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담(桃花潭)


도화담은 안휘성 경현(涇縣) 서남쪽 청대강변(靑弋江邊)의 적촌(翟村)에 있다.

도화담은 물이 깊고 맑아 바닥까지 보이는데, 서쪽의 석벽은 괴석들이 늘어서 있어 천만가지 자태를 뽐내고,

동쪽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갈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도화담은 도화담(복사꽃 그림자가 아롱지는 연못) 연못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황산시 북서쪽에서 180km, 경현 서남쪽에서 40km 떨어진 청고강변구촌에 있다.

담은 절벽아래 있는데 못은 물이 맑고 깨끗하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건조한 것이다.

이 마을에는 이백(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선으로 불리는 당나라 때의 시인)의 유명한 시 한 편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詩仙 이태백은 평생을 중국천하를 주유하면서 살았으며 가는 곳마다 시를 남겼다.

그래서 이태백을 흠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태백을 초청하여 머물게 하였고 떠나갈 때는 후한 노자를 보태어 주었다.


지금의 안휘성에 살던 왕륜도 이태백을 이런 말로 초청하였다.

당신은 유람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십리에 도화꽃이 있습니다.

당신은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만가구나 되는 술집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태백은 흔쾌히 왕륜이 사는 곳으로 찾아갔다.

자신의 초청에 응한 이태백에 대하여 왕륜은 이렇게 말하였다.

십리에 도화꽃이 있다는 것은 실제 도화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십리되는 곳에 도화담이라는 못이 있다는 뜻이며

만가구의 주점이 있다는 것은 만 개의 술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술집 주인이 만씨(萬氏)라서 만가주점(萬家酒店)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태백은 호탕한 웃음을 멈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왕륜은 이태백이 머물다 떠날 때에 말 여덟 필과 비단을 주고 아쉬운 석별의 정을 표하고자

수십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떠나는 뱃머리 언덕에서 발을 구르며 노래하게 하였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왕륜에게 이태백은 시 한 수를 지어주었다.

달과 술의 시인. 붓을 한번 휘둘러 장편 거작을 써내는 천재로 자유분방하고 정열적인 시인 이백.


도화담(桃花潭)에는 왕윤(汪倫)과 마을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춤을 추며 이백을 노래했다는 언덕,

답가고안(踏歌古岸)과 그 따뜻함에 보답한 시 ‘증왕윤(贈汪倫)’이 전해져 온다.


강 언덕에는 답가고안(踏歌古岸:발 구르며 노래 부르던 옛언덕)이라는 이백과 왕륜의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는 ‘시선(詩仙)’으로 불리며 죽음마저 전설처럼 전해지는데,

채석기(采石磯)는 이백이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야기의 배경이다.


이백의 묘(墓)가 있는 당도(當塗)에서는 생전에 이백이 좋아하던 술 노춘(老春)과 손수 시를 지어 바치며 이백의 시 세계에 심취해 본다.

왕윤과 이백에 얽힌 사연과 이백의 '증왕윤' 시를 살펴보자.


- 贈汪倫 (증왕윤 : 왕윤에게 바친다)  /  이백(李白)


李白乘舟將欲行(이백승주장욕행)    이백이 배에 올라 떠나려 할 때
忽聞岸上踏歌聲(홀문안상답가성)    문득 언덕위에 발구르며 노래하는 소리 들리네
桃花潭水深千尺(도화담수심천척)    도화담의 물이 깊어 천척이나 된다지만
不及汪倫送我情(불급왕윤송아정)    왕윤이 나를 떠나 보내는 아쉬운 마음에는 미치지 못하네


註(주) 
汪倫(왕윤) : 李白의 친구. 桃花潭에서 李白에게 술을 권한 일이 있다. 
忽(홀) ; 문득 
踏歌(답가) : 발로 땅을 밟으며 노래하는 것. 민간에서 부르는 노래 형식의 하나로서, 손을 서로 잡고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걸음걸이로 박자를 맞춘다. 胡三省의 注에 따르면, “답가라는 것은 손을 연이어서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땅을 딪는 것으로 박자를 맞춘다”라고 하였다.
桃花潭(도화담) : 연못의 이름.

 

[해설] 
詩의 첫머리에 작자 자신이 '李白'이라는 이름을 쓴 것은 시 전체를 객관적 으로 느끼게 하려는 의도이다.
떠나가는 李白의 배와 강 기슭에서 노래로 李白을 전송하는 汪倫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그림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이백이 떠나며 친구 汪倫 에게 준 시인데 시속에 드물게 자신과 친구 이름이 들어 있다.

왕륜은 양조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사람으로 성격이 호방하였다 한다.


그는 이백의 시를 좋아하고 흠모하였는데 당시 이백이 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알고 편지를 써 그를 초청하였다.
편지 속에 말하길 여기에는 十里桃花  萬家酒店 (복숭아 꽃이 피어 10리나 길게 뻗어 있고 술집은 만 개나 된다 라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이라했는데 술을 좋아하는 이백이 여기 와서 술도 즐기고 복숭아꽃 피는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하시라고 해석될 수 있겠다.


이백이 막상 와서 보니 소위 十里桃花란 둘레가 10리가 되는 도화담을 말하고 萬家酒店이란 성이 萬씨인 사람이 운영하는 주점이었다.

(家를 양사로 쓰면 만 개나 되는 주점이 되나 일반명사로 쓰면 성을 의미하니 萬氏주점의 뜻이 된다) 


성격이 대범하고 호방한 이백은 한번 크게 웃고 이를 크게 개의하지 않았다.

왕륜은 이백을 극진히 대우하고 두 사람은 자연히 좋은 친구가되었다.


이 시는 이백이 떠나면서 그에게 준 시이다.


1,2절 : 이백이 배를 타고 막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강둑에서 답가 소리가 들려 왔다.

보니 왕륜이 사람들과 함께 당시 유행하는 답가를 부르며 자기를 전송하러 오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갑자기 들린다 의 忽에는 의외로,  예상하지 못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마도 전날 왕륜의 집에서 융숭한 송별연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송별하러 오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당시 유행하는 답가를 부르며 함께 전송하러 오는 걸 보고 크게 감동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3,4절 : 도화담의 물이 비록 천자나 되게 깊다 하지만 왕륜이 나를 송별하는 그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즉 도화담의 깊은 물과 無形의 정(情)을 대비해서 정의 깊음과 감사의 뜻을 표현하였다.


 

도화담(桃花潭)  이백이 <증왕륜> 시에서 언급한 곳으로 맑은 물이 깊이 흐른다


의문(義門) 건륭황제의 글씨 

 

 

 

 

왕륜 묘(汪倫 墓)


 

 

 

 

이백과 왕륜  왕륜의 초청으로 이백은 도화담에서 한 때를 즐겁게 보낸다.


 

답가고안(踏歌古岸) 왕륜이 답가를 부르며 이백을 전송했다는 옛 나루터


나루터  지금도 배를 저어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맑은 도화담수 천 수백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맑고 그윽하게 흐른다



회선각(懷仙閣)

 

 

회선각(懷仙閣)에서 계단을 올라 윗층에 이르니 사진과 같은 글씨가 액자에 담겨 있다.

무슨 글자이고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송재소 교수님께 질문을 했지만 갸우뚱하신다.

현지 가이드의 말인즉슨 풍(風) 자에서 테두리를 벗기면 충(䖝)이 남고

월(月) 자에서 테두리를 벗기면 이(二)가 남으니 풍월(風月)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풍월[二]


이백이 한 때 호남 동정호 주변의 악양루를 거닐 때 근처 바위에 '一䖝二'라는 문자가 크게 써 있었다.

아무도 그 의미를 몰라 이백에게 묻자 이백은 이렇게 풀이했다.
'一'은 '수천일색(水天一色)', '䖝二'는 '풍월(風月)' 곧 '풍월무변(風月無邊)' 합하면 '수천일색 풍월무변'이다.

참으로 글자의 틀과 형식까지 깨어버리는 한시의 유연함과 이 백의 자유분방한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동정호의 빼어난 경치를 이 정도로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의 천재성을 증명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는 믿기 어렵다. '一䖝二'를 그렇게 해석해야 할 어떠한 논리적 연관이나 추론적 근거는 없다.

그냥 누군가가 파자(破字)유희를 하다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을 이야기꾼들이 그럴 듯 하게 의미를 달아 옮긴 것일게다.
이백의 초인적 능력을 인정하여(?)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해 준다면 미어(謎語)또는 비사(秘秘)니 하면서

이백의 천재성이나 도교의 신비성 등을 알리기 위해 누군가가 지어낸 것일 것이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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