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그때 거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전화가 온다. 정치영화, 혹은 정치적 영화들이 민감한 시기에 연이어 개봉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인기를 끌 무렵에도 그랬고. 최근엔 <남영동 1985>에 대해서 묻는다. 영화 개봉은 관객과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시기를 고르는 것이 최적이다. <남영동 1985>는 저예산 영화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보다도 영화의 실존적 주인공 김근태님이 지난해 인생 산책을 마감하셨기에 이제야 가능했을 것이란 상상도 간다.

  드라마 구성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고문현장에 카메라가 들어가 일지처럼 22일 동안 날짜를 매기며 숨막히는 상황 자체를 재현해낸다. 공간적 배경도 일관되게 단순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밀실, 취조용 작은 책상과 의자들, 그리고 낡은 욕실 같은 공간이 전부이다. 등장인물도 단출하다. 밀실을 관리하는 소수 상주인물과 간혹 등장하는 상관 두 명, 그리고 ‘장의사’로 불리는 출장 나온 고문 기술자가 전부이다. 이곳에 잡혀 온 김종태(박원상)는 반국가사범임을 고백하는 가짜 진술서를 써내야만 풀려난다. 가짜 진술서를 요구하는 권력이 비밀리에 집행되는 공간과 시간이 스크린을 숨막히게 물들인다.

  고문과 공포 속에서 권력이 원하는 거짓말을 써냈기에 제대로 기억해낼 수조차 없는 어이없는 상황. 극도로 부조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 또한 반복되는 고문이다. 물, 전기, 고춧가루, 칠성판…그리고 죽음과 고문 흔적의 발각 예방을 위한 안티푸라민과 청진기도 동원된다. 글을 쓰느라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도구들, 이 도구들을 사용하는 이 분야 기술의 달인 인간 이근안(이경영)은 휘파람도 분다. 조금만 들어도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노랫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존 포드의 목가적인 서부극 <황야의 결투>에서 흘러나오던 애수 어린 그 노래 <클레멘타인>. 그런데 끔찍한 짓을 하는 인물의 휘파람으로 이 노래가 들려오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권력이 호출하는 애국이란 명분으로, 직무수행을 충실히 하며 누리고자 하는 평안함을 누리려 부는 휘파람일까? 간혹 끼어드는 아일랜드 민요에서 온 노래 <Johny I hardly knew ye, 조니 난 당신을 거의 알지 못해요>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틈새를 만들며 귀를 간질인다.

충격, 분노…그리고 감동!

  참혹함의 극치에서 나오는 노래, 기막힌 상처와 고통을 통과하는 치유로서 예술의 힘일까? 이 대목에서 우아한 화면 속에 예측불허의 전복으로 종교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그을린 사랑>이 떠오른다. 감옥에서 성고문을 받는 여자, 그녀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노래하는 여자’로 불린다.

  밀실에 근무하는 이들에게도 일상은 힘겹다. 때론 라디오 프로야구 중계를 들으며 어느 팀이 이길 것인지 대화한다. 과도한 근무에 치여 연애할 여유조차 없는 청년은 여자 친구 문제로 괴로워한다. 심지어 김종태에게 상담을 받을 정도로 우스운 상황도 벌어진다. 직장이기에 참혹한 짓에 말려들었지만, 그런 직장으로부터 탈주하지 못하는 시대의 우울을 앓는 이들이 늘 존재할 것만 같아 웃어넘기기 힘들다. 최근 들통 난 민간인 사찰에서 고문은 없었겠지만, 남영동의 그림자가 느껴지기에 그런 것일까? 그때 그 시절을 여전히 앓고 있는 이들의 숨결이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노라면 몸과 맘 모두 저려온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인류가 산업화로 파괴한 지구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제목처럼 영화란 아프고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게 만드는 매체이다. 그것은 진실의 힘을 포기하지 않는 삶과 예술의 관계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영화의 존재 이유를 정지영 감독이 남영동 밀실에서 보여준다.

※ 팁: 일생일대 악역을 맡은 이경영의 연기력이 불편한 볼거리를 넘어 만개한다. 온몸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박원상의 연기투혼도 감동적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2005 동국대 명강의상>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01.gif
0.01MB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