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오후 1시경 이후, 첫 번째 고문이 끝난 뒤 나는 대답하고 쓰고, 대답하고 쓰고 하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인가 얘기했지만 도무지 기억해 낼 수도 없고 앞뒤가 서로 뒤바뀌어 버렸지만,

고문자들은 끝없이 묻고 또 묻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저녁 8시경 백남은이 다시 옷을 벗기고 눈을 가리개로 씌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김영두, 정현규. 최상남은 민첩하게 움직였고, 나는 또다시 고문대 위에 칭칭 묶여져 버렸습니다.

고문, 이것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무서워지고 더욱 낯설어지는 것입니다.

고문자들은 점점 크게 보이고 그럴 듯해 보입니다.

당당하고 의젓하게 보이기도 하구요.

물론 무조건 고문하는 것이지요.

요구사항은 없었고 묻지도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얼마가 지났는지 어떻게 되는 건지 합리적 사고나 대응 같은 것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어느만큼 학대와 능욕을 가하고 나면 고문자들은 반드시 뭔가를 제기하는 것이 있더군요.

이번에는
1) 폭력혁명주의자임을 자백하고
2)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음을 자백하고
3) 각 민주화운동 부문에서 움직이는 핵심적 인물을 대라.

김근태와 민청련이 제일 과격하고 제일 먼저 움직여서 오늘 같은 사태를 가져왔다.

우선 학생운동과 노동현장에서 움직이는 하수인을 대라.

당시 나는 이것이 얼마나 넌센스 같은 요구인지, 왜 이런 것을 요구하는지,

다음에는 무엇으로 연결시키려 하는지에 대해 따지고 생각해 볼 겨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것이 추상적인 협박이고 요구였지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는 느껴지더군요.

여기서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고문대 위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이건 시인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얼마 동안은 사실 끈덕지게 버티었습니다.

허나 안 되더군요.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구체적인 것의 시인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고통에 못 이긴 굴복의 유혹이

머리를 쳐들더군요.

나는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학생운동의 배후가 이범영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실 나로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누군가를 꼬집어서 얘기하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당시 이범영씨는 이미 경찰의 수배를 받아서 피신 중이었기 때문에 거짓으로 얘기해도 별 피해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 두 번째 물고문도 대략 5시간 걸렸습니다.

끝난 것이 5일 새벽 1시경이었으니까요.

9월 4일, 두번에 걸친 물고문. 그것만으로도 본인의 인간적 주체성은 크게 동요되고 일관성 있는 인격은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에서 폭력적으로 강제되는 것에 무릎을 끓을 수 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느끼게 된 것이지요.

이 만화같은 현실에 머리를 숙여야 했지만 그러나 아직은 자신의 주체성, 그것을 다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두꺼운 모직겨울점퍼, 검정색과 붉은색의 체크무늬점퍼를 남영동 그곳을 나올 때까지 줄곧 입고 있었습니다.

발뒤꿈치와 팔꿈치의 상처는 이미 하루의 고문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후 이 상처는 더욱 깊어갔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상처는 전혀 문제가 될 수도 없는 것이었지요.

사실은 별로 아프다고 느끼지 못했었으니까요.

그런 정도까지의 아픔은 수없이 많았어도 별 신경 쓸 만한 일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밤을 새우면서 무언가를 많이 대답했습니다.

전기고문과 그 보조로서의 물고문 - 세번째 고문

델시 상표의 사무용 가방을 들고 건장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운동화를 꺼내 신고서 뭔가 삐딱하니 꼬나보더군요.

거리 어느 구석에 있을 깡패, 젼형적인 어깨타입의 풍모였습니다.

눈은 불안정하고 뻐기면서 걷는 인간 백정 같았습니다.

몸무게는 거의 90kg에 육박할 것 같고 키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전설'에 나오는, 뒤뜰에서 식칼을 가는 그 누구일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그래도 빛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눈동자에 어리는 장난기같은 그림자, 그것뿐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겠더군요.

그런 곳에는 반드시 있을 인간이지요.

말할 것도 없이 고문담당 기술자, 전담자인 것이지요.

"우리 형님은 훨씬 더 무서운데 지금 안 계셔서 다행인 줄 알아라.

그동안 장의사가 한가 했었는데 일감이 풍족하게 생겨서 살맛난다"고도 하고

"작업을 차근차근 해 나갈 터이니까 단단히 각오하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전기고문, 그것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8시 반부터 9월 6일 새벽 1시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전기고문'이라고 하니까 고문담당자는 이것은 전기고문이 아니라 '배터리고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뭐라해도 전기고문임이 틀림없지요.

5일 저녁 8시반경, 고문하기 전에 뭔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대더니 조용해졌습니다.

최상남은 본인에게 "잠을 전혀 못 자서 피곤할 것이다. 이 방의 불을 끌 수는 없고 대신 눈에 반창고를 붙여 줄 테니까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두라"고 하면서 양쪽 눈에 엑스(X)자로 모두 반창고를 붙였습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나는 콧등이 시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잠을 청해 볼 양으로 막 의자에 기대는 순간 고문자들이 떼거리로 몰려 들어오면서 소리를 버럭 질러댔습니다.

기습과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작전인 것처럼 인간 파괴의 수치심없는 작전인 것입니다.

전기고문 장치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했구요.

 

완전히 발가벗겨졌습니다.

팬티도 남김없이 날아가 버리고요.

이곳에서 무슨 수치심 그런 것을 여밀 계제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팬티조차 벗겨지고 보니까 더욱 당황케 되면서 이제 모두 빼앗겨 버리고 말았구나,

그래도 아직 남은 것이 있고 소극적 저항의 표시물인 것처럼 느껴졌던 팬티마저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칠성대 위에 또다시 꽁꽁 묶여진 다음에 고문자들은 발바닥과 발등에 붕대 같은 것을 여러 겹 감았습니다.

새끼발가락과 그 다음 발가락 사이에 전기 접촉면을 끼우고, 그것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 같았고,

이 붕대도 전기담요처럼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다음 발에, 사타구니에, 배에, 가슴에, 목에, 그리고 주전자로 머리에 물을 들어부었습니다.

 

그 때 물의 선뜩함은 귀기가 살갗에 달라붙는 바로 그것이었지요.

고문 기술자는 뭔가 쉴 새 없이 떠들고 겁주고 협박을 했습니다.

이제 전기가 통하면 회음부가 터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팬티를 벗겼다고 했습니다.

우선 물고문부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 강도는 물고문만 할 때보다 못했지만 공포나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소스라쳐 놀라게 되고 머리를 힘껏 움직이게 되지요.

 

어느 정도 물고문이 진행되어 몸에 땀이 나게 되면 그때부터 전기고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그러다가 점점 길고 강하게, 강력하게 전류의 세기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다시 약해지고, 가끔씩은 발등에 전기를 순간적으로 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희미한 자국으로 남아 있지만, 그래서 발등의 살가죽이 꺼멓게 타 버리게 되었습니다.

김수현과 백남은은 지켜보고 고문기술자가 직접 전기고문을 하고 물고문의 집행을 김영두에게 지시했습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한마디로 불고문이었습니다.

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히고 극도의 고통과 공포를 수반하는 고문입니다.

물고문과 불고문의 조화라고나 할까요.

그 상승효과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고문이 밑바닥에 닿지 않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가는 것이라면

전기고문, 즉 불고문은 단근질해서 뜨거운 불 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라 바스러뜨리고 돌돌 말려서 불에 튀기는 그런 것입니다.

전기고문, 그것은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 몰려오는 공포라니,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거렸습니다.

온 몸이 저리고 칙칙해져서 끈적끈적한 외마디를 계속 질러대게 되더군요.

전기가 발을 통해서 머리끝까지 쑤셔댈 때마다 어두운 비명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몸의 각 부분은 해체되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오직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비명뿐이었습니다.

 

몸 전체에 시퍼렇게 핏줄이 솟고, '헉헉' '꺼이꺼이' 목은 쉬어 가는데

이것은 멱이 따진 돼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를 지른다고 강하게 전류를 통하고 소리가,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혀를 이빨로 꽉 물었다고

혀를 빼라고 강하고도 긴 전류를 흘려보내고, 끙끙대면서 참는다고 또 그러고.....

이들의 목표는 총체적인 혼란, 착란 상태로 돌입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온통 휘감고 그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내 눈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환상이

공포와 광란의 소용돌이로 닥쳐왔습니다.

이것은 슬픔이라든지 외로움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파괴, 그 자체였습니다.

담요는 땀에 흥건하게 젖는데 물을 쏟아 부었던 몸의 각 부분은 금방 말라버리고,

특히 머리털은 곧 말라서 물고문을 또 수시로 해야 됐습니다.

이 고문기술자가 내 가슴에 올라타고 쿵쿵 굴리는데도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운동화 발바닥으로 얼굴을 슥슥 문대면서 경멸적으로 걷어차도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도 않고

심리적 거부감이 일어날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완전히 지쳐 늘어지기 시작할 때, 이날의 주제가 제기되고 추궁됐습니다.

이을호씨의 시민민주혁명, 민족민주혁명, 민중민주혁명의 인정, 그것이었습니다.

고문대 위에서 거부란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나는 처음에는 저항을 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고문을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이제 정말로 위험해지는 것 같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는 전기고문의 전류에 흔들리더니 여지없이 무너져 갔습니다.

또한 이을호씨의 병력이 떠오르고, 본인이 계속 부인할 때 증거확보를 하기 위해

체포 범위를 비이성적으로 확대하는 이 사람들의 모습도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을호씨의 자백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반증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당시에는 은밀히 자신만만한 확신이 있어 결국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고문에 밀려서 씌여진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구요.

인간으로서 저항할 수 없는 잔인한 강제에 굴복해 가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합리화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아니 합리화라기보다 생명을 방어하기 위해 남은 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고문대 위에 묶여 고문을 받을 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고문자들의 요구 명령은 귀에 왕스피커를 들이대고 틀어대는 것처럼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 아주 깊이 새겨집니다.

영원히 낫지 않는 상처를 입히면서 새겨지는 것입니다.

소름끼치는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면서 각인되는 이 고문자들의 요구에는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가 충전된 채 기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고 이들의 요구 지시를 거부하고자 할 때는 그 충전된 에너지의 저항과 동요에 부딪치게 되며,

고문시의 공포와 그 고통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무리하고 무모한 요구, 황당무계한 강제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 등 모든 수단을 강행케 되는 것입니다.

아! 그 라디오, 박살내 버릴 그 라디오를 펼쳐 내고, 그리고 무슨 노래도 있었습니다.

고문기술자가 라디오를 가져오라고 지시했으며 직접 다이얼을 맞추고 조정했습니다.

이들의 고문은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당히 치밀하게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아마 끊임없이 경험을 통해서 배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문기술을 외국에서 도입했을 것입니다.

이날 본인이 고문대에서 미워하게 된 그 라디오, 그것도 일종의 심리적 고문이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