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인 함석헌 평전/[3장] 씨알의 혼 야인정신 2

012/12/04 08:00 김삼웅

 

함석헌의 글은 이어진다.

마케도니아 한 절반 야만의 자식인 알렉산더가 천하를 정복할 적에 당시 무화의 동산인 헬라를 말발굽 밑에 두루 짓밟았다. 감히 머리를 들 놈이 없었다. 오는 놈마다 말 앞에 무릎을 꿇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디오게네스란 유명한 어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 아이의 영웅심 자만심에, 으레 제가 나를 보러 오겠거니 했다. 기다려도 아니왔다. 약도 올랐고 호기심도 일어나고, 부하를 데리고 디오게네스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보니 늙은이 하나가 몸에는 누더기를 입고 머리는 언제 빗질을 했는지 메두사의 머리의 뱀처럼 흐트러졌는데, 바야흐로 나무통 옆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이 나무통은 그의 소유의 전부인데 낮에는 어디나 가고 싶은데로 그것을 굴려가지고 가고 밤에는 그 안에 들어가 자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누가 왔거나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젊은 영웅은 화가 났다.

“너 알렉산더를 모르나?”

제 이름만 들으면 나는 새도 떨어지고 울던 애기도 그치는줄만 아는 알렉산더는 맘속에 “저놈의 영감쟁이가 몰라 그러지 제가 정말 나인줄을 알면야 질겁을 해 벌떡 일어설테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한 소리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놀라지도, 코를 찌긋도 않고 끼웃해 알렉산더를 물끄럼 보고 하는 말이 “너 디오게네스를 모르나?” 그러고는 목구멍에 침이 타 마르고 있는 젊은 정복자를 보고 “비켜, 해 드는 데 그림자져” 했다.

산림학파(山林學派)가 있었다. 조선조 10대 연산군 이후의 계속된 사화와 당쟁으로, 이를 피하여 정계를 떠나 강호(江湖)에 파묻혀 독서와 문장으로 세월을 보내던 학자ㆍ문인들이다. 서경덕ㆍ이황ㆍ조식ㆍ이이 등이 대표적인 강호파이다. 이들 역시 순수한 들사람은 아니다. 함석헌이 이 시기에 살았다면 혹시 이 부류에 들었을까 싶지만, 아닐 것이다.

함석헌의 뜻은 단호하다.

뼈다귀가 빠질 대로 다 빠지고 살이 썩을 대로 다 썩은 우리나라 이씨네 500년에 있어서도 그래도 무슨 기백이 남은 것이 있다면 상투 밑에서 고린내는 났을망정 한 줌 되는 산림학자 있지 않았나? 정몽주를 때려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죽교에 피가 흐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계ㆍ이방원을 만고의 죄인으로 규정짓는 민중의 판단이지, 왕위에 또 왕이 있단 말이지 무언가? 야차(夜叉) 같은 수양으로도 미친 녀석 같은 김시습을 어떻게나 모셔보려 애를 쓴 것은 무엇인가? 칼보다 더 무서운 칼이 있고 곤룡포보다 더 아름다운 옷이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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