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광장 [Krasnaya Ploshchad,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은 광장의 바닥이 붉은색이어서도, 공산주의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빨간색(붉은)을 뜻하는 러시아어 형용사 '크라스나야이(Красная)'가 '아름다운'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본래 성 바실리 대성당과 스파스카야 탑 중간에 있는 작은 구간이었으나, 

후에 황제가 광장을 넓히기 위해 인근에 있는 건물들을 불태우면서까지 광장을 확장, 개축하였다.


붉은 광장 전경


붉은 광장의 역사는 굉장히 풍부하고 오래되었다. 

원래 광장은 모스크바의 주요 시장터였으며, 주로 법령의 공포, 공공 행사 등이 이 곳에서 주로 집행되었고, 

특히 황제의 즉위식이 바로 이 곳에서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을 따라, 후에 소비에트 연방, 현대 러시아 연방 또한 모두 공공 행사를 주로 이 곳에서 진행한다.


성 바실리 대성당 앞에서 바라본 붉은 광장 전경


총 길이 695m, 폭 130m, 넓이 약 7만 3,000㎡ 미터에 이르는 

러시아 최대의 광장으로 러시아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남동단의 화려한 성 바실리 대성당(16세기), 크렘린 쪽의 레닌묘, 북서단의 역사박물관 등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과 유명한 굼 백화점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붉은 광장은 본래 모스크바 강과 네그린나야 강이 서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간에 있는데, 

이 구간은 크렘린의 방어가 취약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강이나 다른 자연물로 인해 보호받지도 못했고, 특별한 방어 시설 또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구간의 성벽은 크렘린 전 구간을 통틀어서 가장 높고 두껍고, 이 성벽을 짓는 데 참여한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조언으로 인해 이반 4세는 성벽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모두 철거해 버렸다. 

1493년에 공포된 법령에 따르면, 벽에서 234m보다 가까운 건물들은 모두 철거, 소각하도록 하였다.


모스크바 강변의 붉은 광장과 크렘린궁 전경


동서로는 길고, 남쪽에는 대통령 관저, 블라디미르 레닌의 미라가 보존되어 있는 레닌 묘, 

북쪽에는 국립 백화점 GUM, 서쪽에는 국립역사박물관, 

동쪽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성 바실리 성당과 처형장이었던 로브노예 자리가 있다.


모스크바 강변의 크렘린궁 전경


크렘린궁과 붉은광장 구글지도


크렘린궁과 붉은광장 위성사진 (구글어스)


1760년대의 붉은광장 (by Friedrich Hilferding)

이 주변에는 총을 파는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유명한 황제의 대포도 이 건물들 사이에 있었다.


1795년의 붉은광장 ( by Gerard Delabart)


성벽을 감싸고 있는 Alevizov 해자와 Nikolskaya 탑 (By Fedor Alekseev, 1800)


1508년부터 1516년까지, 건축가들은 크렘린의 동쪽 벽 아래에 

모스크바 강과 네그린나야 강을 잇는 거대한 해자를 파기로 결정하였다. 

이 해자는 541m의 길이를 갖고 있고, 그 너비는 36m이고, 9.5m에서 13m의 깊이를 갖고 있다. 

해자는 석회암으로 마감되어있다. 1533년에 해자의 양 옆에 안전을 위한 벽돌 벽을 쌓았다. 


1801년 광장


15세기 말부터 크렘린 정면이 광장으로 되었으며, 차르 (tsar,군주)의 선언이나 판결, 포고가 내려지던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로 상업광장 · 화재광장 등으로 불렸다. 

또 전쟁을 떠나는 군사들이 행진을 하던 곳이자 때때로 정치범이나 흉악범을 시민들 앞에서 처형하던 곳이기도 하다.

17세기 말부터 ‘아름다운(크라스나야,Krasnaya)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재 노동절 등의 시위행사나 사열식이 행해진다.


스파스카야 다리의 서점상들 (By Apollinary Vasnetsov)


이 벽에는 3개의 문들이 뚫려 있었으며, 나머지 2개의 문은 붉은 광장의 반대편에 뚫려 있었다. 

19세기 초에 문들 중 하나가 벽돌로 아름답게 장식되었으나, 여전히 '스파스키 문'이 궁궐의 공식 정문으로 기능했다. 

스파스키 문 앞 해자에는 돌로 된 다리가 있었으며, 이 다리에서는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들어서 있었다. 


스파스카야탑 부근의 노천시장 (By Boris Kustodiev, 1917)


폴란드군을 격퇴시킨 미닌(Minin)과 보차르스키(Pozharsky) 기념비


이 동상은 1612년 폴란드군으로부터 모스크바를 해방시킨 영웅 미닌과 포자르스키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미닌은 정육점 상인이었고, 포자르스키는 수즈달의 대공이었는데 

두 사람이 애국심을 발휘하여 인민 의용군을 조직, 폴란드 군을 내몰았다. 


두 사람의 그 영웅적 행동을 기념하여 청동상을 만들었는데, 이반 마르토스에 의해 1818년에 완성되었다.

한 사람은 서서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사람은 

앉아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구도로 되어 있는 이 동상은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1810년 붉은 광장  (Red Square in 1810s and building of Market Lines by Joseph Bove)


1850년대의 붉은 광장 (by I.Daziaro)


1856년 붉은 광장에서 있던 알렉산더 2세의 대관식 장면 


1850년대 붉은 광장


1860년대 붉은 광장 북쪽


20세기 초의 붉은 광장


소련의 건물 이동 기술


유럽 국가 수도들 중에서 철거된 그리고 철거 중인 건물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모스크바이다.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진 건물의 수에서도 세계 제일이다.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1930년대에 시작해 1983년까지 모스크바에서는 

무게가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수많은 건물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스탈린의 모스크바 재건 사업에 따른 것이었다.


‘건물 이사’는 소련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집 또는 다른 건축물을 통째로 이전해 왔다. 

‘건물 옮기기’ 방법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이탈리아 엔지니어인 아리스토텔레스 피오라반티로 알려져 있다. 

그가 바로 1455년에 볼로냐의 성모마리아 성당의 종탑을 10미터 이상 이동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건물 옮기기 기술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소련에서였다.


1935년 수도인 모스크바에 새로운 사회주의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모스크바 종합 재건 계획이 수립됐다. 

처음 재건에 들어간 것은 지금의 트베르스카야 거리인 고리키 거리였다. 

고리키 거리 양쪽으로 서 있는 건물들의 파사드 높이를 맞추고 스타일을 통일시킴으로써 

거리를 곧게 그리고 더 넓게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당국은 크렘린궁으로 통하는 이 거리가 웅장한 모습을 갖기를 바랬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지도 상의 고리키 거리 양편으로 붉은 직선이 그어졌다. 

이 붉은 선을 넘어 ‘튀어나온’ 건물들은 철거 또는 이동이 지시됐다.


준비작업에 4개월 이상이 걸렸지만, 정작 건물을 이동하는 데는 하룻밤밖에 걸리지 않았다. 

건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불안한 나머지 이동할 때 사전에 고지를 해달라고 했지만 

당국은 주민들에게 일부러 잘못된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어느날 밤 이동 작업을 실시했는데, 

얼마나 조용히 이동이 끝났는지 대부분의 주민이 아침에야 창밖 풍경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심지어 떠도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저녁에 큐빅으로 쌓아놓은 탑이 한밤의 이동을 겪고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도 한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트베르스카야 거리와 마모놉스키 골목 모서리에 위치한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안과병원을 이동시킬 때 부딪혔다. 

건물을 자리에서 더 안쪽으로 밀었을 뿐 아니라 97도 방향을 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건물의 파사드가 마모놉스키 골목 방향으로 나게 됐다. 

이 경우에도 이동 중에 건물 안에서 정상적으로 진료가 진행됐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의사, 환자가 그대로 있었고 수술도 진행 중이었다. 

현재 이 건물에는 아직까지도 안과가 들어서 있다.


건물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련 영화의 장면


건물 이동 기술


건물을 옮기기 전에 지반에서 분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건물 주위로 빙 둘러 구덩이를 판 후 강삭(綱索)을 이용해 건물을 지반에서 “잘라냈다.” 

그후 특수 빔으로 건물을 고정하고나서 차대를 만든 후 그것을 특수 굴대 위에 올렸다. 

굴대는 사전에 설치해 놓은 레일을 따라 움직었다. 

대개는 권양기로 건물을 앞에서 견인했고 기중기로 뒤에서 밀었다. 

준비 작업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동 자체는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이동 작업에는 주로 지하철 터널 굴착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던 지하철 건설자들이 동원됐다. 

수십 년 동안 모스크바에서는 거의 70채의 건물이 이런 방식으로 이동됐다.


‘아르히텍토르’ 통신사의 예카테리나 추구노바 사장은 

“우리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이 기술을 현재 해외에서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뉴스포털 ‘스트라나(strana.ru)’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예로, 독일인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오래된 교회를 새로운 장소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정작 기술이 개발된 러시아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기술을 외면해 왔다. 

이제는 건물을 애써 ‘들었다 놨다’ 하는 것보다 그냥 철거하고 ‘똑같은 것’을 다시 짓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붉은 광장


붉은 광장


붉은 광장


[영상] 붉은 광장 2019.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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