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07>
아침 6시 30분 경에 일어나서 Husa Princesa 호텔을 나와 근처에 있는 에스파냐광장(스페인광장)을 찾았다.
호텔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먼동이 틀 무렵이어서 좀 어둑어둑한 편이다.
에스파냐광장은 주위보다 다소 높은 곳에 있어서 마드리드 시내가 잘 보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좀 늦게 일어나는 편인가 보다.
광장에 나와 운동하는 사람이 두어 명 뿐이다.
광장은 마치 공원처럼 나무도 많고 주변이 탁 틔어 있어 시원스럽다.
무엇보다 거리에 쓰레기가 전혀 없을 만큼 깨끗했다.
스페인은 어디를 가더라도 골목까지 청소가 잘 되어 있어 무척 깨끗하다.
에스파냐광장(스페인광장)
마드리드의 최고 번화가인 그란비아가 시작하는 곳에 있다.
사람들이 풀밭에 눕거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에스파냐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탑이 있다.
탑 앞에는 에스파냐의 유명한 작가 세르반테스 동상과 소설 속 두 주인공인 로시난테를 타고 있는
날씬한 돈키호테와 당나귀를 탄 뚱뚱한 산초판자 동상이 있다.
호텔로 돌아와 1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9시 10분 세고비아를 향해 출발한다.
세고비아(Segovia )
스페인 중북부 카스티야 주의 도시.
마드리드에서 북쪽 바야돌리드 방향으로 50km 가량 가면 나오는, 고즈넉한 인구 6만의 작은 도시이다.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하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으며,
시내에 웅장히 서 있는 로마 시대의 수도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로마 유적이다.
수도교는 16세기에 보수 공사를 거쳐 20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외에 디즈니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백설공주에 영감이 되어준 알카사르 성도 인기가 높다.
세고비아로 들어서기 전에 버스가 잠깐 멈춘다.
안개가 잔뜩 머금은 날씨에 멀리 백설공주의 전설이 어린 알카사르(Alcazar) 성이 참으로 신비롭게 보인다.
백설공주
널리 알려진 백설공주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왕비가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실수로 바늘이 손가락을 찌르자 피 한방울이 흑단으로된 창틀에 쌓인 흰 눈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것을 본 왕비는 "이 까만 흑단같은 머리결에 흰 눈같은 피부에 이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딸을 가졌으면"하고 소망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비는 아이를 가졌고 소원한 것과 같이 흑단같이 까만 머리결에
흰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딸을 낳았고 아이 이름을 백설공주라 지었다.
그러나, 왕비는 백설공주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새로 맞이한 왕비는 아름다웠으나 허영심이 많았다. 특히, 욕심이 많은 마녀였다.
왕비는 마법 거울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 저러한 질문을 하면 그에 맞는 대답을 하였다.
이를테면 왕비가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라고 물으면,
거울은 "여왕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백설공주가 점점 아름답게 자라 일곱살이 되었을 때 왕비가 거울에게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그러자 거울은 "왕비님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그러나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다른 판본에서 거울은 그저 "백설공주입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질투심에 휩싸인 왕비는 사냥꾼에게 백설공주를 숲으로 데려가 죽이고
그 증거로 심장을 가져오라 명령한다.
숲으로 백설공주를 데려간 사냥꾼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숲 속으로 도망가라 이르고는 대신에 어린 멧돼지의 심장을 가져간다.
왕비는 심장을 요리하여 먹어버린다.
숲 속에서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의 오두막을 발견한다.
난쟁이들은 "우리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집을 돌봐 준다면 머물러도 좋다"고 백설공주를 받아들인다.
세월이 흐른후 또다시 거울에게 "누가 가장 예쁘냐"고 물은 왕비는
백설공주가 살아있고 여전히 자기보다 예쁘다는 답을 듣게 된다.
이후 왕비는 백설공주를 없애고자 세 번에 걸쳐 난쟁이의 오두막을 찾는다.
세 번째 찾아가 건넨 독사과를 먹고 백설공주는 쓰러진다.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있는 백설공주를 발견한 난쟁이들은 크게 슬퍼하며
유리로 된 관에 백설공주를 눕힌다.
시간이 흘러 숲을 지나던 왕자가 유리관에 놓인 백설공주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왕자는 난쟁이들에게 사정하여 유리관을 얻는다.
숲을 지나 유리관을 옮기는 동안 유리관이 덜컹거리자
목에 걸린 독사과가 빠져나오고 백설공주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왕자는 매우 기뻐하고 백설공주와 결혼한다.
한편 왕궁에 돌아온 왕비는 의기양양하게 거울에게 "누가 가장 예쁘냐"고 묻는다.
거울은 "왕비님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그러나 새로 왕비가 된 백설공주가 당신보다 천 배는 아름답습니다"하고 대답한다.
양녀가 여전히 살아있을 뿐 아니라 이웃 나라의 왕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왕비는
그 길로 백설공주의 결혼식장으로 달려간다.
결혼식에 나타난 왕비는 붙잡혀 처벌을 받게 된다.
왕비에게는 빨갛게 달구어진 쇠구두가 신겨졌고, 왕비는 죽을 때까지 춤추듯 뛰어다녔다.
백설공주는 반 신화화된 실존 인물의 설화와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독일의 신화가 결합된 것이라 한다.
이미지의 주인공은 역사상 실존하였던 마르가레테 폰 발데크(1533년–1554년)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마르가레테는 발데크의 탄광촌에 살았던 아름다운 처녀였다.
당시 탄광촌에서는 "난쟁이"처럼 작은 어린이들이 갱도에 들어가 일을 해야 했다.
백설공주와 같이 마르가레테 역시 계모에게 시달려야 했다.
마르가레테는 16세가 되던 해 브뤼셀에 가게 되었고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몇몇 귀족들과 교제가 있었다.
펠리페 2세는 마르가레타에게 한 눈에 반해 결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르가레테는 무슨 까닭에선지 독살되고 말았다.
중세에서 왕가의 결혼은 서로간의 영토문제를 해결하고 동맹을 유지하는
매우 민감한 정치적 문제였기 때문에 모종의 음모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마르가레타는 21세가 되던 1554년 사망하였고
그녀 스스로가 기록한 글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경련으로 고통받았음을 알 수 있다.
백설공주와는 달리 마르가레테가 독살되었을 당시 계모는 이미 사망하고 없었다.
아름다운 아가씨의 애달픈 죽음은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었고 이후 많은 이야기의 바탕이 되었다.
한편 독일의 전설에 의하면 구박받다가 집에서 쫓겨난 공주가
난장이들에 의해 구제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시골에 왕과 왕비가 존재하였다.
그들에게서 딸 백설공주가 태어났는데, 미모가 수려하였고
그의 아버지 왕은 그를 편애하였지만 어머니인 왕비는 딸을 오히려 미워하였다.
백설공주는 아버지 왕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용하여 매우 오만하게 행동했다.
왕비는 공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궁에서 쫓아낸다.
이때 어느 야산에서 난쟁이들에게 구제된 백설공주는 그들의 집에서 생활했다 한다.
한편 공주를 쫓아낸 왕비는 사냥꾼을 시켜서 공주를 암살하고
간을 빼서 가져오게 한 뒤 사냥꾼의 입을 막기 위해 사냥꾼을 살해한다.
사냥꾼은 공주를 죽이지 못하고 곰을 한마리 사냥한 뒤,
곰의 간을 빼서 왕비에게 증거로 갖다 바쳤던 것이다.
왕비는 딸인 백설공주를 목을 졸라 죽이려 했지만
일곱 난장이가 풀어주어 위기를 모면했다.
공주는 독이 든 사과 또는 약물을 먹고 죽었다고도 하고
독이 묻은 참빗으로 머리를 빗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후 한 귀공자가 숲을 지나가다가 일곱 난장이에 의해 장례식이 치뤄지던
백설공주의 시신을 보고 그녀를 치료해서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공주의 복수를 위해 친어머니인 왕비를 무도회에 초청한 후 납치,
불에 달군 쇠몽둥이 혹은 쇠구두로 고문하여 죽게 한다.
원래의 중세 독일에서 떠돌던 전설에 의하면
친어머니가 딸의 아름다움을 질투해서 쫓아냈다고 구전되었지만
그림 형제는 이를 아이들의 정서를 생각하여
친어머니가 아니라 계모인 것처럼 각색하여 발표하였다.
백설공주는 왕비의 독사과를 먹고 쓰러지고 다시 되살아난 후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독이 몸에 남아있어 결국은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의 한 숲속 깊은 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수도교
수도교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때 건설되었고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전체 길이 728m, 최고 높이 약 30m에 167개의 2층 아치로 이루어져 있고 잘 다듬은 화강암을 끼워 쌓아올렸다.
수도교는 말 그대로 물이 흐르는 다리로, 지형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물을 원하는 곳까지 끌어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아치 윗단 니치 부분에는 성인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1906년까지 무려 2천 년 동안 물을 공급해 오다가 지금은 수도관이 그 위를 지나고 있다고.
수도교의 건축 원리
세고비아 대성당
대성당은 1525∼1768년에 걸쳐 고딕양식으로 건설되었고 수십 개의 첨탑을 하늘로 뻗어 있다.
가로 50m, 세로 105m, 신랑 높이 33m의 웅장한 규모이다.
3개의 볼트식 신랑과 익랑, 돔, 중앙후진, 7개의 예배실 등이 있다.
부속 박물관에 회화, 보물과 함께 유아의 묘비가 있다.
이 묘비는 유모의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엔리케 2세 아들의 묘비이다.
왕자를 실수로 죽게 한 유모도 즉시 그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1985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고 내려져 누어 있는 예수의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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