향을 구현할 수 있는 예술작가인 마스터 유리공(숙련 유리공)만이 완성할 수 있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서양의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 글라스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있었으나 중요한 장식미술로서 진전된 것은
훨씬 후에 이르러서였으며 그 발전과정은 더디었다.


12세기 이전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존재는 문헌기록과 발굴자료에서 확인되었으나 자료가 너무 간략해서
그 기술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충분히 살펴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라틴 교회의 교부들, 즉 락탄티우스, 프르덴티우스, 성 히에로니무스의 기록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 색유리창에 대해 언급되어 있으며
5세기의 시인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는 프랑스 리옹의 색유리창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또한 교황 레오 3세(795~816 재위)는 로마의 산파올로 바실리카를 위한 색유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카롤링거 왕조 이전부터 부자들의 건축물에 색유리창이 크게 퍼지고 있었음을,
669년의 영국 요크 대성당이나 영국 선덜랜드의 멍크웨어머스 수도원에서 발견되는
7세기말부터의 색유리창 조각들에서 알 수 있다.


이들 초창기 중세 유리창들은 상당히 다양해서 처음에는 창틀 부분에 얇은 대리석, 설화석고(alabaster),
석고 또는 나무판 등으로 메워넣고 여기에 구멍을 뚫어 색유리를 끼우는 '모자이크'창의 형태도 있었다.


이 모자이크 창은 서유럽에서는 로마네스크 시기에도 쓰였으며 11세기초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처
토르첼로 대성당과 피렌체의 산미니아토 교회에서도 보인다.


이런 초기방법에서도 창틀에 유리파편들을 붙일 때 납띠가 쓰였을 것이며 이미 4세기경부터는
유리창 끼우기에 납으로 된 띠가 쓰였음이 발굴에서 확인된 바 있다.


최초의 납테로 된 유리 디자인은 9세기경

프랑스 랭 지방의 세리레메지에르 교회에 있는 작은 패널화(1918 파손됨)이다.


초기의 색유리창은 그림으로 장식되지 않고, 비교적 간단한 도안의 색유리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9세기까지는 그림이 도안된 색유리창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독일의 로르슈에서 발굴된 유리파편들인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두부 형상으로 복원되면서 이 형상은 카롤링거 왕조의 회화와 형식이 유사함을 보여주는
9, 10세기 또는 11세기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완전한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은
12세기초에 속하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성당에 장식된 5명의 예언자 상이다.


카롤링거 왕조와 초기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구조상 창의 숫자가 적고 크기도 작았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은 창보다는 넓은 벽과 둥근 아치형 천장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후기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에서는 창의 배치와 개방성을 강조해
이때부터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이 주된 예술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북유럽에서는 교회장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카롤링거 왕조 미술, 로마네스크 예술).


그림을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보통 서유럽에서 발명된 고유한 것으로 여겨져왔지만,
초창기 발전과정에는 아직 모호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12세기초부터는 비교적 합리적으로 발전되어갔는데 중세 후기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정교함과 세련됨은
주제의 자연주의적 해석에 있어서 프레스코나 이젤 화가들의 기량과도 겨루게 될 정도로
예술적으로 크게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다.


12세기의 다른 중요한 작품으로 파리 근교의 생드니 수도원에 남아 있는 것과
파리의 생샤펠에서 보이는 15개의 창에 1,134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을 들 수 있으며
13세기의 작품으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은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을 예로 들 수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13~16세기까지는 중요작품들이 만들어지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는

예술형태로서 퇴보하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효과를 추구했는데

이러한 사실주의적 경향은 스테인드 글라스 기술이 덜 적절할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고도의 광선-굴절 성질을 구사하던 작업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스테인드 글라스 예술이 쇠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에는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에 대한 흥미가 부흥되었는데
이는 고딕 미술의 부흥과 관계가 있으며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번 존스의 디자인이나 윌리엄 모리스 같은 미술공예운동의 지도자들과
미국의 루이스 컴퍼트 티퍼니 등에 의해 찬란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아르 누보 운동으로 스테인드 글라스는 장식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축작품에서 크게 활용했다.


20세기에는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페르낭 레제 같은 유명화가들의 디자인으로

찬란한 현대의 유리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사원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한국의 스테인드 글라스


서양의 장식예술인 스테인드 글라스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시작이 그러하듯 종교단체를 통해서였다. 


1898년 초창기 서양식 건축(고딕 건축)인 명동대성당이

파리 외방선교회의 의뢰로 프랑스의 베네딕투스 수도원 수사들에 의해 지어졌고
여기에 유리창 장식으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장식은 성서의 구절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예를 들어 잉태한 마리아에서 천상모후의 관을 씌워드리는 예수까지
그리스도의 일생을 묘사한 15편의 장면과 나뭇잎 모양 등을

기하학적 모티프로 응용하여 장식한 유리창 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명동대성당에서 시작된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은 대중화되지 못했고
1968년에 들어서면서 가톨릭교도이며 종교미술에 심취한 화가 이남규가 스테인드 글라스에 깊은 관심을 쏟게 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뜻있는 사제의 주선으로 그는 오스트리아 수도원과 파리 베네딕투스 수도원 공방에서
3년 여 동안 제작기법을 익히고 돌아왔다.


그가 돌아와 예술성을 접목한 정통 스테인드 글라스를 성당건축에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스테인드 글라스의 장을 열었고, 특히 각 성당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제작한 서울 중림동·혜화동·역촌동 성당, 인천 가좌동성당 등의 작품들은
그의 독특한 현대미술 성향과 전통기법을 조화시킨 예술품이다.


더욱이 1982~84년까지의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복원작업은 서양 수사가 제작한 것을
한국의 예술가가 새로운 시각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종교단체를 통해 확산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상업적인 일상용품으로 생산되기도 했는데,
제작과정이 번거롭고 비싸다는 단점 때문인지 크게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건축물에서 예술공간의 부분장식으로 조금씩 다시 사용되고 있어
스테인드 글라스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경향이다.


술탄 아흐메드 영묘 (Tomb of Sultan Ahmed)


술탄 아흐메드 1세(Sultan Ahmed I, 1590-1617)의 시신이 모셔진 영묘로서,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북쪽에 있는 독립된 건축물이다.

현재는 술탄아흐메드 공원과 마주보고 있다.


1616년에 완공되었는데, 정사각형의 토대 위에

다각형의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여러 개의 돔이 연결된 구조이다.
내부는 화려한 장식 타일과 섬세하게 세공된 목재로 꾸며져 있다.

 술탄 아흐메드 영묘 해설문


술탄 아흐메드 영묘는 16세기에 완공된 것으로 40명의 왕족이 묻혀 있다고 한다.
14대 술탄이었던 아흐메트는 13세에 술탄의 자리에 올라 26세에 술탄의 이름이 붙은 마지막 사원인

술탄 아흐메트 사원(블루 모스크)을 완성했다. 하지만 1년 뒤인 1617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블루 모스크 근처, 술탄 아흐메트 공원과 마주보는 곳에는 블루 모스크 사원의 주인인 술탄 아흐메트 1세와
황후였던 코셈(Kosem), 아들인 16대 술탄, 무라드 4세(Murad IV),

17대 술탄이었던 오스만 2세(Osman II) 등 그의 일가족의 묘가 있다.

술탄 아흐메드 영묘 내부


영묘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블루 모스크)을 만든 건축가 메흐메트 아아(Mehmet Ağa)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사망한 지 3년 후인 1619년에 완공하였다.


영묘 내부에 들어가면 화려한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특히 천장과 벽에 꾸며진 푸른색과 흰색의 아름다운 장식 타일이 눈길을 끈다


200221@차노휘


200221@차노휘


200221@차노휘



보스포러스해협 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2006. 3. 14 인증샷.


EBS 블루모스크



[터키 여행-이스탄불]블루 모스크, 술탄아흐메드 사원/Blue Mosque, Sultan



참조 ; https://blog.naver.com/mi2591/140134331473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0848b
http://cafe.daum.net/globalsangyoung/MbGL/2938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41000024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51660&cid=42866&categoryId=42866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36431&cid=40942&categoryId=31931
http://cafe.daum.net/krcos/nwSk/291?q=%EB%B8%94%EB%A3%A8%20%EB%AA%A8%EC%8A%A4%ED%81%AC&re=1
http://cafe.daum.net/hnjmg/MHSi/1341?q=%EB%B8%94%EB%A3%A8%20%EB%AA%A8%EC%8A%A4%ED%81%AC&re=1
https://namu.wiki/w/%EC%88%A0%ED%83%84%20%EC%95%84%ED%9D%90%EB%A9%94%EB%93%9C%20%EB%AA%A8%EC%8A%A4%ED%81%AC
http://cafe.daum.net/krcos/nwSk/291?q=%EB%B8%94%EB%A3%A8%20%EB%AA%A8%EC%8A%A4%ED%81%AC&re=1
https://namu.wiki/w/%EC%88%A0%ED%83%84%20%EC%95%84%ED%9D%90%EB%A9%94%EB%93%9C%20%EB%AA%A8%EC%8A%A4%ED%81%AC
https://ko.wikipedia.org/wiki/%EC%88%A0%ED%83%84_%EC%95%84%ED%9D%90%EB%A9%94%ED%8A%B8_%EB%AA%A8%EC%8A%A4%ED%81%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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