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2장] 독재와 싸운 저항사상의 본질

2012/11/28 08:00 김삼웅

 

함석헌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비폭력 저항주의자이다.
이에 따라 반체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이 함석헌의 비폭력 저항주의를 두고 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짓’ 이라며 못마땅해 하였다. 역사적 허무주의나 패배주의가 아니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반항은 하지만 미워하지 말고 싸움은 하지만 주먹질을 말라”고 비폭력 저항을 주창하였다. 그렇지만 함석헌은 딱 한 차례 ‘폭력’을 사용한 적이 있다.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 함석헌도 구조악 또는 공권력에 의한 현장폭력에는 폭력으로 대항한 것이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우정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일은, 1975년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실천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던 때의 일이다. 농성을 하던 기자들을 깡패와 경찰을 투입해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많이 구타를 당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무자비한 폭력에 항의하고, 부패정권의 포악을 폭로하는 증인이 되고자 해서였다.

우리가 도착해서 항의나 시위를 할 사이도 없이 함 선생님과 나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인권위원장)와 공덕귀 선생님(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인권위원장)은 경찰차에 쑤셔넣듯이 떠밀려 태워졌다. 그런데 함 선생이 벼락같이 소리를 치시더니 우리를 떠미는 순경의 뺨을 후려치시는 것이었다. 순경도 우리도 갑작스런 함선생의 행동에 잠시 벙벙했다. 나는 경찰차 (4인승의 조그만 차였다) 속에서 공 선생님과 함께 함 선생님을 놀리면서 실컷 웃었다.

왜냐하면 항상 비폭력투쟁을 강조하시면서 젊은이들이 경찰에 대해 욕을 하거나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을 극구 말리시고 경계하시던 분이 느닷없이 경찰의 뺨을 후려치셨기 때문이다. (…) 나는 함 선생님을 그렇게 분노케 한 것은 당신이 경찰에 떠밀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공 선생님과 나를 그렇게도 거칠게 질질 끌고 가서 차 속에 쑤셔 넣는 것을 보시고 격노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한 자를 함부로 다루는 권력의 횡포에 참으실 수 없는 분노를 느끼셨던 것으로 짐작한다. 우리가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느냐고 물어도 쑥스러운 듯이 그냥 웃기만 하시던 모습은 꼭 부끄럼 타는 소년과 같았고, 그 인상은 지금도 내게 깊이 새겨져 있다.
  (주석 9)

함석헌은 어느 글에서 “이성과 감정이 대립할 때 감정의 편에 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을 액면대로 이성 보다는 감정을 택한다는 것으로 치부하면 서툰 분석이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주의자인 함석헌의 비폭력사상은 폭력으로 무장한 구조악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본제국주의,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한 것은 그것이 비인간적인 구조악의 폭력이기 때문이었다.

송기득은 “저항하는 사람이 영웅주의에 빠지면 참 저항자가 되지 못한다.” (주석 10)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배에 순응하여 이미 말려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만 함석헌이 경찰관의 뺨을 때린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함석헌의 저항사상이 감정적이거나 권력주의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실존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행동인이었던 그는 스스로 용기를 알았습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비겁이었습니다. 그는 비겁을 첫째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살생 비폭력을 절대 주장했지만, 그러면서도 상대는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각오로서 싸울 실력이 없거든 차라리 폭력을 써서라도 힘껏 대적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죽을지언정 결코 구차하게 살려고 도망하거나 빌붙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석 11)

함석헌의 비폭력저항은 간디의 불살생 비폭력사상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다음에 인용한 <간디의 참모습>에서도 밝혔듯이 간디와 함석헌은 “싸울 실력이 없거든 폭력을 써서라도” 대적할지언정 결코 ‘구차하게’ 살고자 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함석헌 저항사상의 본질이고, 철학이고, 실천윤리라 할 수 있다.

함석헌의 저항은 단순히 인간의 개체적 존재와 삶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사회와 역사의 현장에서 육화(肉化)시켰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역사적 저항’ 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존재적 저항’의 연장이다. 그는 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에게 있어 전체이다.(주석 12)

신학자 안병무에 따르면 “함석헌은 사상적으로 웰즈에게서 문화적 역사적 낙관주의, 톨스토이에게서 휴머니즘, 우찌무라에게서 성서, 타골, 칼라일, 라스키, 노자, 장자, 바가받 기타에서 최근의 데미아르 샤르뎅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편력을 계속했는가 하면 삶과 행동의 면에서는 인도의 간디에 심취해 왔다” (주석 13)라고 분석한다.


주석
9> 이우정, <민주화투쟁의 현장에서>, <나의 스승 함석헌>, 김용준 엮음, 해동문화사.
10> 송기득, <함석헌의 저항론>, <씨알 인간 역사 - 함석헌선생 8순기념문집>, 한길사.
11> <간디의 참모습>, <함석헌수상록, 바보새>, 동광출판사.
12> 송기득, 앞의 책.
13> 안병무, "순수와 저항의 길", <씨알 인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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