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m of French painting of the early 20century.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420번 홀은 인상파와 포스트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초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Artemis, 1911. by Marie Laurencin. oil on canvas glued to cardboard, 35.5 x 27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9)는 1912년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과 헤어지고,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를 쓴다.
1907년, ‘세탁선’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아폴리네르는 가난한 문인이었고, 로랑생은 무명 화가였다. 
둘 다 사생아로 태어났다. 

둘은 연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했다. 
1911년 경, 개성 강한 성격이었던 두 사람이 결국 헤어진 뒤, 
기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과의 사랑을 추억하며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를 썼다. 
마리 로랑생은 그렇게 우리에게 화가보다는 시인의 뮤즈로 더 알려졌다. 

한참 사랑에 불타고 있던 아폴리네르가 주문해서 두 연인을 그린 루소의 그림은 
로랑생을 시인의 뮤즈로 묘사하고 있다. 
여성 예술가는 종종 그 자신의 예술적 재능보다 누군가의 뮤즈로 더 알려지곤 한다. 
로댕의 연인이었고 재능 있는 조각가였던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의 그늘에서 괴로워했으며, 
프리다 칼로는 생전에 화가보다는 유명한 벽화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만 알려졌다. 
여성 예술가들은 예술가 자체가 아니라 뛰어난 다른 예술가의 연인이나 뮤즈로 더 알려진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신비로운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여성 예술가의 독창적인 예술세계와 예술에 영향을 준 삶에 대해 보기 보다는, 
여성적인 스타일을 이야기하고 대상화된 여성 ‘뮤즈’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Bacchante, 1911. by Marie Laurencin. oil on canvas glued to cardboard, 32.7 x 41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기욤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뒤 마리 로랑생은 불행하게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독일인 귀족과 결혼을 한다. 
영국-프랑스-러시아와 독일-오스트리아의 충돌로 시작된 이 전쟁 와중에 
로랑생은 적국의 군인과 결혼을 했던 터라 국외를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1920년 경에 남편과 이혼하고 프랑스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마리 로랑생은 다른 여성 예술가와는 달리 생전에 유명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입체파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던 
마리 로랑생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는 드물었다. 
문인 장 콕토는 마리 로랑생을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 낀 불쌍한 사슴으로 비유했고, 
로댕은 야수파의 소녀라고 놀리기도 했다.

1930년대에 그녀는 사립학교에서 미술 강사로 일했다. 
그후 그녀는 죽을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Woman leaning on the table, 1901. by Eugene Carrier. oil on canvas, 65 x 54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외젠 카리에르 (Eugène Carrière 1849~1906)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이다. 
그는 오귀스트 로댕과 매우 친밀한 사이였고, 그의 작품은 피카소에게 영향을 줬다. 
카리에르의 흑백 양식은 피카소의 청색 시대에 잘 나타나 있다.

 

Woman with baby on her lap, 1890. by Eugene Carrier. oil on canvas, 61.3 x 50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외젠 카리에르는 소년 시절 석판화가의 문하생이 되지만, 후에 회화를 그린다. 
처음은 신중한 생활을 했는데, 마음에 떠오르는 영상(影像)을 화면에 그려보는 것을 궁리했다. 
그 때문에 색채를 다 쓰지 않고 단색으로 그려서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깊게 하여, 
인물을 음영(陰影)에 매몰되듯 녹여서 그리고 있다. 

 

Mother and child, 1880. by Eugene Carrier. oil on canvas, 38 x 50.2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외젠 카리에르의 작품은 박력과는 먼 표현이지만, 
인상(人像)에는 꿈속을 보는 듯한 호소력이 있으며, 
모성애를 그린 작품은, 부드럽고 단아함을 머금고 있다.

 

Naiad, 1896. by Henri Fantin-Latour, oil on canvas. 41.5 x 5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앙리 팡탱 라투르(Henri Fantin-Latour 1836~1904)는 프랑스 화가이다. 
아버지로부터 그림의 기초를 배웠다. 
처음에는 쿠르베에게 마음이 끌렸으나, 마네의 작품을 알고 게르보아의 집회에도 출석을 했다. 
인상파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작품은 명암을 깊게 하여 정확히 신중한 묘사를 하고 있다. 
작품에는 〈바티뇰의 화실〉(1870년), 〈들라크루아 예찬〉(1864년) 등이 있다.

나이아데스(Naiad)는 그리스 신화에서 일종의 물의 요정으로 
연못, 호수, 우물, 개천 등 담수에 살고 있다고 여겨졌다.
다른 물, 바다의 요정과 비교해 보면 오케아니스는 큰 바다, 대양, 바다의 요정, 
네레이스는 바다, 그중에서도 지중해, 에게 해의 요정인데 비해 
나이아데스는 흐르는 물 중에서 작은 개천, 우물들의 정령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에서 세상의 모든 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나이아데스는 자신이 속한 연못이나 물의 원천과 연결되어 

만약 그 물이 모두 마르면 그 요정도 죽게 되었다. 
대부분의 나이아데스는 동물과 인간에게 우호적이었으나 아르고 호의 

선원 중 하나인 힐라스의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때로는 인간에게 위험하기도 했다.

 

Hamlet, 1898. by Fernand Maglen. oil on canvas, 41 x 6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Town with a cathedral, 1899. by Fernand Maglen. oil on canvas, 137.5 x 5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Miners. by Jules Gustave Besson. oil on canvas, 80 x 6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줄스 베송 (Jules Besson 1868~?)은 프랑스 화가였다. 
50대에 그는 인도 차이나로 이사했다. 
사이공에 있는 그의 제자들의 작품은 베트남 남부와 
캄보디아의 삶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Market in Brest 브레스트 시장, 1899. by Fernand Pie. oil on canvas, 64.7 x 80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Landscape in Saint-Denis, 1906~1910. by Charles René Picart Le Doux. oil on canvas, 46 x 54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샤를 피카르 르두 (Charles Picart Le Doux 1881~1959)는

프랑스 시인, 작가 및 화가였다.

 

Lodge (Spectators), 1906. by Tony Minartz, oil on canvas. 55.3 x 46.3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토니 미나츠(Tony Minartz 1870~1944)는 프랑스의 화가, 

디자이너, 일러스트 레이터였다.

 

Music hall, between 1895 and 1896. by Jean Louis Forein. oil on canvas, 50.5 x 61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장 루이 포랭 (Jean-Louis Forain 1852~1931)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이자 판화가로 
오일, 수채화 , 파스텔 , 에칭 및 석판화를 포함한 미디어에서 일했다. 
그의 많은 인상파 동료들과 비교할 때, 그는 평생동안 더 성공적이었지만 
그의 명성은 후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Plowing, 1902. by René Auguste Seyssaud. oil on cardboard, 45 x 60.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르네 오귀스트 세이소(René Auguste Seyssaud 1867~1952)는 

프랑스의 인상파이자 현대 화가이다.

 

Road, 1901. by René Auguste Seyssaud. pasted on canvas paper, 30.7 x 48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In the restaurant, 1907. by Charles Hoffbauer. oil on canvas, 115 x 167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찰스 호프바우어(Charles Constantin Joseph Hoffbauer 1875~1957)는 
미국 시민이 된 프랑스 태생의 화가였다. 
그는 역사적인 흥미로운 장면을 묘사한 많은 주제를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를 그렸다.

 

Hall of the Dauphin in the Palace of Versailles, 1901. by Maurice Lobre. oil on canvas, 

80 x 93.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모리스 로브레 (Maurice Lobre 1862~1951)는 프랑스 예술가였다. 
그는 보르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사망했다.

모리스 로브레는 19세기 후반에 그의 작품이 살롱 드 샹 드 마르

(Salon du Champs-de-Mars)에 전시되면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1888년 그는 살롱에서 명예 멘션과 여행 보조금을 받았다. 
그해 여름 그는 노르망디로 가서 자크-에밀 블랑쉬와 함께 지냈다. 
드가(Degas) 와 휘슬러(Whistler)는 그와 가장 절친한 손님 중 하나였다. 

 

Lobby of the Palace of Versailles, 1903. by Maurice Lobre. oil on canvas, 92 x 92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20세기 초에 모리스 로브레는 앙티미즘(Intimist) 스타일로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모티프는 편안한 부르주아 환경이 지배했다. 
1905년 4월, 그의 작품은 앙리 거벡스(Henri Gervex) 갤러리의 공동 전시에서 
다른 스타일의 실무자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회는 앙리 마티스, 헤르만 폴, 르네 프리네 , 어니스트 로랑 등과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앙티미즘(Intimist)"라는 용어를 만든 
에드워드 빌라드(Édouard Vuillard)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Shrine relocation, 1899. by Gaston de La Touche. oil on canvas, 145 x 156.5 cm. 
The State Hermitage Museum. General Staff Building, Hall Number 420

 

가스통 라 터치(Gaston de La Touche 1854~1913)는 

프랑스 화가, 삽화가, 조각가 및 조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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