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의 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저의 책'남영동'을 재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솔직히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묵묵히 저를 응원해주는 팬클럽 <희망> 여러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고 소중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된 사람이 느닷없는 옛날 고문받던 시절 책인가도 싶어

약간은 다른 분들 보기에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업적인 대량출판이 아니고, 절판된 책을 몇 몇 분들만 소장하기 위해서 만든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지고 재발간의 소감도 더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문득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평적 정권교체, 정권 재창출, 의회 권력교체로 이어진 민주적 성취들은 너무나 장엄한 역사적 성과이고,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보여준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서해교전에도 흔들림 없었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겪으며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민족공동체의식은

바야흐로 열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전주곡처럼 달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몇 권의 책들 중에 왜 하필 '남영동'일까?

국회의원이 되고 이젠 장관이 된 나에게 왜 하필 이 책을 다시 만들어 주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고르신 여러분의 마음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까불지 마'인 것 같습니다.

고문받던 남영동 시절의 청년 김근태의 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잊지 말고 늘 되새기라는 뜻이 아닌지요.

이 책을 보면서 당신을 지켜볼 테니 '알아서 잘하라'는 일종의 협박이지만, 애정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것 이미 눈치 채고 있습니다.

남영동의 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수치스러움과 분노와 무기력과 공포속에서도 저를 지탱해주었던 것은 역시 희망이었습니다.

그간 희망들이 상당한 정도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못 이룬 것들이 많습니다.

인권, 복지, 민주주의, 통일, 통합, 평화......, 그리고 새로운 발전과 성장.

여러분의 마음을 간직하겠습니다.

희망을 바라고, 그 희망을 저와 함께 나누고 있는 친구 여러분, 우리가 희망을 인연으로 만났고,

희망과 희망으로서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더욱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희망이 여러분 자신을 지켜줄 것이고, 우리 함께하는 희망의 우리 자신, 우리의 조국.

우리의 한반도 그리고 이곳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인류 문명의 씨앗을 움트게 할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이곳에서는 설움과 아픔이 너무 지독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타자쳐서 이 책을 다시 만드신 팬클럽 친구 여러분!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겁니다.

2004년 9월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의원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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