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르 게이트와 아테네 시내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면 아테나 니케 신전(Athena Nike)이 있다.
이 문은 3세기에 로마인들이 방어를 위해 세운 문이다.


니케 신전과 프로필라이온(오른쪽)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세 곳의 신전 가운데 나머지 하나는

서남쪽 끝에 자리한 아테나 니케(Athena Nike) 신전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모신 신전으로, 파르테논이나 에레크테이온 신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흥미로운 사연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니케 신전이 처음 설계될 당시,

델로스 동맹에 참여한 아네테를 비롯한 여러 도시 국가와 페르시아는 전쟁 중이었다.


그래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니케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을 때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테네의 승리를 기원하는 신전이 되고 말았다.


니케 신전은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더불어 이오니아 양식을 대표하는 신전이다.
이오니아 양식은 원래 에게 해 연안에 살았던 이오니아인들이 사용하던 건축 양식으로

도리아 양식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해 여성적이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보여 주듯 니케 신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하나같이 부드럽다.
그리고 기둥과 지붕 사이의 프리즈에 새겨진 조각도 파르테논 신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것을 알 수 있다.


니케 여신은 승리를 가져다주는 천사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승리의 천사가 아테네를 떠나면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 나머지 천사의 날개를 잘라 숨겨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프로필라이온(propylaion)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크로폴리스에 가려면 서쪽 통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서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은 모두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쪽 통로를 따라 불규칙적인 바위를 절묘하게 이용해 만든 대리석 계단을 지나면

아크로폴리스의 출입문인 프로필라이온이 나온다.
프로필라이온은 웅장함과 우아함이 조화를 이룬 멋진 출입문이다.


프로필라이온(propylaion)


프로필라이온(propylaion)의 거대한 기둥


에레크데테이온(Erechtheion) 신전


이오니아식의 대표적인 신전으로서 파르테논과 같이 아크로폴리스 구릉 위에 있으며
B.C. 421년 건축가 필로클레스(Philokles)의 지도하에 기공되어 B.C. 393년경에 완성된 것이다.


이 건축은 아테네 최성기의 최후의 걸작이라 하겠다.
이 신전은 포세이돈 에레크테우스(Poseidon Erechteus)를 주신(主神)으로 하고

그 외의 제신(諸神)을 위하여 건축된 것으로, 그 평면은 매우 복잡하다.


동쪽면에 이오니아식 기둥이 6개 서 있는 전주랑실(前柱廊室)이 있고 북쪽면에 4개의 기둥을 세운 전주랑실이 있으며,
남쪽면에는 아름답게 조각된 여신상주(女神像柱)가 있는 전주랑실이 있었다.


이 신전이 특별히 다른 형식을 가진 것은 서로 다른 신을 제사하는 3전을 집합하여 만든 까닭이라 하겠다.
북쪽면 전주랑실의 이오닉 오더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많은 조각장식을 하였으며,
색석·유리 등이 감입되었고 청동의 장식을 붙였다.


이 신전의 입면구성에는 많은 고심을 하였다고 하며, 동·북·서측의 건축 외관의 변화를 조화시키기 위하여
장식과 스타일(style)의 통일로 디자인의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이 신전의 디테일(detail)과 장식의 아름다움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6명의 여인상 기둥, 에레크테이온 신전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지역에 여러 신을 모시는 일이 많았는데,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 신전에는 처음부터 3명의 신을 위한 3개의 신전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다.


동쪽에는 아테나 신을, 서쪽에는 포세이돈과 헤파이스토스 신을 위한 신전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신전을 다 짓고 보니 전체적으로 하나의 신전처럼 보여서 세 신전을 분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신전의 이름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으로 전해 내려오는

에레크테우스의 이름을 따서 에레크테이온으로 지었다.


세 신전이 모여 하나의 신전이 된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신전으로 유명하다.


그중 하나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여인 형상을 한 6개의 기둥인데,

그리스의 어느 신전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를 갖고 있다.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사용된 여인상을 ‘카리아티드’라고 한다.
6명의 여인들은 똑바로 서 있는 딱딱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도

부드럽고 섬세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인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떤 학자는 6명의 여인이 귀족의 딸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학자는 노예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뒷이야기가 많이 인정되는 편이다.


6명의 여인상 기둥


이 여인상을 자세히 감상하려면 에레크테이온 신전에 가는 것보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가는 것이 더 낫다.
신전에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막아 놓은 데다가 현재 신전에 있는 조각은 모두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진짜 조각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각 방향마다 공간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인위적으로 높이를 조절하지 않고 암벽 지형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건물들은 기둥을 비롯한 문간, 창문, 신전의 크기까지 똑같은 것이 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의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그리스 문화의 뿌리인 포용성과 융합성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에레크데테이온 신전 조감도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 진품

얇은 천으로 지어서 여인의 몸에 입힌 듯 하늘하늘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 진품 뒷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 진품 부분


에레크데테이온 신전


에레크데테이온 신전 기둥


에레크데테이온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Theater of Dionysos) 전경


유적으로만 남아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때 지어진 고대 아테네의 극장으로서 드라마 예술의 근원지였으며,
소실되었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 예술가이자 집정관인 리코우르고스(Lykourgos)에 의해 복구되었다.


이후에는 확장 공사를 통해 검투장으로 사용하였는데, 오늘날에도 그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이곳에서 매년 디오니소스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디오니소스(Dionysos) 극장


디오니소스(Dionysos) 극장


극예술의 탄생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두 개의 극장이 있다. 하나는 '오데온'이라 불리며 로마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더 유서 깊고 중요한 다른 하나가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우리가 서구 세계에서 알고 있는 개념의 '연극'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했으며,
따라서 극예술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극장을 반드시 방문해 보아야 한다.


디오니소스는 연극과 포도주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신이다.
그는 미스터리로 싸여 있으며, 그를 추종하는 여성들 –

'박칸트'(디오니소스의 로마식 이름, '바쿠스'에서 유래)라 불렸으며 에우리피데스의 희극 『박카이』에 강력하게 묘사된 –

은 그의 지배를 받을 때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거친 여성들로 알려져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기원전 5세기의 뛰어난 극작가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오늘날 서양 연극의 창시자라 알려진 희곡 작가들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그 이후로 이 극장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 의해 개조되고 증축되어 왔다.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절벽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은 돌로 지은 최초의 극장이었다.
최대 1만 7천 명의 관객이 앉을 수 있었던 이 극장은 아테네에서 가장 중요한 연극 경연 대회였던

'디오니시아'를 개최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는데, 이 대회는 세 부류의 연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스 희극, 비극, 사티로스극이었다.


4세기 중반까지는 나무로 된 벤치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앉았으나,
이후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돌로 된 관람석이 도입되었다.


무대는 전통적인 그리스 방식에 따라 배치되어 오케스트라, 즉 코러스가 공연되는 장소가 무대 앞에 있었다.
이 극장은 원형 극장으로, 열려 있는 무대는 점점 높아지는 타원형 구역 안에 위치했다.


매우 탁월한 음향 효과를 제공해 주었던 이러한 설계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생겨난 다른 극장의 원형이 되었다.
4세기 이후 극장은 사용되지 않았으나, 뛰어난 가수였던 네로 황제가 대규모 개조 작업을 펼쳤다는 증거가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 안내석


디오니소스 조각상


디오니소스 조각상


디오니소스 조각상 해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성벽


디오니소스 극장 안내석


그늘을 찾아서 잠깐 인증샷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 극장


아크로폴리스의 가파른 낭떠러지 아래에는 두 개의 극장 유적지가 있다.
한 곳은 파르테논 신전 절벽 아래 자리한 디오니소스 극장이고

다른 한 곳은 니케 신전 아래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다.


아테네 극장을 대표하는 두 극장은 자연 환경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경사가 가파른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쪽에 세워져 있다.


관중석이나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는 지형이 높은 곳에,

연설자나 배우들이 서는 장소는 낮은 곳에 설치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예술회관이나 영화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 극장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지금 남아 있는 고대 극장 중 가장 아름다운 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극장으로

1955년에 복원하여 현재 야외 콘서트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헤로데스라는 사람이 아테네에 기증한 것으로 실제로 극장이 건설된 시기는

로마가 그리스를 지배한 이후라서 로마 극장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지금도 여름이면 세계적인 악단과 예술가들이 찾아와

오페라, 연극, 음악 공연을 펼치고 있어 누구나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를 벗 삼아 멋진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종교적 중심일 뿐만 아니라 문화와 삶의 중심이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기원전 161년에 건설되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음악당으로서 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 극장 입구


헤로데스 아티쿠스(BC 101년 ~ BC 178년)는 고대 그리스의 변론가이며, 고대 제일의 대부호의 아들이다.
변론술에 뛰어나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제의 지우(知遇)를 얻었으며, 이후 여러 대의 황제를 받들게 되었다.


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비롯해서 많은 유명인의 스승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고건축을 수복시키고, 아테네나 코린토스에 오디온을 설치,

델포이에 경기장을 기증하는 등 그리스 말기의 학예보호에 진력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뒤가 바로 아레오 파고스(Arios Pagos) 언덕이다.



[그리스 여행-아테네]도시의 보물들/Acropolis/Nike/Erechtheion/Parthenon/Arios




참고 ; https://blog.naver.com/hakkkkk/22134268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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