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9년 08월 21일

[가신이의발자취] 가정 아끼듯 학생 사랑하신 ‘나의 선생님’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
» ‘고무줄팬티 통신’
선생님은 제가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만나 뵌 분이십니다. 첫 만남부터 환한 얼굴에 다정다감함이 온 몸에서 배어 넘쳐흐르는 인상입니다.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때로는 시대의 예언자로 단호하십니다. 수업 중에는 결석한 이들의 사정을 일일이 확인하고 안부를 위해서 함께 기도합니다. 빈틈없이 엄격하고 철두철미하게 가르치십니다. 영어시간도 아닌 ‘구약개론’ 시간에 느닷없이 시사잡지 <타임>을 구입해서 서너 장씩 번역해 오라고 하십니다. 한 달이 멀다하고 과제로 200자 원고지에 리포트를 작성해 오라 하십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원고지 쓰는 법에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검토하고 빨간색 펜으로 수정, 지적해서 학점을 달아 되돌려 주십니다. 두 달 남짓 지나서는 신입생들을 모두 선생님 댁으로 초청하여 성창운(윤순) 사모님과 가족을 일일이 소개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장래의 가정 분위기를 현장에서 체험하며 배우도록 하십니다. 휴교령 등으로 등교를 할 수 없을 때에도 당신 수업만큼은 댁으로 학생들을 모아서 꼭 마무리를 하십니다. 그러니만큼 입학해서 한 학기만 지나면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고 성내운 교수님의 사촌 여동생이기도 하신 사모님을 비롯해서 딸 성혜, 아들 창규, 홍규, 은규 등 온 가족과 학생들이 함께 허물없어집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제 수업반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매 학기마다 매 년마다 선생님은 가정을 아끼고 사랑하듯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함께 어울리게 하십니다. 선생님께 한 학기만이라도 수업을 받아 본 학생들이라면 아마도 이 분위기, 이 광경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선생님의 이런 모습은 비단 수업을 받은 제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섬기시는 교회에서, 이웃에서, 사회에서, 선생님이 가고 머무시는 모든 곳에서 뵐 수 있는 모습입니다.

1974년 연세대 신과대학장 재직 때 서슬퍼런 긴급조치법 1호와 4호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가족의 면회조차 금지됐던 군사독재시절, 유일하게 내보내고 들어올 수 있는 빨랫감 팬티 속 고무줄에 소식을 적어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10여 개월 동안 비밀리에 주고받은 ‘고무줄팬티 통신’(사진)은 애절한 사연과 함께 소중한 유물로 남을 것입니다. 7년 6개월 해직되어 계신 동안에도 어려운 출판사를 돕고 좋은 책을 보급하고 더불어 돈을 모아 양심수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넣어 주시기 위해서 그 연세에 커다란 가죽 가방 가득히 책을 넣어 메고는 모임이 있을 적마다 부지런하게 팔러 다니시던 모습하며, 제게 주례를 서 주시고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제 아내를 찾아 어려운 살림에도 87년 당시 적지 않은 거금 30만원을 손에 꼬옥 쥐어 주시면서 다른 데 쓰지 말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시던 선생님,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늘 사랑이 넘치시던 선생님, 참으로 인자하고 아름답고 거룩하신 선생님, 인간이 하나님일 수 있다면 세상에서 딱 꼽을 수 있는 주 하나님이신 선생님. 이 글을 쓰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까닭은 선생님께 어린 추억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던 때문일 겁니다. 아니 이 땅에서 다시는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뵐 수가 없어서 입니다.

김찬국 선생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고 세상에 남아 있는 저희를 생전에서처럼 부디 잊지 말고 살펴주옵소서.

 

불초 제자 최민화 올림 / 전 환경관리공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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