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 with Brushes, 브러시를 든 자화상. 1909. oil on canvas. 48 x 57 cm.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Germany

마르크 샤갈 (Marc Zakharovich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1887년 7월 7일 그는 러시아 제국 리오즈나 (현재 벨라루스)에서 
유대인계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태어나던 당시 비테브스크의 인구는 약 66,000명 정도였고, 
그 중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그림같은 교회당과 유대교회가 있었고, 옛 스페인 제국의 문화의 중심지로 
그곳은 러시아의 톨레도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건물이었으므로, 그것들 중 어떤 건물도 
3년 후 나치의 침공 때 보존되지 못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

샤갈은 9형제 중 맏이었으며, 그의 성 샤갈은 보통 

유대 가정에서 태어나면 다양한 유사 이름을 가진다. 
그의 아버지 카츠키 샤갈은 청어상인 밑에서 일을 했고,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한 달 수입은 20루블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샤갈은 "존경받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를 생선 모티브를 포함하여 표현한다.

1906년에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갔으며, 그곳에는 많은 유명한 예술학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통행증이 없으면,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가까스로 친구에게서 임시통행증을 얻었다. 
그는 그곳의 명문 예술학교에 등록을 해서 2년을 공부했다. 
1907년 경에는 자연주의적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1908년에서 1910년까지 샤갈은 짜반체바 미술학교에서 레온 박스트에게 공부를 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실험극장과 폴 고갱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 
박스트도 유대인이었으며, 또한 장식예술 디자이너였고, 
유명한 발레 무대 배경과 의상 디자이너였다. 
샤갈은 박스트를 성공한 유대인의 롤모델로 삼았다. 
1년 후 박스트는 파리로 이사를 갔다. 
예술 역사가 레이먼트 코그니에는 
"샤갈은 당시 주류 예술로 접어들었으며 .... 그의 도제 생활은 끝났고, 
러시아는 그의 삶에서 중요한 초기의 경험을 던져주었다"고 썼다.

샤갈도 1910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는데, 
종종 비테브스크를 갔다가 벨라 로젠펠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나의 삶"이라는 글에서 샤갈은 그녀와의 첫만남을 다음과 같이 썼다. 
"그녀의 침묵은 내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샤갈은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스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파리에 유학을 떠났다.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Yuri Pen이 그린 샤갈의 초상화. 1915. 

프랑스(1910-1914)
1910년에 샤갈은 파리로 자신만의 예술적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갔다. 
예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제임스 스위니는 샤갈이 처음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입체파(Cubism)가 지배적인 예술 형태였으며, 프랑스의 예술은 여전히 
19세기의 물질주의적 외관에 지배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에서 잘익은 색채 재능과 신선하고, 감성에 대담한 반응과 
단순한 시에 대한 느낌과 유머를 갖춘 채 파리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개념은 당시 파리에는 낯선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처음의 인식은 
다른 예술가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볼레즈 상드라르나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시인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예술사학자 장 레이마리는 샤갈이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내적 존재에서 외부로 나온 것이며, 
보이는 사물에서 육체적 결과물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것은 입체파의 창조법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욤 아폴리네르와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와 같은 
다른 아방가르드 유명 인사들과 친교를 가졌다. 
빛의 도시이자 무엇보다 자유의 도시에서 샤갈의 파리의 꿈이 이루어졌다. 
23세의 젊은 샤갈에게 닥쳐온 최초의 역경은 대도시 속에 외로움과 
프랑스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간은 그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 고민도 했으며, 그림을 그리면서도 

러시아 민속의 풍부함과 유대인으로서의 경험, 가족 그리고 특히 벨라를 꿈꾸기도 했다.

파리에서 우수한 화가들이 가르치는 라 팔레트(La Palette)에 등록을 했으며, 
또한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작품들을 찾기도 했다. 
그는 여유 시간이 있었고, 갤러리나 살롱, 그리고 특히 루브르에서 공부를 했으며, 
그곳에서는 렘브란트, 르넹 형제, 샤르댕, 반 고흐, 르노와르, 피사로, 마티스, 폴 고갱, 
쿠르베, 밀레, 마네, 모네, 들라크루와 그리고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했다. 
그가 종종 러시아 장면을 그리는데 사용한 구와슈 기법을 배운 곳도 파리였다. 
그는 또한 몽마르뜨와 카르티에 라탱(Latin Quarter)을 종종 방문을 했고, 
파리지엥으로 숨쉬는 것을 행복해 했다.

 

Self portrait with palette. 1917.

러시아 (1914–1922)
그는 비테프스크에 남아있는 약혼녀 벨라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그녀를 항상 생각하고는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베를린에 있는 유명한 예술 딜러의 작품 전시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1913년 9월 베를린에서 개인전시회를 열어 <내 약혼녀에게>, <골고다>, 
<러시아, 암소 그리고 다른 것들에게>를 전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고, 
1914년 6월 허바스 발덴 스트름 갤러리(Herwarth Walden's Sturm gallery)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이곳에서 성공으로 인해, 베를린으로 와서 화가로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 전시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독일 평론가들은 그를 호평했다.

전시회가 끝난 후 1914년 러시아로 가서 벨라와 결혼을 위해, 비테브스크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몇 주 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러시아의 국경이 봉쇄되어 버린다. 
1915년 벨라와 결혼을 하고, 그해 첫 딸 이다를 가진다. 
결혼 전 샤갈은 부유한 유대인 브르주아인 그녀의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 
그녀의 부모는 가난뱅이 출신의 화가가 그들의 딸을 부양할 수 있을지를 염려하였다. 
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정신은 대단히 고양되었다. 
이 당시의 그림에는 몽환적인 젊은 연인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1917년 10월 혁명은 샤갈에게 기회를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위험한 시기였다. 
당시 그는 가장 저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고, 
모더니스트 아방가르드의 멤버 중 한사람이었다. 
이것은 혁명의 미적 무장으로서의 위엄과 특권을 즐기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후 러시아에 잠깐 살다가 1922년 고향을 포기하고 
베를린을 통해 1923년 그녀와 함께 파리로 돌아온다.

이어 그는 야수파의 색채를 자기 나름대로 이용하여 아름답고 아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고국으로 돌아와 8년간 우울하게 보내다가, 
1922년 베를린을 거쳐 파리로 돌아와서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Self Portrait with Muse (Dream). 1917~1918.
oil on canvas. 140 x 157 cm. Private Collection

1939년에 샤갈은 카네기 상을 수상했는데, 그 후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의 탄압을 피하여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국제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1944년 9월 2일 그의 아내 벨라가 갑작스런 감염으로 인해,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치료 물품의 부족으로 죽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런 몇 달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가 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는 아내를 회고하는 작품을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된다. 

1947년 프랑스의 지중해안에 머물며 사랑과 기쁨에 넘치는 명작을 계속 그렸다. 
1950년부터 프랑스 남부에 영주할 것을 결심하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1952년 당시 60세의 샤갈은 유대인 여성 발렌티나 바바 브로드스키와 결혼을 하게 된다. 
둘을 그리스로 여행을 하고, 전 아내 벨라가 죽은 지 8년만에 다시 활력을 찾는다.

1960년, 에라스무스 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당시 프랑스 정부 내에서 샤갈도 친분이 있었던 앙드레 말로는 
가르니에 궁의 천장화를 샤갈에게 요청한다. 이것은 1964년에 완성되었다.

1966년, 샤갈은 17점 연작 <성경의 메시지>를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말로의 연작을 포함하여 샤갈의 작품을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니스 시가 토지를 제공하는 형태로 1973년, 화가의 86살 생일에 니스 시는 
〈샤갈미술관〉을 개관하였으며, 1985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은 이후 주변 셍 폴(Saint Paul)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그는 판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성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걸작 동판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러시아계 유대인의 혈통에 흐르는, 대지의 소박한 시정을 담은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농부 · 산양 · 닭과 같은 제재를 많이 취급하고 있다.

 

1921년 샤갈의 사진

현대성의 발견
샤갈은 화가로 출발할 때부터 현대미술과 단순하지 않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1915년에서 1920년까지 러시아에서 펼쳐지던 
유대-러시아 민속문화의 부흥운동에 참가하고자 했다. 
모스크바의 유대예술극장을 위한 장식화들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의 보편적인 미술계에 합류하기를 열망하기도 했다. 
유대 화가나 러시아 화가라는 딱지 없이 그저 화가로 완전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파리생활은 이런 포부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초기 걸작에 속하는 장식 작업을 통해 유대-러시아 대중예술을 소재로 
위대한 예술을 창작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한편, 추상작업이 불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했다. 
전자를 위해서는 대중적인 민속예술가들을 소재로 춤이나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원래 서양의 고전예술이 전통적으로 중심인물로 내세우던 
귀족들의 자리에 서민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은 전혀 추상화된 인물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그의 후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샤갈의 인물들은 거리의 악사나 시골의 마을 잔치에서 
춤을 추는 여인 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 그대로이다.

이전에 제작된 작품들도 러시아의 민속전통과 현대성의 혼합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비테프스크의 하늘 위를 날아간다. 
비테프스크는 배경의 대성당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연인의 모습은 입체파 양식으로 다루어진 반면, 

도시의 모습은 소박한 통속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샤갈의 관심은 말레비치를 포함해서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러시아 화가들, 
추상회화를 도입하는 데 열중하던 이들과 아주 달랐다. 
추상 화가들은 다른 무엇보다 형식에, 그리고 형태와 색채간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 
반면 샤갈의 관심은 오로지 감성적인 것에 쏠려 있었다. 
말레비치가 러시아에 추상을 퍼트리고 있을 때 

샤갈은 신혼의 행복과 사랑의 기쁨을 다루는데 몰두했다.

프랑스에서 체류 중이던 1925년부터도 

샤갈은 마찬가지의 이중성을 지닌 그림들을 제작하였다. 
그 중 어떤 작품들은 완전히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1933년의 걸작 <비테프스크 위를 나는 누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그림은 겉보기처럼 초현실주의적인 꿈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적인 고백의 측면이 강하다.

​이 작품 속의 누드만 떼어놓고 보면, 마치 20년대 초 프랑스의 
고전적인 아카데미즘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피부가 윤기있게 다루어진 기법이나 도톰한 인체의 곡선을 살린 솜씨는 
이 그림을 완벽할 정도로 아카데미적인 규칙을 따른 작품으로 만들면서 
등 돌린 누드의 오랜 전통 속에 자리 잡게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전통적인 누드의 대열에서 벗어나는 까닭은, 
엉뚱하게도 누드가 도시풍경 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면 만 레이가 1934년에 제작한 

<관측의 시간에, 연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사실상 그 같은 자의성은 겉으로 볼 때만 그럴 뿐이다. 
<비테프스크 위를 나는 누드>의 '초현실주의적'인 측면은 우발적인 것이며, 
결국 샤갈은 그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테프스크와 그의 아내 벨라가 동등하게 그림의 절반씩을 차지하면서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 


유년기를 상징하며 과거에 속하는 비테프스크는

정교회 대성당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편 현재에 속하며 추억의 세계에서 솟아오른 듯한 벨라는 위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외따로 떨어진 꽃다발, 그 선명한 색으로 인해 회색 바탕 위에서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꽃다발 속에서 샤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서명 혹은 부호의 의미를 갖는다. 


샤갈이 프랑스에 정착하던 시기에는 종종 꽃들이 자화상을 대신하곤 했다. 
1949년 작 <파란 날개가 달린 시계추> 역시 샤갈이 전혀 초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 기법을 이용한 또 하나의 사례이다. 
그림 중앙에 새의 날개를 가진 시계추가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눈 덮인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위로 수탉이 공중에 떠 있고, 아래쪽에 꽃다발이 버려져 있으며, 
연인이 커다란 시계와 떠돌이 유대인의 실루엣 속에 이중으로 갇혀있다.

제목만큼이나 난해한 이런 정경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암호를 해독하듯 풀어나가야 하는 작품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샤갈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제각각 다른 내용이다. 
어떤 것은 유년기의 추억을 들려주고 있으며, 어떤 것은 망명생활에 대해, 
그리고 또 다른 것은 샤갈의 우울한 감정을 전달한다. 
그래서 이런 사물들은 마치 같이 무대에 오르지만 
결코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연극의 등장인물들과도 같다.

같은 공간에 모인 그들은 제각각 떠들어대지만 
옆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연극을 보고 있었다면 당연히 뒤따르게 될 불협화음이 
회화 공간 속에서는 장면의 거대한 무질서로 표현되었다. 
그 세계 속에서는 원근법이 뒤흔들리고, 중력의 법칙이 파괴되며, 
사물의 자연스런 질서가 날개 달린 시계추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교란된다.

​결국 샤갈은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것, 이를테면 샤갈은 
1910년에서 1985년까지 작업하는 동안 아주 많은 화파들을 스쳐갔는데 
계속되는 화파들이 제안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반발을 통해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시대의 예술과 갖는 이런 대립 관계는 샤갈 고유의 표현양식과 
그 자신을 표현하는 일로 이어졌다. 샤갈은 자주 자신의 그림에 등장한다.

 

마르크 샤갈, 1941.

< 도시 위에서>에서는 연인 중 한 명으로, <초록색 밤>이나 <시계추가 있는 자화상>, 
<수탉>에서는 손에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로서, 그는 자기 작품 대부분에 등장한다. 
심지어 뒤의 두 그림에서는 그가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처럼 자화상의 형태로든 화가의 초상 형태로든 혹은 연인으로든, 
혹은 종종 동물의 모습으로 그림 속에 계속해서 자신이 등장하는 일은 마르크 샤갈에게 
그림이 광범위한 의미에서 자전적인 고백과도 같음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샤갈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서 메시지> 연작은 성경의 교육적 기능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입증한다. 
그의 연인들은 사랑에 대한 그의 신념을 보여주며, 그의 풍경들은 
그가 거친 많은 여행과 만남에 대해 들려준다. 
따라서 샤갈의 작품들은 그의 세계, 아니 어쩌면 그의 세계들을 
마치 거대한 소설처럼 펼쳐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비테프스크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방스로 1914-1918년의 <도시 위에서>는 
샤갈의 초기 걸작에 속한다. 
양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그림은 고대 히브리 필사본의 삽화들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함을 고의적으로 도입한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엘 리시츠키 같은 샤갈의 동료화가들이 그린 삽화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양식이다. 
이런 삽화들은 텍스트에 충실하며 개인적인 담론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동료들과 달리 샤갈은 대중적인 삽화에서 이용되던 이런 양식을 
대형 회화에 이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당시 그의 그림들 중 일부에서 드러나던 파리와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당시 절대주의와 함께 자리 잡고 있던 미학, 
그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미학과 대립되는 관계를 확립하고 있다.

화가의 모습이나 자전적인 이야기는 <검은 장갑>, <땅거미 질 무렵>, <초록색 밤> 등 
30년대와 40년대의 그림에서 많이 발견된다. 
또한 더 후기에 제작된 종교적인 함축을 가진 그림들이나 성경의 삽화들 속에도 등장한다. 
그 단적인 예가 1947년 작 <강가에서의 부활>이다. 
이 그림은 지극히 다른 내용의 장면들이 같이 모여 있는 그림이다. 
그리스도가 그림 위쪽을 차지하고 있고, 그 위로 초승달이 떠 있다.

그림 왼편에는 비테프스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 편에는 화가가 보인다. 
화가 아래로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꽃다발을 들고 있는 천사, 
촛대, 바이올린 연주자가 보인다. 
여기서 화가의 존재는 관객들에게 지금 눈 앞에 있는 세계가 순수하게 회화의 세계, 
화가의 팔레트에서 만들어진 산물, 바로 샤갈의 세계임을 분명하게 전해준다. 
화가가 등장하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처럼, 이 그림은 나열의 외형을 취한다.

유년기의 기억들(나무로 만든 집들과 거실의 괘종시계)과 벨라에 대한 기억 등 많은 것들이 
그 안에 뒤죽박죽으로 던져져있으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들과 뒤섞여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통은 유대민족의 고통을 지시하기도 하고 (특히 전후의 작품들에서), 
화가의 상황을 지시하기도 한다. 
어떤 작품들에서는 그리스도가 손에 팔레트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화가를 둘러싼 이런 나열은 이 인물이 화가 샤갈의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 
자신의 노정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뜻한다.

 

노년의 마르크 샤갈과 그의 아내 바바, 1967. 

샤갈에게 미술은 말의 연장이며, 담론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사람들이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인 경우가 많다. 
그림의 이미지들이 다같이 하나의 줄거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의 대형 회화들도 마찬가지여서 그 대부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술적인 성격을 띤다. 
<비테프스크 위를 나는 누드>를 예로 들어보자. 
이 그림은 마을의 공간과 누드의 공간이라는 두 공간을 하나로 결합하고 있다.

처음 볼 때는 두 세계가 서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림이 샤갈의 고향마을 
비테프스크에 대한 추억과 벨라에 대한 추억을 회화적 공간 속에 뒤섞어서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보면 두 세계가 조화를 이루게 된다. 
현대 예술의 한가운데에서 제작된 샤갈의 작품 전체가 
화가 자신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는 점은 몹시 특이하게 보인다. 

샤갈의 작품세계는 특정 양식을 만들어 내었던 20세기의

위대한 예술운동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샤갈은 많은 예술 사조를 스쳐지나갔지만, 거기에 고착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작품들은 나름의 독특한 '필법'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그것은 작품 하나하나를 샤갈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의 집약으로, 
그리고 그의 인생의 한 단편으로 만드는 필법이었다. 

 

검은 장갑을 낀 피앙세. 1909.

샤갈보다 아홉살 어린 '벨라 로젠펠드'는 보석상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샤갈이 스물두살 때 고향 마을의 여자친구 '테아 '집에 놀러갔다가 
마침 그 집을 방문한 벨라와의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아직 열세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지만, 그 순간 샤갈의 마음은 
여자친구로부터 멀어져 곧바로 벨라에게로 갔다고 한다.

 

I and the Village, 나와 마을. 1911. oil on canvas. 150.5 x 191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꿈의 세계로 고향을 묘사한 ‘나와 마을’
샤갈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모색한다. 

그는 “파리에서 나는 모든 것, 특히 직업으로서의 예술을 발견한 것 같다. 
나는 미술관과 살롱전, 어디에서나 나를 알려야 했다. 
어떤 미술학교도 내가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와 그곳의 전시작품들, 
파리의 미술관에서 흥미롭게 발견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못할 것이다”
라고 파리에서의 작업에 대해 밝혔다.

샤갈은 국제적으로 활동을 하기 위해 이름도 세갈 모슈에서 마르크 샤갈로 바꿨다. 
샤갈이 라 뤼슈에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나와 마을’이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샤갈의 첫 번째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의 녹색의 옆 얼굴을 반쯤 보이고 있는 사람이 샤갈 자신인 ‘나’다. 
유태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샤갈은 

자신의 얼굴의 특징을 날카로운 삼각형의 코로 표현했다. 
화면 속에 말이나 양에서 젖을 짜는 여인, 건물, 농부 등은 

고향 비테프스크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 작품에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농부와 건물은 샤갈에게 
고향이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의 세계임을 뜻하고 있다.
 
이해부터 3년간에 걸쳐 이른바 샤갈의 퀴비스트 시대가 시작된다. 
이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화면을 원과 삼각, 사각으로 구성하는 방법은 분명히 퀴비스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하학적 구성은 작가의 흩어진 추상의 이미지에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점은 나와 마을의 <거리(距離)>를 
이렇게 친밀하게 하여 주는 것은 심정에 의한  질서화의 힘이다. 
이 힘이 바로 소와 나를 같은 원 안에 접근시키고, 인물과 집들을 흡수하여 도치 시키고, 
소의 희생 (두부의 유혈)과 무구(無垢)의 상징인 작은 흰 소로서 표현하게 한 것이다. 

샤갈의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파리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샤갈은 고갱과 고호의 원시적이며 열정적인 생명력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고향 비테부스크를 인상파 화가들보다 더 과감하게 그렸다. 
소와 마주한 초록색 얼굴이나 뒤집혀 있는 듯한 사람 등을 보며 많은 이들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1. 사실의 설명
이 그림은 마르크 샤갈의 1911년 작품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속에는 하얀색의 소 (또는 말)과 초록색의 사람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그림 윗부분에는 마을의 집과 교회가 있으며 몇몇 집들은 거꾸로 공중에 떠 있다. 
그 밑으로는 여인과 낫을 들고 있는 농부가 있는데 이들도 역시 집처럼 여인은 거꾸로 된 모습이다. 
흰 소가 그려진 부분에는 흰 염소와 그 염소에게서 젖을 짜내고 있는 듯한 여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림 중앙에는 원 형태를 볼 수 있는데 그 원 아래 하나의 나무가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붉은색과 초록색 등 대비되는 색감이 사용되었지만 
균형적인 전체적인 색감에 의해 무엇인가 몽롱한 분위기다.

​이 그림을 그린 프랑스 파리에 진출한 표현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은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린다. 
유대인인 그는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스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1910년 파리에 유학,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그림은 러시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샤갈이 파리에서 
입체파적 분석방법을 공부하면서 고향 마을에 대한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 
샤갈은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상징과 민속적인 이야기에 애정을 지녀 
이러한 주제들을 회화에 끌어들였으며 유화, 판화, 벽화, 조각, 
도기제작을 비롯하여 무대 장식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2. 주제의 설명
그림 제목 ‘나와 마을’과 이 그림이 고향을 떠나 파리로 왔던 때에 그려진 시기로 보아 
이 그림의 주제는 샤갈의 고향시절의 기억과 모습을 말하고 있다. 
화면에 그려져 있는 소와 사람의 그윽한 시선으로 보아 샤갈에게 있어서 고향의 마을은 
친구나 가족처럼 다정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기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따스한 기억은 새로운 타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샤갈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 그림 속 샤갈의 고향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하학 모형들의 균형적인 분할을 유지하면서도 거꾸로 된 집과 여인같이 
몽롱한 동화적 장면처럼 묘사되어 있어 그림은 더욱 꿈처럼 느껴진다.

3. 의도와 목적의 해석
화면 오른쪽에는 초록색 얼굴을 한 사람의 옆 모습이, 
왼쪽에는 하얀 얼굴의 소의 옆 모습이 크게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초록색의 눈에 띄는 얼굴색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적인 그림과 
약간 겉도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이 사람은 이 몽환적인 분위기속에서 
다른 실제 존재인 샤갈, 본인 ‘나’를 의미한다. 

즉, 샤갈 본인의 유년기 시절의 기억들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마치 고향의 대화를 나누듯이 마주보고 있다. 
소와 나는 커다랗고 영롱한 눈을 빛내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눈빛은 적대적인 것이 아닌 평범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이다. 
그리고 소와 인간은 둘 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데, 이로보아 소는 의인화된 모습이다.

​다정한 눈길을 담고 있는 흰 소안에 나타난 또 다른 작은 염소와 여성이 
파랗고 맑은 아름답고 충만한 하늘과 함께 묘사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로간의 의존은 샤갈이 어린 시절 마을에서 겪었던 
다정하고 따스한 마을의 친밀한 유대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소는 조국과 어머니, 연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샤갈이 겪었던 
다정하고 따스한 모성애의 기억과 함께 아름답고 포근한 행복을 표현했다.

​그림에는 마음 속에 깊이 잠재되어 비틀거리고 있는 추상의 이미지를 
기하학적 구성을 통해서 평면화 시키고 있다. 
또한 거꾸로 있는 집과 여인,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 인간과 동물의 기이한 공존, 
달을 가리고 있는 태양 등 사실적 표현이 아닌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기하학 모형들과 사람들과 동물들과 집들은 
서로 다정하고 따스하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부조화를 이루는 요소들이 기억의 파편,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어 이 작품의 상징주의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과 푸른색은 보색의 효과로 불균형적인 모습보다는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색동옷 등 보색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이 그림이 더욱 생기 있고 친숙한 느낌으로 해석된다. 
또한 다정한 염소의 모양으로부터 농부 부부가 걸어가는 저 길의 끝까지 
그림의 모든 구조들은 서로 상호보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림 아래쪽의 나무는 마을 사람들 간의 협력으로 인한 창조물들 
가을에 거두어들일 수확물들 곡식들을 상징한다. 
생명을 묘사하는 이 나무는 물질적인 가을의 수확물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긴밀한 유대감과 따스한 정으로 인한 정신적인 행복이라는 

마을 사람들이 누리는 보상도 상징한다. 


또한 그림 중앙의 둥근 원의 형상과 주위에 조금씩 보이는 원의 형체들은 
태양과 달, 지구를 상징하며 이 작은 마을이 우주와 태양과 지구와 달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면서 서로 연결되어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4. 배경의 해석 
이 그림의 화가인 샤갈은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마을 비테브스크에서 태어나 
1910년 후원자를 만나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미술의 꿈을 위해 파리로 왔지만, 타지에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적응에서 비롯되는 힘든 상황은 
고향을 더욱 따스하고 푸근했던 곳으로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파리에서 온지 1년 후에 그려진 ‘나와 마을’은 이러한 타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의 상황도 많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파리에서 파리의 전위 예술가들, 특히 시인 블레즈 상드라르, 
기욤 아폴리네르와 화가 카임 수틴, 페르낭 레제, 로베르 들로네 등과 
친분을 맺었고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의 영향은 곧 그의 작품에 나타났다.

 

Russian Wedding, 러시아 결혼식. 1909. oil on canvas. 97 x 68 cm. 
Bührle Foundation, Zürich, Switzerland

그 전까지 샤갈의 작품은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그림이었지만 
곧 그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적인 경향으로 바뀌게 된다. 
“예술의 태양은 파리에서만 빛나고 있었다” 라고 화가 본인이 말했을 정도로 
파리에서 달라진 그의 변화는 파리로 오기 전 그렸던 <러시아 결혼식>에서 묘사된 
마을의 모습과 파리에 오고난 후 그린 마을 ‘나와 마을’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나타난다.

‘나와 마을’에서는 원과 삼각형 구도를 차입하는 새로운 조형 표현을 하였으며, 
전체화면에 x로 구획을 짓고 삼각형을 꼭짓점으로 하는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새로운 원을 그려 넣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도전하는 그의 당시 상황은 
형식과 색채에 대한 전위적인 실험을 행하는 그림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Adam and Eve. 1912. oil on canvas. 109 x 160.5 cm.
Saint Louis Art Museum, St. Louis, MO, USA

당시 샤갈은 세잔을 동경하여 형태의 다양한 기하학적 해체를 
철저히 관찰하려는 그의 결심을 추측할 수 있다.
바로 이 그림이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다만 형태가 이렇게 세분 되면서도 유동적이고 시원한 감을 주는 것은 
코로니스트로서의 작가의 자질에 힘입은 바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같은 그림을 흑백사진으로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다른 작품에도 나타나지만 인물 표정에 음산한 면이 떠올라 와서 

금단을 범한 악의 주제가 드러날 것이다.

 

The Cattle Dealer. 1912. oil on canvas. 
200.5 x 97 cm. Collection of Eberhard W. Kornfeld

강렬한 황색 수레바퀴와 암말의 태내에서 투시되는 망아지는 윤회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조형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인 것 같다. 
이 그림은 항상 어린 마르크 샤갈을 데리고 도살업자에게 가축을 팔러가던 
숙부 내외를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도살의 광경이 그를 항상 전율케 했으나, 그의 그림에서 짐승은 언제나 축성되어 있다. 
여기서도 부부의 얼굴은 앞을 보지 않고 여자가 지고 있는 가련한 작은 동물을 되돌아 보고 있다.​

 

To Russia, with Asses and Others. 1912. oil on canvas. 122 x 156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러시아 태생으로 1910년에 파리로 간 샤갈은 맨 먼저 

야수파의 강렬한 원색 구가(仇家)에 충격을 받았다. 
이어서 입체주의의 영향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자유롭고 다이나믹한 공간 취급의 방법을 
자신의 환상의 세계에 결부시키는 형식으로 입체주의를 소화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당시 레제, 들로네, 모딜리아니, 수틴 등이 살고 있던 몽파르나스 근처의 
라 디슈(벌집이라는 뜻)라 불리던 보잘것 없는 공동 주택에 살면서 자신의 세계에 전념했다.

거기에서 그는 시인 아폴리네르, 생드라르스 등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생드라르스의 시에서 힌트를 얻어, 고향 비테브스크의 풍물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 
유태인 교회도 보이는 주택가, 자신을 길러준 러시아 대지를 상징하는 암소, 
목이 달아나고 있는 여인, 무지개 빛이 비낀 하늘 등을 중첩시킨 화면 구성은 
입체주의의 적용이라 할 수 있겠다.  

 

Jew at Prayer. 1913. oil on canvas. 40 cm X 31 cm. 예루살렘, 이스라엘 미술관 소장

토라의 푸른 두루마리를 등에 지고, 짙은 어둠 속에서 

한 개의 기호처럼 몸을 구부린 노인의 그림이다. 
같은 피의 운명에 놓인 스틴 등 자연의 사물을 전부 비틀어서 그린 스타일이 상기된다. 
1912년에는 파리에 있으면서 신을 두려워하는 노인의 그림을 여러 점이나 계속 그렸다. 
< 토라를 가진 사나이>는 상체를 직각으로 젖혀서 하늘을 처다보고, 
<성 보아튈리에>는 S자 형의 아크로바틱 포옴을 취하고 있다. 
이 굴절하는 것에 대한 오브세셩 (강박관념)은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 아닐까?

 

The betrothed and Eiffel Tower, 에펠탑의 신랑신부. 1913. oil on canvas.
136.5 X 150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결혼식 예복을 입은 신부와 그 신부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신랑은 
빠지지 않고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샤갈은 신부인 벨라를 꼭 끌어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곳이 파리의 하늘이든, 
비테브스크의 하늘이든, 성서 속의 이야기 속이든, 단 한순간도 신랑은 신부를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샤갈의 현명하고 아름다운 유대인 신부는 

1944년 미국 망명 중에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녀는 전쟁 중에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근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작품 세계의 여신이며 인생의 동반자인 벨라를 
갑자기 잃은 샤갈은 9개월 동안이나 붓을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다.

시적인 감성 두드러진 ‘에펠탑의 신랑 신부’
샤걀은 파리에서 야수주의와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낸다. 
샤갈의 시적인 감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 ‘에펠탑의 신랑 신부’다. 
처음 파리를 찾은 샤갈은 에펠탑에 매료됐고 자신의 작품에 에펠탑을 여러 차례 그렸다. 
에펠탑을 그린 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샤갈은 이 작품에서 사랑의 찬가를 표현했다. 
신랑 신부 발밑에는 고향 비테프스크가 펼쳐져 있고 
전통적인 유태인 결혼식 광경을 수탉의 꼬리 깃털 속에 그려 넣었다. 
화면 밑에 있는 천사들이 촛대를 들고 마을을 내려오는 모습은

전쟁이 다가옴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수탉은 연인들을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을 상징한다.

암소, 황소, 당나귀, 말, 염소, 수탉, 물고기는 

샤갈의 세계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동물들이다. 
비테부르크의 세계에서 유래하는 동물들은 유대교를 상징하며 숭고함을 함축하고 있다.

격변기 속 자신의 삶, 환상적으로 표현.
파리에서 만족스러운 활동을 펼친 샤갈은 

사랑하는 벨라와 결혼하기 위해 고향 러시아로 돌아간다. 
그는 고향 비테프스크 미술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지만 
곧 혁명과 예술적 갈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모스크바로 이주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샤갈은 조국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을 한다. 
샤갈은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면서 행복한 감정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평화로움은 곧이어 터진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깨진다.

샤갈은 마티스, 피카소 등 남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들을 
피신시킬 목적으로 기획된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청을 받아 뉴욕으로 망명을 한다. 
하지만 번잡스러운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내 벨라가 피서지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급작스럽게 죽는 슬픔을 겪는다. 
결국 샤갈은 그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파리로 돌아온다. 
이후 샤갈은 파리에서 성서라는 주제에 몰두한다.

빛의 마술사, 초현실주의 작가인 마르크 샤갈은 꿈속에서 본 듯한 장면을 
그림에 담아내는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 
<에펠탑의 신랑신부>는 장 콕토의 시 제목을 차용한 것으로, 
에덴동산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뜻하는 연인들을 태운 수탉, 파리의 자유로운 햇빛이 
솜처럼 부드럽고 감각적인 색조로 그려진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염소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축하 연주를 들으며 던진 
부케를 받은 친구는 천사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벨라루스 태생인 샤갈은 파리로 건너와 본격적인 작가의 이력을 쌓았는데, 
나치의 위협을 피해 프랑스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 이민을 떠나기 직전에 완성한 그림이다. 
동물과 인물이 뒤섞인 구성으로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의 로맨스가 잘 드러난다. 
예술 도시 거주자의 자부심이 드러난 에펠탑의 전경을 통해 로맨틱함을 표현했다.

그림 속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는 마르크 샤갈 본인과 사랑하는 아내 벨라다. 
샤갈은 ‘오직 벨라를 통해서만 사랑을 느끼고 행동하고 그림을 그려 왔다’고 
고백했을 만큼 아내를 완벽하게 사랑했다.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인 샤갈은 고난의 연속이었던 자기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빛을 아내 벨라에게서 보았다.

벨라는 러시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부자인 부모를 두었는데, 
보석중개업을 하면서 쌓은 이 엄청난 부는 유대인에 대한 핍박도 피해갈 정도였다. 
벨라는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명품 교육을 받은 ‘엄친딸’이었다. 
문학, 역사, 음악, 예술 등 다방면의 지식을 고루 갖추고 있었고, 
18살의 나이에 세계적 명문인 모스크바대학에 들어갔을 만큼 똑똑했다. 
그야말로 풍부한 교양과 지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여인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뮤즈가 되어준 여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한줄기 희망이 되어준 사랑. 
결혼 이후 샤갈의 어둡고 우울하던 그림들은 삶의 환희와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 찬 그림으로 바뀌었다. 

 

The Fiddler. 1913. oil on canva. 158 x 188 cm. 
Stedelijk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꽃다발과 소, 닭, 서커스와 더블어 샤갈의 주요한 조형기호(造型記號)가 된 
바이올린은 여기서는 아직 충분히 그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1909년의 <결혼>에서는 혼례 행렬의 선두역을 맡은 악사로, 또한 1911년의 
<바이올린 주자>에서는 문전 걸식을 하는 노인의 장사 밑천으로, 
이 그림에서는 주정꾼의 노리개에 불과하므로 어느것이나 
사랑이 뿌려 주는 별들의 하나로 변모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기서 악기는 맑은 날에 지붕 위에 올라가서 흥취있게 악기를 켜고 있던 
작가의 어린 시절 숙부들의 추억과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인물은 초자연적인 색채와 크기로 그려져 있으며, 
지붕이라기 보다는 지구를 딛고 서 있는 듯하며, 
또한 다채로운 발자취는 천상의 눈(雪) 위에 남겨진 것 같다.

 

The Birthday. 1915. oil on canvas. 99.5 x 80.5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여성의 동작에 따라 이 불가능한 도약이 그려졌으나, 
허공에 나타난 것처럼 그녀에게 입맞추는 목의 묘사법은 15년 후의 <아크로바트>에 연결된다. 
대상을 언제나 휘어지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제작 충동이 이 커플로 하여금 
약간 희화적 이긴 하나, 결코 부자연스럽게는 보이지 않는 표현이 되게 하고 있다.
 
샤갈의 생일날 벨라가 들꽃을 한웅큼 꽃다발을 만들어 온다. 
벨라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배우 수업을 받고 있었으나 샤갈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꿈을 버렸다. 
그녀 부모로선 결코 환영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하다. 
다들 어디선가 얼핏 한번 쯤은 본 적이 있는 그림일 것 같다.  
샤갈이 결혼하기 몇주 전, 사랑하는 여인 벨라가 꽃을 들고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온 행복한 순간을 담고 있다. 
소박한 식기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행복한 마음에 들떠 날아오를 듯한 몸. 
부드러운 선과 색채로 그린 그림이 그의 그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 하다. 
 
부유한 보석상의 딸과 가난한 화가의 결혼에 벨라의 부모님이 반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식의 사랑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열렬한 사랑으로 그들은 결혼을 했다. 
30년 가까이 살며 그의 많은 작품에 모델이 되었던 
그녀가 죽은 당시에는 9개월간 붓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Cemetery Gates, 묘지의 문. 1917. ​oil on canvas. 68.6 x 87 cm. Private Collection

하늘은 블루, 수목은 녹색, 문은 회색과 암적색, 그리고 하늘과 땅에 여기저기 흩어진 황색. 
과연 그 어느 화가가 묘지를 이같은 프리즘의 광선으로 분해할수 있을까? 
묘지의 문은 색채에 의한 퀴비스트이다. 

이 문을 지나서 바라본 내부의 풍경은 다시 연작으로 그려졌으며, 
묘석이 있는 언덕의 광경은 이로부터 4년 전에 표현파 화가인 L.마이드너가 그린 
<나와 도시>와 우연하게도 흡사한 묵시록적 광경을 보여주고 있으나, 
후자의 절망적 어둠에 비하면 전자는 포에지 바로 그것이다.

문에 히브라이 글자로 쓰여진 말은 감동적인 부활을 알리는 에스겔서(書), 
즉 <구약>의 묵시록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백주의 극광(極光)과도 같은 광채는 결코 단순한 색채의 유희는 아닌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2,000년 동안 내려오는 유태인 학살의 운명에 대한 장엄성은 아닐까?  

 

Over the town, 도시 위에서. 1918. oil on canvas. 56 x 45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화가의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샤갈과 그의 부인 벨라가 날고 있다.
작품의 제작년도가 1차 대전과 겹치고 중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사실을 고려하면 
그림의 내용은 격동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화가가 애써 세파를 외면하려한 것일까? ....."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게 아니라 그런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건이 그에게 일어난 것이다. 
1915년 그는 사랑하는 벨라와 결혼했다.

벨라와 함께 살게 된 것은 그에게 더할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이 무렵 그가 벨라와 생활하면서 느낀 기분은 '스며들다' '날아다니다'처럼 
시적인 언어들로 당시의 일상을 기록한 데서 잘 나타난다. 

"그녀가 하늘의 푸른 공기와 사랑과 꽃과 함께 스며들어 왔다. 
온통 흰색으로 혹은 검은 색으로 차려입은 그녀가 

내 그림을 인도하며 캔버스 위를 날아 다녔다." 

하늘을 나는 두 부부의 이미지는 이렇듯 초현실이 아니라 
샤갈이 느낀 현실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다.
아래로 보이는 비테프스키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고향 마을이다. 
그러니까 그림의 위 아래는 그의 진솔한 사랑의 대상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 무렵 그는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고향마을 비테프스크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쟁 초부터 러시아에서는 유대인들이 첩자로 의심받아 전선 근처에서 추방당했고, 
그 때문에 비테프스크에는 수천 명의 난민이 몰려든 것이다. 
같은 유대인으로서 동병상련을 느낀 샤갈은 유대인의 신앙과 
고향 마을에 대해 더욱 애뜻한 감상을 지니게 되었다. 
그림에서는 그 연민과 향수 그리고 아내와의 사랑과 행복이 
달콤 쌉쌀한 초콜릿처럼 어우러져 우리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사랑에 빠지면 갑자기 지구가 무중력 상태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 사라져 몸은 두둥실 날아 올라 

온통 유치한 핑크빛으로 공기를 물들인다. 
이때 주로 난 핑크색 솜사탕을 떠올린다. 


핑크색 솜사탕이 구름처럼 하늘에 뭉게뭉게 떠있거나, 

아름다운 조각상을 배경으로 한 트레비 분수에서 핑크색 물이 뿜어져 나오고, 

동전을 던지며 열심히 소원을 비는 남녀들의 얼굴, 가슴, 다리, 발까지 

화선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서서히 핑크색 물이 스며들며, 

결국 모든 이들은 빌고 있던 사랑이 당장 이루어진 것마냥 
밝고 환한 미소와 반짝이는 눈동자로 사랑에 물든 마음을 표현한다. 

샤갈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이런 유치하기에 더욱 찬란(?)한 나의 상상이 
'하늘의 푸른 공기와 꽃과 함께 날아들어온 그의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화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환상을 주는 예술 작품은 무한경쟁의 시대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청량한 자극제이자 항상 가까이 하여야 할 명상 자체인 것이다.

 

The Green Violinist. 1923 ~1924. oil on canvas. 108.6 x 198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초록빛 바이올리니스트' 도 '나와 마을'과 마찬가지로 
샤갈의 고향 비테프스크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래와 춤을 통해 신과 교통하는 유대교 신비주의의 전통 속에서 자란 샤갈에게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미지는 고향 마을의 모든 의식과 축제의 압축된 상징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얼굴은 '나와 마을'에서의 샤갈 자신의 얼굴처럼 초록빛으로 채색되었다. 
바이올린의 선율을 따라 그는 일상을 벗어나 
마법처럼 환상적인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만 같다.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그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생 폴 드 방스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죽는 날까지 비테프스크의 풍경을 화폭에 줄기차게 그려내어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행복한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방랑자의 노래요, 영혼을 울리는 시요, 
아련한 추억을 일깨우는 마법의 선물로 우리곁에 영원히 남아 있다. ​

 

Lovers with Flowers. 1927. oil on canvas. 100 X 89 cm.
​Israel Museum, Jerusalem, Israel

샤갈은 환상이란 반드시 초자연을 필요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또한 이것은 그 자신이 수년동안 국내 여행에서 깨달은 자각이 아닐까? 
샤갈의 특징인 연인과 꽃의 결부는 이 시기부터 뚜렷한 포름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 스타일의 시초는 백합꽃 그늘에서 포옹하는 남녀를 그린 5년 전의 <입맞춤>부터이다.

​초점을 전경의 꽃과 잎사귀에 맞추어 뚜렷하게 그리고, 
포옹한 사람의 뒤를 멀찍이 흐리게 그리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뉘앙스로서의 터치, 정감이 깃든 인물의 두터운 마티에르... 
이 스타일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부인 기수(騎手)>에서 
완전한 포옹의 기호화(記號化)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The Acrobat. 1930. oil on canvas. 32 x 65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1887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은 
1985년 파리에서 사망하기까지 100년 가까이 장수했다. 
그의 일생은 급변하는 20세기 현대사의 수레 바퀴와 함께했다. 
유대인인 샤갈은 전쟁을 피해 프랑스,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는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화가의 꿈을 접지 않았다. 
밝고 화려하며 환상적인 그의 그림은 비극과 불행을 

행복으로 승화한 역설의 미학을 담고 있다.  
 
1930년에 제작한 이 작품도 샤갈 특유의 상상력과 서정성이 돋보인다. 
위태롭게 외줄을 타는 곡예사의 표정은 불안하기는커녕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곡예사의 얼굴 옆에 바짝 붙어 귓속말을 전하는 얼굴은 마치 수호 천사처럼 보인다. 
현실에서 겪은 고난을 상상력으로 절묘하게 결합한 샤갈의 그림은 
시공을 초월해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가 즐겨 그린 주제는 어린 시절을 보낸 러시아의 평화로운 시골 마을 풍경과 
아내 벨라와의 행복했던 결혼 생활,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종교적 내용이다. 
이 그림에서도 이런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샤갈은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로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란 말 그대로 현실 너머의 세계, 즉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 사조를 일컫는 용어다. 
192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등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번성했다. 
대부분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무의식이나 꿈을 중시하고 
상상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비이성적이며 비현실적인 세계를 창조해 냈다.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배경은 20세기 전반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사회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는 전쟁과 파괴로 얼룩졌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다다이즘으로 허무와 공허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다다이즘 정신을 계승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다다이스트보다 
훨씬 다양한 형식과 풍부한 표현 기법으로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구현했다. 
그 대표적 작가로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이 있다​

 

Equestrienne, 여 곡마사. 1931. oil on canvas. 80.8 x 100 cm.
Stedelijk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샤갈은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가선 서커스를 주제로한 연작을 그리게 되는데, 
이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이다. 
바이올린을 턱밑에 끼고 꽃다발을 입에 문 백마가 있고, 그위에 올라탄 
빨간 부채를 든 빨간 옷의 여인과 초록색 상의의 연인이 있다. 
오른쪽 밑의 멀리로는 러시아의 마을과 곡마단이 있고, 
그와 대각선을 이루는 화면 왼쪽 위에도 바이올린을 켜는 사나이가 보인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사랑의 찬가인데, 샤갈의 독특한 환상인 이 찬가는 
주제 요소의 매혹적인 중첩과 꿈속 같은 색조 분위기로 인해 무한한 변주를 보인다. 
샤갈은 만년의 많은 작품에서처럼 유년 시절의 경험을 되살리고 있다. 
그에게 있어 그러한 유년 시절의 경험은 상상력에 의해 여러번 되풀이되고 
그 모습도 달리하고 있으나 긴 생애 동안 그의 마음에서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

 

[영상]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화가 마르크 샤갈 대표명작 감상, 특징 알아보기

 

​A House in Liozna. 1908. oil on paper. 49 x 37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마르크 샤갈의 스물한 살 때 그림으로 고향 리오스나의 집이다. 
리오스나는 벨라루스의 작은 도시 비테브스크 (Vitebsk)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청어 가게 간판이 보인다.

 

Old Woman with a Ball of Yarn​. 1906. charcoal, gouache, 
oil on cardboard.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Young Girl on a Sofa (Mariaska), 소파 위에 여인. 1907.
oil on canvas. 92.5 x 72 cm. Private Collection

 

Red Nude Sitting Up. 1908. oil on canvas. 70 x 90 cm. Private Collection

 

Small Drawing Room. 1908. oil on paper. 29 x 22.5 cm. Private Collection

 

Window Vitebsk. 1908. oil on paper. 58 x 67 cm. Private Collection

 

The deceased (The Death). 1908. oil on canva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Circumcision. 1909.  oil on canvas. 71.7 x 77.8 cm. Private Collection

 

The Couple (A Holy Family). 1909. oil on canvas. 103 x 91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Birth.1910. oil on canvas. 89.5 x 65 cm. Kunsthaus Zürich, Zürich, Switzerland

 

Butcher. 1910. gouache, paper. 24 x 34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Portrait of artist's sister (Aniuta). 191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till Life with Lamp. 1910. oil on canvas. 45 x 81 cm. 
Galerie Rosengart, Lucerne, Switzerland.

 

The Model. 1910. oil on canvas. 51.5 x 62 cm. Private Collection 

 

Woman with a Bouquet. 1910. oil on canvas. 

53.5 x 64 cm. Private Collection 

 

Bride with a Fan. 191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Cain and Abel. 1911. gouache,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Daphnis and Chloe. 1911. watercolor.  21 x 16.5 cm . Private Collection.

 

Interior II. 1911. oil on canvas.  180 X 100 cm. Private Collection 

 

Man at table. 1911. oil on canvas. 

 

Nude with flowers. 1911. gouache, paper. 24 x 33.5 cm. Private Collection

 

Rain. 1911. charcoal, oil on  canvas. 108 x 86.7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Reclining Nude. 1911. gouache, cardboard . 34 x 24 cm . Private Collection

 

Russian Village Under the Moon. 1911. oil on  canvas. 104 x 126 cm. 
Staatsgalerie Moderner Kunst, Munich, Germany

 

Study for the painting Rain. 1911. gouache, cardboard.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To My Betrothed. 1911. gouache, oil on  paper. 44.5 x 61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Birth. 1912. oil on canvas. 193.5 x 112.5 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Golgotha. 1912. oil on canvas. 191 x 174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Homage to Apollinaire. 1911~1912. oil on  canvas. 9.9 x 200 cm.
 Stedelijk Van Abbe Museum, Eindhoven, Netherlands

 

Jewish Wedding. 1912.  ink on paper. 30 x 20.5 cm. Private Collection

 

Mazin, the Poet. 1912. oil on canvas. 54 x 73 cm. Private Collection

 

Soldiers. 1912. 32.4 x 38.1 cm, Private Collection

 

Still life. 191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Drunkard. 1912. oil on canvas. 115 x 85 cm. Private Collection

 

The Holy Coachman. 1911~1912. oil on canvas. 

115 x 85 cm. Private Collection 

 

The old Jew. 1912. oil on canvas.

 

The Pinch of Snuff. 1912. oil on canvas. 

90 x 128 cm. Private Collection

 

The Poet, or Half Past Three. 1911!~1912. oil on canvas. 146 x 197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The Soldier Drinks. 1912. oil on canvas. 94.7 x 109.8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The Spoonful of Milk. 191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Burning House. 1913. oil on canvas. 120.6 x 107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Nude. 1913. gouache. paper. 24 x 34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Lugano-Castagnola, Madrid, Spain

 

Paris through the Window. 1913. oil on canvas. 120.6 x 107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Self-Portrait with Seven Digits. 1913. oil on canvas. 107 x 128 cm.
Stedelijk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Apothecary in Vitebsk, 1914.
gouache, tempera, watercolor, paper. Private Collection

 

Barber's Shop (Uncle Zusman). 1914. gouache. oil on paper. 
37.2 x 49.3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Blue Lovers. 1914. oil on cardboad. 44 x 49 cm. Private Collection

 

Clock. 1914. gouache. oil on paper. 37 x 49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David. 191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David in profile. 191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Feast Day (Rabbi with Lemon). 1914. oil 0n canvas. 81 x 100 cm.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Germany

 

Jew in Green. 1914. oil on cardboard. 78 x 98 cm. Private Collection

 

Lisa with a Mandolin. 191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Mania cutting bread. 1914. 38 x 50.5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ther by the oven. 1914. oil on vcanvas.

 

Newspaper Seller. 1914. oil on paper. 78.5 x 98 cm. Private Collection

 

Nude Lying Down. 1914. oil on cardboard. 50.2 x 36.8 cm. Private Collection

 

Old Vitebsk. 1914. oil on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On the stretcher (wounded soldier). 1914. gouache, ink, paper.

Over Vitebesk. 1914. oil on canvas. 39 x 31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Portrait of Brother David with Mandolin. 1914. gouache, cardboard.
37 x 49.5 cm. Picture Gallery of Primorsk Region, Vladivostok, Russia

 

Portrait of Sister Maryasinka. 1914. oil on canvas. 

36 x 51 cm. Private Collection

 

Self Portrait. 1914. oil on paper. 26.5 x 30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Self Portrait in Profile. 1914. oil panel. 27.9 x 34 cm. Private Collection

 

Self Portrait with Easel. 1914.
oil on canvas. 47 x 72 cm. Private Collection.

 

Shop. 1914. oil on canvas.

 

The Fiddler. 1914. oil on canvas.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Germany

 

The Praying Jew (Rabbi of Vitebsk). 1914. oil on canvas. 
84 x 104 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The Smolensk Newspaper. 1914. oil on canvas. 50.5 x 38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Wounded Soldier. 1914. oil on canvas.

 

The street in Vitebsk. 1914. oil on cardboard. 49 x 37.5 cm

 

Green Lovers. 1915. gouache, oil on paper. 45.5 x 48 cm. Private Collection

 

Marching. 1915.

 

Red Jew. 1915. oil on canvas.

 

Soldiers with Bread. 1915. gouache, watercolor. cardboard .
37.5 x 50.5 cm. Collection of M.Z.Gordeyev, St.Petersburg, Russia

 

The Poet Reclining. 1915. oil on cardboard. 77.5 x 77 cm. 

Tate Gallery, London, UK

 

Visit to grandparents. 1915. pencil, ink, watercolor, paper. 

62.5 x 46.3 cm. Private Collection

 

War. 1915. ink, paper. 18 x 22 cm. 
The Art Museum of A. V. Lunacharsky, Krasnodar, Russia

 

Window in the Country. 1915. oil on canvas. 80.5 x 100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Mirror. 1915. 

 

Bathing of a Baby. 1916. tempera, paper. 44 x 53 cm. 
State Historical and Architectural Museum, Pskov, Russia

 

Bella and Ida by the Window. 1916. 
oil on canvas. 45 x 56 cm. Private Collection

 

Lilies of the Valley. 1916. oil on cardboard. 
33.5 x 42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Lovers in pink. 1916. oil on panel. 55 x 69 cm. Private Collection

 

Strawberries Bella and Ida at the Table. 1916.
oil on canvas. 59 x 45 cm. Private Collection

 

The Feast of the Tabernacles. 1916. 41 x 33 cm. 
Galerie Rosengart, Lucerne, Switzerland

 

Bella with White Collar. 1917.
oil on canvas. 72 x 149 cm. Private Collection

 

Composition with goat. 1917. collage, oil on cardboard. 
23.5 x 16.5 cm. Private Collection

 

Grey Lovers. 1917. oil on canvas. 
49 x 69 cm. Private Collection.

 

Lovers in green.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Homage to Gogol. Design for curtain for Gogol festival. 1917. 
gouache, watercolor, paper. 50.2 x 39.4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Peasant Life (The Stable Night Man with Whip). 1917. oil on cardboard.
21.5 x 21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The Blue House. 1917. oil on canvas. 96.8 x 66 cm.
Musée des Beaux-Arts, Liège, France

 

The cowshed. 1917. 

 

The House in Grey. 1917. oil on canvas. 74 x 68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Lugano-Castagnola, Madrid, Spain

 

The painter to the moon. 1917. gouache, paper. 30 x 32 cm. Private Collection

 

The red gateway. 1917. oil on canvas. 

 

Vitebsk from mount Zadunov. 1917. 

 

Window over a Garden. 1917. tempera, paper. 61 x 45.5 cm. 
Museum-Apartment of Isaak Brodsky, St. Petersburg, Russia

 

Marketplace in Vitebsk. 1917. 

 

House at Vitebsk. 1917. oil on paper mounted on canvas. 

 

Vitebsk, village scene. 1917. oil on canvas. 54.5 x 37.5 cm. Private Collection

 

Cubist landscape. 1918. oil on canvas. 59 x 100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Double portrait with a glass of wine. 1918. oil on canvas. 136 x 233 cm.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France

 

Interior with Flowers. 1918. tempera, paper. 61 x 46.5 cm.
Museum-Apartment of Isaak Brodsky, St. Petersburg, Russia

 

Purim. 1918. oil on canvas. 71.9 x 50.5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Summer House Backyard. 1918. oil on cardboard. 
46 x 60.5 cm. Art Gallery of Armenia, Yerevan, Armenia

 

The Promenade. 1918. oil on canvas. 163.4 x 169.6 cm. 

 

Two Heads. 1918. ink, paper. 

 

Wedding. 1918. oil on canvas. 119 x 100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Musician with violin. 1919. oil on canvas. 

 

Composition with Circles and Goat. 1920. oil on canvas. 49.5 x 38.1 cm.

 

The Window. 1924. gouache. paper. 73 x 99 cm. Private Collection. 

 

Lovers under lilies. 1925. oil on canvas. 76.2 x 101.6 cm. Private Collection

 

Naked on a white cock. 1925. oil on canvas. 

 

Peasant Life, 농민 생활. 1925. oil on canvas. 80  x 101 cm.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USA

 

The Wandering Jew, 방황하는 유대인. 1923~1925. oil on canvas. 
57 x 72 cm. Museum of Modern Art, Geneva, Switzerland

 

The Watering Trough, 급수 여물통. 1925. oil on canvas. 88.5 x 99.5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Rooster Man Above Vitebsk. 192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Bella in Mourillon. 1926. oil on canvas. 65 x 47 cm. Private Collection

 

Chrysanthemums, 국화. 1926. oil, canvas. Perls Galleries, New York, USA

 

Peonies and lilacs, 모란과 라일락. 1926. 

 

Return from the Synagogue, 예배를 마치고 귀가 중. 1926.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ree Acrobates, 세 곡예사. 1926. oil on canvas. 89 x 117 cm. Private Collection

 

Equestrienne. 1927. gouache, paper. 99 x 51.1 cm. Private Collection

 

The dream (The rabbit), 토끼 꿈. 1927. 100 x 81 cm.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France

 

The Lion Grown Old, 늙은 사자. 1927. 
gouache, paper. 40.6 x 48.2 cm. Private Collection

 

Snow-covered church. 1927. Detroit Institute of Arts, Detroit, MI, USA

 

An angel painter. 1928. gouache, watercolor, paper. 51.6 x 66.3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Fruits and Flowers. 1929. oil on canvas. 80.9 x 100 cm. Private Collection

 

Russian village. 1929. oil on canvas. 92 X 73 cm. Private Collection

 

The Rooster, 수탉. 1929. oil on canvas. 65 x 81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Lugano-Castagnola, Madrid, Spain

 

The Woman and the Roses. 1929. oil on canvas. 101.3 x 80 cm.

 

Lovers in the Lilacs. 1930. oil on canvas. 87 x 128 cm. Private Collection

 

View at Peira Cava. 1930. oil on canvas. 60 x 72 cm. Private Collection

 

The frog who wished to be as big as the ox, 황소만큼 크고 싶었던 개구리. 1930.
Series : Fables of La Fontaine, 라 퐁텐 우화집. etching

 

The Lion go hunting and the Donkey, 사자 사냥과 당나귀. 1930.
Series : Fables of La Fontaine, 라 퐁텐 우화집. etching

 

A village in winter. 1930. gouache, cardboard, 50 x 62 cm. 

 

Aaron in front of the golden candlestick with seven branches, executed as prescribed by Lord. 1930. 

일곱 가지 황금 촛대 앞에서 아론이 주님께서 정하신대로 실행합니다. gouache. oil on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Abraham and Isaac on the way to the place of Sacrifice, 1931. 
희생 제사를 바치러 가는 아브라함과 이삭. gouache, oil on paper. 
48.5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Abraham is going to sacrifice his son. 1931. 아들을 희생양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
gouache, oil on paper. 48.5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Abraham prostrated himself front of three angels. 1931. 
세 천사 앞에서 몸을 엎드리는 아브라함. gouache, oil on paper . 52 x 66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Abraham Weeping for Sarah. 1931. 사라를 위해 슬피우는 아브라함. 
gouache, oil on paper. 49.5 x 62.5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Blessing of Ephraim and Manasseh, 1931.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축복. gouache, oil on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Circumcision prescribed by God to Abraham (Genesis, XVII, 10). 1931. 
창세기 17장 10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할례. gouache, oil on paper. 
49 x 62 cm.​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Creation of Eve, 이브의 창조. 1931. gouache, oil on paper. 42.5 x58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Eliezer and Rebecca. 1931. gouache, oil on paper. 52 x 67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God creates Man,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다. 1931. gouache, oil on paper. 
48 x 64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acob leaves his country and his family to go to Egypt (Genesis XLVI, 57). 1931. 
창세기 46장. 야곱이 그의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떠난다. 
gouache, oil on paper. 48 x 64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acob weeps over Joseph's tunic, 1931. 
야곱은 요셉의 제복을 보고 통곡한다. gouache, oil on paper. 48 x 64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oseph and Potiphar's wife,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1931. gouache, oil on paper. 
48.5 x 62.5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oseph explains the dreams of Pharaoh (Genesis XLI, 25 28 32). 1931. ​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설명하다. gouache, oil on paper.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oseph has been recognized by his brothers. 1931. gouache, oil on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oseph, a shepherd. 1931. gouache, oil on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Joshua, 여호수아. 1931. gouache, oil,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Lot's Daughters, 롯의 딸들. 1931. gouache, oil, paper. 48 x 63.5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iriam dances. 1931. gouache, oil,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breaks Tablets of Law. 1931. gouache, oil, paper. 48.5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and Aaron, 모세와 아론. 1931. gouache, watercolor on paper.  
51 x 64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and Aaron with Pharaoh. 1931. gouache, watercolor on  paper. 
48.5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and the Striking Rock. 1931. gouache, oil, paper. 49 x 61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casts his stick that transformed into a snake on the orders 
of the Lord, that referred to Aaron and Moses, 
when they had visited Pharaoh (Exodus, IV, 1-5, VII, 8-13). 1931. 
gouache, watercolor on  paper. 49 x 63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is saved from the water by Pharaoh's daughter. 1931. gouache, oil, paper. 
49 x 61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received the Tablets of Law. 1931. gouache, oil, paper. 48.5 x 61 cm. ​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spreads death among the Egyptians. gouache, oil, paper. 49 x 62.5 cm. ​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Moses spreads the darkness over Egypt 1931. gouache, oil,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Noah lets go the dove through the window of the Ark (Genesis VIII, 6 9). 

1931. gouache, oil, paper. 49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Noah receives the order to build the Ark. 1931. gouache, oil, paper. 
42.5 x 58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Noah's Cloak. 1931. gouache, oil, paper. 48 x 63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Rainbow in the sky, a sign of Covenant between God and Earth. 1931. 
gouache, oil on paper. 47.5 x 63.5 cm. ​​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Rainbow in the sky, a sign of Covenant between God and Earth. 
1931. gouache, oil on paper. 52 x 66.5 cm. ​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The Descent towards Sodom. 1931. gouache, oil on paper. 52 x 66.5 cm. ​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The Hebrews adore the golden calf. 1931. gouache, oil on paper. 
48.5 x 61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The Israelites are eating the Passover Lamb. 1931. 
유월절에 어린 양을 먹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gouache, oil on paper. 
49 x 62.5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The Israelites crossing the Red Sea,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사람들. 1931. 
gouache, oil on paper. 46.5 x 63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Three angels visit Abraham. 1931. gouache, oil on paper. 49 x 62.5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The Noah's sacrifice. 1932. gouache, oil on  paper. 49.5 x 62 cm. 
Musée national Message Biblique Marc Chagall, Nic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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