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12. 파르테논 신전을 배경으로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서,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조영(造營)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총감독하에, 설계는 익티노스, 공사는 칼리크라테스의 손으로 진행되어

BC 447년에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하였다.


플랜은 정면 8주식(柱式)의 직사각형 주주당(周柱堂:30.87×69.51m)이며,

내부는 동서로 나뉘어 동쪽에 전면 6주의 프로나오스[前室]를 두고 3면을 열주로 둘러싼 나오스[本殿]가 있고,

서쪽에는 오피스토도모스[後室]에 이어져 파르테논(처녀의 실)이라 부르는 보고(寶庫)가 있다.


본전에는 페이디아스가 금과 상아로 만든 높이 12 m에 이르는

본존(本尊)인 아테나 파르테노스(처녀 아테나)상이 안치되어 있다.


신전의 장식 조각에는 동 ·서 양박공(兩牔栱)에 여신 아테나를 칭송하는 대군상조각을 배치하고
상부 4면 외벽에는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족의 싸움’을 비롯하여,

네 가지 신화에 의한 태고(太古)의 전쟁이 도합 92면의 메토프(작은 벽)에 부조되어 있다.

2006. 3. 12.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본전 외벽 상부 4면에는 길이 163 m에 이르는 도리스식 대(大)프리즈 장식(현존 130 m)이 있다.
이 프리즈는 아테나에게 바치는 장대한 파나테나이아의 대제(大祭)를 부조한 것이며,

인물은 신들을 합쳐 총수 360여 명, 말 219필을 헤아린다.


그 귀중한 잔존부분 가운데 아직도 건축에 남아 있는 일부와 아크로폴리스미술관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조각은 영국의 수집가인 토마스 엘긴경이 수집하여 '엘긴마블스'라는 컬렉션으로 대영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이들 대조각군은 거장 페이디아스가 직접 지도하여 아르카메네스 등 뛰어난 조각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신전의 안정된 비례와 장중함은 고전시대 그리스 정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산성비에 노출되어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답지만 폐허에 가까운 파르테논 신전은 기구한 시절을 지나왔다.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지어진 이곳은 비잔틴 제국이 통치할 때는 동방정교의 교회가 되었다가,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후 가톨릭 교회가 되기도 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할 때는 모스크가 되기도 하였으나,

성격이야 어찌되었건 비교적 잘 보존된 셈이었다.


하지만 1687년 베네치아공화국이 아테네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했을 때

파르테논 신전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탄약고로 사용하던 파르테논 신전에 베네치아 군의 구포탄이 날아들어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 이어진 베네치아군의 약탈, 영국의 엘진의 유물 반출 등을 통해 파르테논 신전은 되돌릴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적은 ‘산성비’다.

파르테논 신전을 구성하고 있는 석회석, 대리석은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또한 산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가 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해에 의한 그리스 고대유물들의

침식 현상이 본격적인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70년대.

그리스 문화부에서는 에렉테이온의 여상주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등에서 심각한 훼손의 흔적을 발견했다.


1990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아테네 시가 본격적인 오염 규제정책을 발표하면서 피해는 줄어들고 있지만,
공해에 노출된 파르테논 신전으로서는 공해자체를 현격히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보호방책이 없다.
다행히 시끄럽고 공해로 가득차 있기로 유명한 아테네도 최근들어 상당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고.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495회.
그리스의 대표 건축물. 유네스코 심벌마크로 사용될 만큼 인류의 대표적 건축물.

그리스 건축물의 각 부분별 명칭


파르테논 신전의 동-서쪽에서 보이는 9대 4의 비율.
이 비율은 위에서 보거나, 남-북쪽으로 보았을 때에도 같은 비율을 보인다.


그리스 고전 건축의 최고봉


파르테논 신전이 그리스 고전 건축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찬미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건축 자재의 대부분이 최고급 백대리석이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건축의 기본이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대들보와 기단, 기둥 등 신전을 구성하는 소재들이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신전을 지탱하고 있는 기단부의 바닥 부분은 미묘한 굴곡이 있는 컵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닥의 가운데 부분은 모서리 쪽보다 17센티미터가 높다.


눈으로 식별하기는 어렵지만 엔타블레이처(기둥 위의 대들보 부분)도

중앙 쪽이 6센티미터 더 높아서 완만한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직경은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정면 중앙부 하단의 직경이 1.9미터인 것에 비해 테두리 쪽에 있는 기둥의 직경은 1.94미터이다.
이처럼 신전 전체는 미묘한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처럼 곡선을 주조로 한 건축은

오늘날처럼 건축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상당히 구현하기 힘든 기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은 왜 신전을 곡선으로 만들었을까?

첫째는 시각 효과를 들 수 있다. 신전 곳곳을 곡선으로 만듦으로써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시 건축물은 예술품이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건축가는 예술가이자 조각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건축과 동시에 조각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신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작품이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생각으로 최고의 자재와 최고의 인재를 동원해 신전을 건설했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


외벽 상부 프리즈에는 아테나에게 바치는 파나테나이아의 대제(大祭)를 부조한 장식이 있으며,
인물 360여 명, 말 219필이 부조되어 있다.

신전 동쪽 메토프와 박공벽의 모습.


박공벽에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말이 새겨져 있고(위), 메토프에는 희미하지만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아레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신전 내부 프리즈 : 판아테나이아 제전 행렬


신전 내부의 프리즈는 세로 1m, 가로 총길이 160m에 이르는며,
하나의 연속된 띠 속에 아테네에서 열린 판아테나이아 제전의 행렬이 묘사되어 있다.
그 내용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내에 묘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 고전기(B.C. 4세기~B.C. 5세기)의 최고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파르테논 신전은

B.C. 480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페르시아 군의 침공으로 한 차례 중단되었다.


B.C. 480년 가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마라톤 전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아테네를 점령한 페르시아 군은 당시 건설 중이던 파르테논 신전을 파괴해버렸다.
이때 파괴된 신전을 구파르테논 신전이라고 부른다.


그후 그리스 군은 살라미스 해전(B.C. 480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B.C. 479년)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아테네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B.C. 447년, 신전 건설이 재개되어 당시 그리스의 저명한 건축가들이었던

페이디아스와 익티노스, 칼리크라테스 등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페이디아스는 신전 내 아테나 상과 신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부조들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파르테논 신전은 B.C. 447년부터 B.C. 432년까지 약 15년간의 재공사 끝에 완성될 수 있었다.


그후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동하고,

기독교가 보급되면서 성 마리아 교회로 전용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아테네를 지배한 15세기에는 이슬람 교도들에 의해 모스크로 개조되기도 했다.

아테나 여신의 탄생을 표현한 조각 중 디오니소스의 조각


1687년에는 오스만 투르크 군과 베네치아 군과의 전투로 신전의 일부가 파괴되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파르테논 신전에는 건설 당시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의 참화를 견뎌온 파르테논 신전도 약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1801년 영국이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오스만 투르크를 통해 신전의 대부분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의 약탈을 진두지휘했던 엘긴 경은 후에 같은 나라의 시인 바이런으로부터

'약탈자'라고 매도당했을 만큼 철저하게 신전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그리고 1981년에는 지진이 발생해 기둥 상부가 떨어져 나가는 피해를 입었으며,

최근에는 산성비로 인해 아름다운 대리석이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그리스 정부는 인류의 유산인 파르테논 신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수리와 복원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신전 동쪽 박공벽의 모습.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소장.


중앙에는 제우스가 왕좌에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 무장한 채로 아테나가 서 있다.
그리고 그 두 신 사이로 승리의 여신 니케가 조각되어 있었다고 한다.


신전 메토프의 묘사 : 그리스의 투쟁과 영광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을 장식한 메토프는 신전 4면에 총 9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서면에 각각 14개, 남북면에 각각 32개의 메토프가 배치되어 있었다.


동쪽 메토프 : 신과 거인들의 싸움
서쪽 메토프 : 아테네인과 아마조네스의 싸움
남쪽 메토프 : 인간과 켄타우로스의 싸움
북쪽 메토프 : 트로이 전쟁


신전 내부 프리즈의 내용.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조품.


아테나의 신상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 안치되어 있었던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신상은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들었다.
그 높이가 무려 12m 였다고 한다. 현재 신상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묘조품이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투구 : 중앙에는 스핑크스, 좌우에는 그리핀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손 : 승리의 여신 니케 상
왼손 : 창과 방패. 창 옆에는 뱀 1마리가 몸을 도사린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갑옷 : 상반신 갑옷 가운데에는 메두사의 얼굴이 달려 있다.

아테나 파르테노스 신상의 묘사본.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


이 작품은 페이디아스가 만든 원작에 비해 예술성은 떨어지지만,
파르테논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을 원작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 지붕에 있던 세 여신의 조각.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르테논신전 원주기둥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신전.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서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그리스 여행-아테네] 세계문화유산 1호, 프레테논 신전/Parthenon/Temple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건축 과정 조감도 입체 영상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4329&cid=40942&categoryId=33084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11209&cid=42664&categoryId=42664

https://blog.naver.com/mjahn21/60058890366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5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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