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전용 출입구 모자이크


황제 전용 출입구 모자이크


하기아 소피아를 출입하는 입구 중에서 오직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의

위쪽 박공벽(tympanum)을 장식하는 9세기 말~10세기 초의 작품으로,

옥좌에 앉은 '전능하신 지배자 그리스도(Ο Χριστός Παντοκράτωρ)'에게 엎드려 경배하는 사람은
레온 6세 현제(866~912, 재위:886~912) 또는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옌니토스 황제(905~959, 재위:913~959)로 추정된다.


그리스도가 든 책에 적힌 문구는 요한 복음서 20장 19절 "평화가 너희와 함께"와 8장 12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이다.
좌우의 원형 공간에는 각각 성모 마리아와 대천사 가브리엘을 나타냈다.


의장과 모자이크


원래의 하기아 소피아 내부는 유스티니아누스의 닥달로 인해 빠르게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장식이 간단한 편이었다.
기둥 하단 등도 조각 장식이 없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이른 기독교 시절이라 성인들의 인물묘사인 이콘의 법칙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는 점도 있다.
아무튼 성당 내부는 금빛 모자이크를 쓰되 간단한 도안들로만 장식되어졌다.


그러나 이후 수백년 동안 성당은 다채로운 마감재를 사용해

성모와 예수, 성인, 황제, 황후 및 각종 도안으로 구성된 모자이크로 장식하게 되었다.


하기아 소피아가 성당에서 모스크로 바뀌면서 비잔티움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던 모자이크 성화들은 회칠로 덮였지만
20세기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으로 몇몇 모자이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위에 나온대로 회칠하고 그려진 이슬람 문양 제거에 반발도 커서

이젠 회칠 제거 및 모자이크 복원은 80년 넘게 중단된 상태이다.


남서쪽 입구 복도에서 비잔틴제국의 자존심인 성 소피아 성당 모자이크를 본다.

예수에게 콘스탄티노플 성을 바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 소피아 성당을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하기아 소피아를 성모자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


남서쪽 입구 복도 모자이크


우측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좌측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하기아 소피아를 성모자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옥좌에 앉은 성모는 무릎에 앉힌 아기 예수를 감싸고 있는데,

아기 예수는 왼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성모자의 좌우에 있는 ΜΡ와 ΘΥ는 Μήτηρ(어머니)와 Θεού(하느님의)의 모노그램으로

'하느님의 어머니', 곧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2006. 3. 13  관람 기념 인증샷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


후진(apse) 모자이크


후진의 반 돔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쎄오토코스(Θεοτόκος, 하느님의 어머니) 모자이크라고도 한다.
6세기에 제작되었다가 8세기의 성상 파괴 때 훼손되었던 것을 9세기 경에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옥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서 받침대 위에 발을 올려놓았는데

대좌와 옥좌 모두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 황제 모자이크


2층 천장 어두운 구석에 위치한 이 모자이크는 알렉산드로스 3세 황제(866~913, 재위:912~913)가
왼손에 보주를, 오른손에는 두루마리를 든 모습을 표현했다.

조이 여제와 그 남편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모습 모자이크


조이 여제와 그 남편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모습 모자이크


조이 여제(978 경~1050, 재위:1028~1050)와 그 남편 콘스탄티노스 9세 모노마호스(1000경~1055, 재위:1042~1055)가

파란색 옷을 입고 왼손에 성경을 든 '전능하신 지배자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1세기에 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좌우에 있는 IC와 XC는 Ιησούς Χριστός(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이다.
콘스탄티노스 9세 모노마호스 황제가 들고 있는 돈자루는 교회에 대한 황실의 기부를 상징한다.


여담이지만 조이 여제는 결혼을 3번 했는데 남편이 바뀔 때마다

이 모자이크의 남편 얼굴과 문구도 바뀌었다고 한다.

콤니노스 황제와 황후와 황태자 모자이크


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 황제(1087~1143, 재위:1118~1143)와 이리니 황후(1088~1134),
그리고 황태자 알렉시오스 콤니노스(1106~1142, 측면에 그려져 있어서 정면에서는 안보인다)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짙은 청색 옷차림의 성모로부터 축복을 받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122년에 제작되었다.


조이 여제의 모자이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 황제의 손에 들린 돈자루 역시

교회에 대한 황실의 기부를 의미한다.

콤니노스 황제와 황후 황태자 모자이크


데이시스(Deësis) 모자이크


'데이시스'란 간청, 애원을 뜻하는 단어로, 심판자 그리스도가 죄인의 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거느린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261년에 제작되었다.


하기아 소피아 내부의 다른 모자이크보다 훼손 상태가 심각해 성모는 얼굴과 왼쪽 어깨 부분만 남아 있고
그리스도와 세례자 요한은 그보다는 양호한 편이라 상반신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다.

데이시스(Deësis) 모자이크


2006. 3.13 관람 인증샷


북쪽 박공벽(tympanon) 모자이크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역임한 성 요안니스 흐리소스토모스(왼쪽)와 성 이냐시오(오른쪽)가

십자가로 장식된 하얀색 성의를 입은 모습과, 이들을 포함한 여러 성인들을 형상화했다.


이 모자이크들에는 유독 회칠이 가해지지 않았는데,

그리스나 기독교권은 높은 곳에 못 올라서 회칠을 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터키에선 그럼 높이로는 무시 못할 블루 모스크라든지 그런 건 누가 지었냐며 반론하고 그냥 놔둔 거라고 주장한다.

결국 정확한 이유는 불명. 다만 트라브존의 아야 소피아도 그렇고,


오스만 시대에 모스크로 개조된 많은 옛 동로마 건축물에서 이런 현상이 발견된다.
아마도 자잘한 성화 한 두개 정도는 남겨두어 이 건물이 원래 성당이었음을 밝히는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트라브존의 아야 소피아 같은 경우, 같은 건물을 둘로 나눠 한쪽은 정교회 성당으로,

한쪽은 모스크로 사이좋게 나누어 썼었다.

옴팔리온(Omphalion)


내부 바닥에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옴팔리온이 있다.

옴팔리온은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이다.


원형 대리석들이 바닥에 끼워져 있는 형태이며,

비잔티움 제국의 역대 황제가 이 자리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하기아 소피아를 세운 이래 니케아 제국 시대를 제외하면

이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지 못한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는 콘스탄티노스 11세이다.

서예 원판. 술탄 압뒬메지트 1세 때 추가된 원판이다.


직경은 7.5m이고 8개의 원판이 있는데 각각 알라, 무함마드, 4명의 정통 칼리파와 무함마드의 손자 2명(하산과 후세인)이다.
현재 이 원판은 이슬람에서 가장 큰 서예 원판이다.



터키여행 이스탄불 성소피아성당, Turkey Istanbul , Ayasofya



출처 ; https://namu.wiki/w/%ED%95%98%EA%B8%B0%EC%95%84%20%EC%86%8C%ED%94%BC%EC%9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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