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 고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화살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A_11_화살 (고은).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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