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서시 (國土序詩) /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A_05_국토 서시 (조태일).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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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오빠는 왜 총에 맞았나요 / 강 명 희 (서울 수송초등학교 5학년)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이 시는 6학년 2학기 사회과탐구에 실린 시입니다.
4.19혁명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을 서울 수송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쓴 시입니다.



A_03_언니 오빠는 왜 총맞았나요 (강명희).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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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이시영


두고 온 것들이 빛나는 때가 있다
빛나는 때를 위해 소금을 뿌리며
우리는 이 저녁을 떠돌고 있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등불 하나 켜든 이 보이지 않고
등불 뒤에 속삭이며 밤을 지키는
발자국소리 들리지 않는다


잊혀진 목소리가 살아나는 때가 있다
잊혀진 한 목소리 잊혀진 다른 목소리의 끝을 찾아
목 메이게 부르짖다 잦아드는 때가 있다


잦아드는 외마디 소리를 찾아 칼날 세우고
우리는 이 새벽길 숨가쁘게 넘고 있는가


하늘 올려보아도
함께 어둠 지새던 별 하나 눈뜨지 않는다


그래도 두고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한 번은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뿌린 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오던 길 환히 비춰주고 있으니





A_12_그리움 (이시영).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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