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2장] 독재와 싸운 저항사상의 본질

2012/11/27 09:00 김삼웅

 

“항거할 줄 알면 사람이요, 억눌러도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 아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항거는 참 항거가 아니요, 대중이 조직적으로 해서만 역사를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끄는 참 항거이다.”
(주석 1)

함석헌은 본디 태어나기를 온순한 천성을 갖고 세상에 나왔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끄러움,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겸손과 겸양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말대로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저항의 인물이 되고 그 저항을 통해서 항일, 반소, 반분단, 반독재투쟁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씨알의 올갱이가 되었다.

“내가 반항을 좋아한다면 또 그만치 못지않게 순종, 온건, 평화도 좋아한다. 반항은 나의 후천적으로, 의식적으로, 뜻으로, 사상으로 하는 것인지 몰라도 평화는 내 선천적으로, 바탕으로, 감정으로 된 대로 하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기를 온순으로 났다. 인간 세상에 나서부터 나는 우리 집안에서 싸우는 건 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다.”  (주석 2)

함석헌은 영국의 시인 셸리를 좋아했다.
특히 <서풍의 노래>를 좋아했다.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 라는 마지막 구절을 즐겨 인용하면서 셸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다만 그의 불타는 반항정신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반항아였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는 온갖 구속, 압박, 묵은 것에 대해 죽기로 반항하는 자유의 혼이었다.

서풍 노래의 셋째 절에서 그가 불어오는 서풍에, 지중해 고요한 물 위에 뜨는 옛 궁전의 꿈이 깨어지고, 대서양의 수평이 흔들려 깨지며, 바다 속의 해조들이 생기를 잃고 떨며 길을 여는 것을 본 그가 어떻게 그때 바야흐로 무르익으려는 문화에 있어서 벌써 그것을 벗어버리고 새 시대를 바라는 혼이 사무쳤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항, 항의, 생명의 바탕이 만일 자유에 있다면, 그 자유는 구속하고 뺏으려는 세력이 밖에서 오고 말라붙으려는 제도, 전통의 때가 안에서 꺼려 할 때, 거기에 대해 일어나 겨루는 정신이야말로 가장 귀한 도덕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영어를 나는 모르지만, 그 중에 resist란 말처럼 좋은 것은 없다. resit, revolt, protest... 다 좋은 말이다. 만일 resist란 말이 없다면 나는 영어를 아니 배울 것이다.”
(주석 3)

셸리의 저항정신은 함석헌의 저항정신으로 이어진다.
resist(저항), revolt(반항), protest(항의)는 모두 저항정신을 의미한다. 함석헌은 셸리의 <서풍의 노래>를 통해 포악한 독재에 시달리는 씨알들을 위로하면서 저항정신을 일깨웠다.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의 싯구는 분단과 냉전과 정치적 억압으로 신음하는 이 땅의 씨알에게 ‘새 봄’ 으로 상징되는 해방과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함석헌의 저항사상은 <저항의 철학> (주석 4)이란 글에서 보다 명료하게 제시된다. 그는 인격을 저항으로 인식한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고 서슴없이 갈파한다. 직접 그의 육성을 들어보자.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인격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엇인가? 자유하는 것 아닌가? 우선 나는 나다 하는 자아의식을 가지고, 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는 자주하는 의지로써, 내 뜻대로 내 마음껏,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이다. (주석 5)

함석헌은 저항을 존재론적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실천하였다. 저항에서 인격을 찾고, 인격의 원리로써 저항을 택한다. “인격은 생명진화의 가장 높은 맨 끝이지만, 거기까지 가기 전에 생명의 아주 낮은 원시적인 밑의 단계에 있어서도, 자유의 원리, 따라서 저항의 원리는 그 살림을 지배하고 있다” (주석 6)고 주장한다. 함석헌이 ‘저항’에 관해 얼마나 열정적인가를 살펴본다.

저항! 얼마나 좋은 말인가? 모든 말이 다 늙어 버려 노망을 하다가 죽게 된다 해도, 아마 이 저항이라는 말만은 새파랗게 살아나고 또 살아나 영원의 젊은이로 남을 것이다.

아마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하던 그 말씀은 바로 이 말 곧 ‘저항’이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고? 말씀은 근본이 반항이다. 가슴 속에 갇혀 있지 못해 터지고 나오는 기(氣), 음(陰)한 주머니 속에 자지 못해 쏘아 나오는 정(精), 맨숭맨숭한 골통 속에 곯고 있지 못해 날개치고 나오는 신, 그것이 곧 말씀이다. 깨끗하라는 동정녀의 탯집도 그냥 있을 수 없어 말구유 안으로라도 박차고 나오는 아들이 곧 말씀이다. (주석 7)

천지창조하려는 하나님 곧 물 위에 운동하셨다는 그 운동은 무슨 운동이었나? 반항운동이었다. 암탉이 알을 까려 품고 앉은 듯한, 무슨 큰일을 저지르려는 사람이 골똘히 생각을 하고 앉은 듯한, 그러한 모양을 표시하는 그 운동이란 말은, 곧 영겁의 침묵을 깨치려는 첫 말씀의 고민이요, 무한 깊음의 혼탁을 뚫고 나오려는 코스모스의 몸부림이요, 원시의 어둠을 한 칼에 쪼개려는 빛의 떨림이었다. (주석 8)


주석
1> 함석헌, <레지스땅스>, <사상계>, 1966년 3월호.
2> <겨울이 만일온다면>, <함석헌전집 4>, 한길사.
3> <겨울이 만일 온다면>, 앞의 책.
4> 함석헌,<저항의 철학>, <씨알은 외롭지 않다>, 휘문출판사.
5> 앞의 책.
6> 앞의 책.
7> 앞의 책.
8>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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