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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 구충서, 그리고 김진의 '5.16 예찬' /
    "박정희가 키운" <중앙> 김진, 무식하면 입 다물라 /

    김수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http://blog.joins.com/dima0306/12215436


    내 친구 구충서

    1974년 3월 하순 어느 날 저녁 나는 고교시절부터 깊은 친교를 나눠 오던 벗 구충서와 무교동의 한 막걸리 집에 마주앉았다. 당시 우리는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햇병아리 신입생이었다. 고교시절부터 10월유신에 대해 강한 저항의식을 표출해 왔던 충서는 그날 유신철폐 민주화투쟁에 가담하게 되었다며 내게 동참을 권유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궁색한 논리를 피력하면서. "너는 투쟁해라. 나는 공부하마." 나의 이 말에 충서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약 보름 후 충서는 소위 민청학련 사건 최연소 가담자로 체포되었고 열아홉 어린 나이에 12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했다. 그해 겨울 육영수 여사 서거에 따른 특사조치로 충서는 대부분의 다른 가담자들과 함께 출옥했지만 그의 정신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고초도 감내하기 힘들었지만 자신으로 인해 파탄 난 집안 모습에 그는 크게 충격 받았다. 광주에서 견실한 자영업을 하던 부모의 사업은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체에 근무하던 형은 직장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제 정신을 갖고 살 수 있었겠는가.

    충서의 정신장애는 갈수록 악화해서 다른 선배들처럼 민주화투쟁에 다시 뛰어들 수도 없었다. 그런 벗을 두고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군부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를 쟁취해 낸 처절한 투쟁이 국내에서 계속되는 동안 나는 외국에서 편안한 유학생활을 영위했다. 1991년 귀국한 나는 충서를 찾아 볼 겨를 없이 쫓기듯 시간강사 생활을 꾸려갔다.

    1995년 3월 이화여대에 정식으로 자리를 잡고 나서 나는 비로소 충서를 찾을 생각을 했다. 두 명의 다른 벗들과 힘을 합쳐 마침내 충서 형님을 찾아냈고 그 형님을 통해 충서가 전라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정신병자를 격리수용해 놓은 기도원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님은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동생을 그런 곳에 방치해 두었냐고 따져 물을 상황이 아님이 여실했다.

    산속 기도원에서 만난 친구의 모습은 처참했다. 열아홉 훤칠했던 체격과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했던 눈빛, 당당한 기상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이는 불과 마흔인데 머리는 하얗게 새었고 어깨는 구부정한 채 초점 없는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을 지껄여대는 친구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나는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빚을 친구에게 졌다는 것을 그 순간 절감했다.

    이때 이후 충서는 옛 벗들의 도움에 의지해서 살아오고 있다. 그는 여전히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외부와 사실상 단절된 삶을 지속하고 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박정희

    나는 왜 내 친구 구충서의 삶을 공개할 결심을 했는가. 5.16 50주년을 맞아 보수언론들이 경쟁적으로 게재한 특집기사를 나는 읽었다. 보수적 지식층과 논객들이 5.16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찬양하고, 급기야 5.16과 박정희가 한국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는 궤변을 읽으며 나는 내 친구의 삶을 떠올렸고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견딜 수 없어 이 글을 쓸 마음을 먹었다. 37년 전 '투쟁'의 가시밭길에 동참하라는 친구의 제의를 거절하고 '공부'라는 안락한 길을 택했던 내가 용기 있게 '투쟁'의 길에 나섰던 내 친구를, 그리고 내 친구와 함께 투쟁의 길에 나섰던 무수한 '구충서'들을 모욕하고 매도하는 글들에 도저히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많은 구역질나는 글들 중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글(5월 16일자 칼럼 '나를 키운 박정희'-편집자주)을 선택해서 비판의 글을 쓴다. 선택의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한국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대표적 논객이 쓴 글의 논리 전개가 지극히 조야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사에 대한 그릇된 지식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선택했을 뿐이다.

    그에 의하면 그가 취재한 박정희의 '부하'들은 오직 박정희의 '청렴과 애국심'만 강조하더란다. 그에게 김태촌과 같은 조직폭력배 보스의 '부하'들을 취재해 보라 묻고 싶다. 보스의 지시로 자행한 무수한 폭력과 살인, 그리고 갈취행각을 과연 그들이 증언하겠는가. 그의 글을 읽으면 '부하'들의 증언이 어느 결에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증언'으로 바뀐다. 김진 논설위원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구충서'들에게 박정희에 관해 물어 본 적 있나.

    그가 서술하는 '공동체'는 오늘날 민주적 공화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공동체라기보다 오히려 파시스트들이 주창했던 유기체적 전체주의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그가 묘사하는 공동체적 인간 박정희는 히틀러, 무솔리니, 김일성 같은 전체주의자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내가 발견한 김일성은 공동체적 인간이었다... 인류 문명의 진보와 공동체 발전에 개인의 궤적을 합일시키는 공동체적 인간이었다...그런 인간의 대표적인 사람이 김일성이었다. 그런 김일성이 나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다."

    김 논설위원의 글에서 박정희를 김일성으로 바꾼 표현이다. 노동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김일성 주체사상 찬양 글귀와 무엇이 다른가. 김일성 대신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바꾸어 넣어 읽어 보라. 1930년대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당시 이들이 주창했던 소위 Lebensraum(레벤슈라움,나치의 '생존권역' 개념-편집자주) 이념과 무엇이 다른가.

    그에 의하면 "1960~70년대 한국의 공동체 발전은 안보와 가난의 극복, 그리고 경제발전이었(지) 민주주의는 그 시대의 과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묻는다. 이승만 독재 타도 투쟁에 나섰다 고귀한 목숨을 희생시키고 4.19 민주묘역에 잠들어 있는 민주열사들은 시대적 요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이었나.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무수한 '구충서'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분연히 맞서 싸웠던 70년대 언론인들 역시 정신 나간 자들이었나.

    그는 나아가 "박정희 개발독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시초였다"고 강변한다. 그의 논리는 한국 근대화의 기초를 닦아 주었던 것이 일제 식민통치였다는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을 열어 준 일본에 크게 감사해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일제는 '위대한 공동체적(혹은 전체주의적) 인간 박정희(혹은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를 교육시켜 주지 않았나.

    그는 "민주주의라는 건 경제개발로 중산층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하단다. 오늘날 민주화의 물결이 히말라야 산록을 거슬러 올라 네팔과 부탄을 민주화시키고 또 중동의 빈국 튀니지,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을 휩쓸고 있다는 것을 대 언론인 김진이 정말 모르고서 하는 말인가. 민주화 투쟁에 나선 국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는 리비아의 카다피가 40여 년 전 쿠데타로 권력을 쥔 다음 소위 '녹색혁명'을 확산시켰을 때 서방의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그를 '근대화 엘리트'로 칭송한 바 있었다. 그러나 카다피는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잔혹한 독재자일 뿐이다. 그가 아무리 텐트에 기거하면서 '청렴'을 가장해 왔고 또 진정 '인민을 위한' 통치를 해 왔다고 큰 소리 치더라도 말이다.

    박정희나 카다피처럼 평생 독재자 노릇을 하려 했던 자들에게 '청렴'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가소로운 얘기다. 죽을 때까지 나라 전체가 자기 소유일 것으로 믿는 자들이 왜 7년 임기를 채우면 권좌를 넘겨줘야 할 자들처럼 째째하게 푼돈을 모으느라 혈안이 되겠는가.

    "쿠데타-혁명도 제대로 구별 못하는 김진이 언론인?

    박정희와 유신독재체제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호의호식"해 온 '박정의의 부하들'의 위선에 찬 증언에 기대어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인사를 능멸하는 김 논설위원에게 분노를 넘어 차라리 연민을 느낀다. 그가 영합하려는 대상이 역사도 아니고 진실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눈으로 볼 때 권력 획득을 목전에 둔 것처럼 보이는 박정희의 딸이야말로 그가 진정 영합하고 또 비호하고 싶은 대상이리라.

    "박정희 소장을 비껴간 헌병대 총탄에 감사한다"는 김 논설위원의 언급에 대응해서 "대통령 박정희를 비껴가지 않은 그의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감사한다"는 말을 나는 결코 하고 싶지 않다. 내 눈에는 김재규 역시 독재자 박정희의 부하일 뿐이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해서 쿠데타와 혁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김진 논설위원에게 정치학자로서 이것 하나만은 정확하게 가르쳐주고자 한다. 1789년 프랑스 인민들이 궐기해서 부르봉 왕조를 붕괴시킨 것은 '혁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무력을 앞세워 총재 정부를 붕괴시킨 것은 '쿠데타'였다. 마찬가지로 1960년 4월 한국 인민들이 궐기해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혁명'이었고, 그 결과 수립된 제2공화국을 박정희 소장을 우두머리로 한 군인들이 무력으로 전복시킨 것은 '쿠데타'였다.

    무식하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본전은 한다. 알면서도 글을 썼다면 언론인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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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해진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2015년도 서울 대학교 신입생 입학식
    축사 전문입니다

    기성세대인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큰 것 같습니다
    .......................................

    서울대 입학식 축사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저는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난도입니다.
    평교수인 제가 이렇게 귀한 자리에서 축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기회를 주신 총장님과 선배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1963년 3월 2일에 태어났습니다.
    3월 2일요. 그렇습니다.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어릴 때는 내 생일이 싫었습니다.
    학년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라 제대로 생일잔치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이 제일 좋습니다.
    1년 365일 중에 아무 날이나 생일로 고를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오늘 3월 2일을 고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일 아침에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일제히 새 학년을 시작한다는데, 선생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생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사주팔자 같은 것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생일만큼은 선생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직업이 천직이라고 여길 수 있으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가르치게 될 선생으로서 축하와 당부의 말씀을 함께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53번의 생일 중에서 제가 제일 행복했던 날은 1982년의 오늘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합격해 입학식을 치르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는 저 아래 대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했는데 날씨가 아주 추웠습니다.
    바람은 눈물이 나도록 차가웠지만,
    가슴은 터질 것처럼 뜨거웠습니다.
    나보다 더 흥분하신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평생 처음 효도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잠시 후 입학식이 끝나거든 뒤에 앉아 계신 어머니, 아버지에게 꼭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앞으로 기회가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꼭 하십시오.

    사실 저희 동기들의 대학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잠시 희망을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군홧발로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참담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대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치 정도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순전한 무사유의 범죄였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엄혹하고 처절한 시기를 저희는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대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졸업을 하면 어디든 일자리를 골라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영역이든 조금만 진지하게 계속하면 나름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가 더 총명하거나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행운이었습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가 되지 않던 대한민국이 지금 3만 달러에 육박하기까지,
    단군 이래 가장 높은 성장을 누리는 30년 동안 우리는 청춘을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젊은 세대가 힘들다고 합니다. 좋은 데 취직하는 것이 어렵고,
    제때 결혼하는 것이 어렵고,
    제대로 된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 하는 이 세대가 말이지요.

    물론 이것은 시대적 변화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성장의 시대에서 침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경제와 인구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그 많았던 기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것은 단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올라간다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경기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지만 전 국민이 금반지를 꺼내모으며 재기를 꿈꿨던 때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기침체가 영구히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이 나라가 난국을 타개할 변화의 역량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절망이 정녕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얼마 전 인기 있었던 웹툰드라마 <미생>에 ‘사업놀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그저 열심히 하는 흉내만 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드라마에서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나라의 분열을 걱정한다면서 실은 자기 재선을 위해 국민을 이념으로 지역으로 갈라놓고 갈등을 이용하는‘정파놀이’를,
    관료들은 공익을 도모한다면서 실은 자기 예산과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나라의 시스템을 비효율로 몰아넣는‘규제놀이’를,
    대기업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다면서 단가 후려치기, 사람·기술 빼앗기 등 각종 불공정한 관행으로 시장을 황폐화시키는 ‘갑질놀이’를,
    일부 고용주들은 취업난을 악용해 ‘열정페이’ 다 뭐다 해서 청년 구직자의 노동을 약탈하는 ‘착취놀이’를,
    저를 비롯한 교수들은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수수방관하며 자기 연구 실적만 채우는‘논문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이 교착상태를 풀어낼 리더십은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좋은 날에 답답한 얘기를 꺼내 미안합니다.
    저는 오늘의 축사를 준비하면서 새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어떤 아름다운 축원을 해줘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긴 고민 끝에 저는 듣기 좋은 덕담보다는 여러분이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엄혹한 도전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분발을 당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 소중한 기회를 막연한 인사말로 채우기에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따끔한 각성을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선생이 할 일이기도 하니까요.

    지금 여러분이 헤쳐나가야 할 두 가지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나라 안의 도전과 나라 밖의도전입니다.
    먼저 나라 안의 사정을 살펴보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세대이기주의’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요.

    하지만 지금의 기성세대가 나중에 오늘을 뒤돌아볼 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현재의 경제·고용·복지 등 담론의 줄기를 보면 나중에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가 아니라 우리 자식이 겪게 해서 참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높은 자의 책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말은 어느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면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
    즉 나이 든 자의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자들은 나이든 자들과 경쟁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기성세대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과 정보와 인맥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단지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희망의 불씨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투자하고, 양보하고, 그들의 미숙함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내일은 없습니다.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나라 밖의 도전은 더욱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여름 저는 연구를 위해 일본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도쿄에 들를 때마다 혐한 시위대를 만났습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잡지광고며 기사들의 상당 부분이 한국을 폄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다시 유치에 성공한 올림픽 준비에 들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또 지난 겨울에는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놀랍도록 변하는 곳이지만, 어느새 우리보다 훌쩍 앞선 나라가 돼 있었습니다.
    흔히 중국을 짝퉁의 나라 정도로 낮춰 보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국은 압도적 1위의 외환보유국이고, 이미 우주정거장, 항공모함, 비행기, 고속철도를 자체 기술로 만들어내는 나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중국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도성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 또래 젊은 세대의 열정입니다.
    흔히‘쥬링허우’라고 부르는 중국의 90년대생들은 제2의 마윈, 제2의 레이쥔을 꿈꾸며 밤새워 도전의 열기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개미굴’이라는 10평 남짓한 아파트에 십여 명의 학생이 함께 기거하면서 해만 뜨면 도서관으로 뛰어나가 하루종일 공부하다가 돌아옵니다.
    우리는 중국 인구의 1/27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국에 뒤지지 않으려면 27배 정도 열심히 노력해야 할 텐데,
    지금은 중국이 27배 더 노력하는 형국입니다.

    우리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선 증오의 감정이 커지고 있고,
    우리와 바다를 맞대고 있는 나라가
    한순간에 세계 최강국으로 자라났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여러분에게 희망을 겁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우리 젊은 세대가 교착상태에 빠진 나라에 새로운 모멘텀을 부여할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주십시오.
    제가 대학시절을 돌이켜 생각할 때 후회되는 일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역시 치열하게 공부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펙이 아니라 지성의 성장을 위해,
    좋은 직업이 아니라 조국의 미래를 위해,
    혼신을 다해 공부하십시요.

    그러기 위해서 다시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이타정신을,
    여러분은 이 교정에서 배워나가기 바랍니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선함’을 가슴에 품고 개인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 때,
    인류와 나라와 학교와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성장이 서로 접점을 찾아 만개할 수 있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8848미터를 자랑하는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여기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가장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제일 높겠습니까?

    답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 산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만약 바다 한가운데 혼자 있었다면 높아봐야 한라산이나 후지산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고원의 거봉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습니다.
    그 준령에서 한 뼘만 더 높으면 바로 세계 최고의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를, 우리 학교를 히말라야 산맥으로 함께 키워나갑시다.
    바다 위에서 혼자 높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야 할 사회적 약자들과 우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선하고 책임 있는 인재로 성장해야 합니다.

    당신이 여기 앉아 있기 위해 탈락시킨 누군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채무자입니다.
    선함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우리 공동체를 히말라야 산맥처럼 만들고 나서,
    자신이 한 뼘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학생들이여,
    선해지십시오, 성장하십시오.
    당신이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3월 2일
    김 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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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28만 건과 씨름... 원세훈 유죄에 감개무량"
    [인터뷰] 권혜진 <뉴스타파>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장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일 항소심에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원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은 2012년 대선 당시 온라인에 야당 후보를 비판하고 정부·여당을 찬양하는 글을 올리는 등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뉴스타파>와 데이터저널리즘의 공이 크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3년 3월 국정원 직원이 여론조작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실제 여론 조작 활동을 한 트위터 계정을 발견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이 사실임을 밝혀냈다. 그 필두에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장이 있었다. 특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권혜진 소장은 "굉장히 의미 있고 분수령을 이루는 보도였다"고 자평했다.

    권 소장은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2개월간 트위터 계정 간 관계와 각 계정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최기훈 기자등 여러 취재기자와 연구소 팀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밝히기 위해 28만 건이 넘는 데이터와 씨름했다. 권 소장은 "분석한 데이터의 90%는 버리고 10%만 쓴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고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 보도하는 것이 데이터저널리즘이다.

    이 밖에도 <뉴스타파>는 '조세피난처 한국인 명단 공개', '원전 비리 고발' 등 데이터저널리즘을 활용해 진실을 알렸다. 권 소장은 "우리는 가급적 데이터를 공유·개방하려고 한다"라면서 "다른 언론사가 우리 데이터를 활용해 후속보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권 소장은 "각 매체에도 (데이터저널리즘을 전문으로 하는) 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면서 "<뉴스타파>가 전체 언론사의 데이터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폭로는 데이터저널리즘에 굉장한 의미"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어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경우 취재 현장이 데이터였다. 가려진 데이터 더미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없었더라면 놓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트위터 계정 간 관계와 소설미디어 활동 등을 분석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도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현장을 취재하고, 가려진 데이터 더미에서 진실을 발견해내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데이터저널리즘 역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고 분수령을 이루는 보도가 아니었나 자평한다. (판결소식을 듣고) 감개무량했다."

    - 의혹을 사실로 밝혀낸 그 과정이 궁금하다.
    "두 달 정도 매달렸다. 트위터 상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개입) 활동을 했다는 의혹은 있는데 구체적인 물증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트위터 계정이 삭제된 상태였다. 데이터를 수집해 네트워크 분석을 해보면 뭔가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트위터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곳을 알아봤는데 국내에선 얻기 힘들었다."

    -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데이터 제공을 꺼려했나.
    "그런 면이 있다. (국내 업체들이) 우리에게 트위터 데이터를 제공하기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구하기로 했다. 삭제된 계정의 데이터가 남아있는 사이트에서 크롤링(분산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여 검색 대상의 색인으로 포함하는 기술) 했다. 크롤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외부 개발자도 섭외했다. 그렇게 28만 건 이상의 트위터 데이터를 수집했다."

    - 결과물을 받아들였을 때 '드디어 잡아냈다'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
    "네 가지 기준을 갖고 (선거 개입 활동) 의혹이 있는 계정인지 판단했다. 첫째 국정원 여직원 사건 당시에 일제히 활동 정지 또는 삭제된 계정, 둘째 대선 후보가 확정되던 시점에 우후죽순으로 생긴 계정, 셋째 비슷한 소셜 미디어 활동 패턴을 보이는 계정, 넷째 정부를 찬양하거나 야당을 비판하는 내용을 게시한 계정. 이 기준들로 수집한 계정과 그 계정이 올린 맨션들, 각 계정들이 리트윗한 내역들을 데이터 마이닝(방대한 양의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추출)했다.

    분석 결과 최소 10개 이상의 계정 그룹이 조직적으로 활동한 정황이 보여 정부에 이에 대해 해명해 달라고 보도했다. 데이터 연구를 하는 학자라면 (의혹이)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없어 고민했겠지만 언론은 의혹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데이터를 공개하면 (언론사들이) 그것을 더 참고해서 보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한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한 분석이었다."

    "국내 언론 데이터 구축 없어... 기자들이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 데이터저널리즘 작업은 기본 지식이 없으면 힘들지 않나.
    "그래서 한 언론사에 두 명 정도는 그 일(데이터 저널리즘)만 전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전문 인력을 꾸릴 때는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일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어느 기자든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언론사 내부에 데이터베이스를 갖춰 놓을 필요가 있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검증 관련해서 그 중요성을 느꼈다. 2002년 '차떼기 사건' 당시 이 후보자가 5천만 원을 받았는데, 비슷한 시기에 타워 팰리스를 구입했다. 데이터팀 최윤원 기자는 '자금을 구입에 쓴 것은 아닐까'를 검증하기 위해 과거 재산 공개 데이터를 분석했다.

    1993년 이후의 고위 공직자들 재산은 공개돼 있지만, 상당수가 이미지 파일이어서 검색이 어렵다. 미리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해놨기 때문에 빠른 데이터 분석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제는 데이터를 쌓는 작업을 미리 해놓는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돼 있는 언론사가 국내에 별로 없다. 해외처럼 공동으로 데이터저널리즘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개별 기자들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데이터 분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어떤 사람이 데이터저널리즘에 적합한가.
    "오랫동안 언론사에서 지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취재를 잘 하는 사람이 데이터저널리즘도 잘 한다. 현장 취재는 잘 못하고 데이터저널리즘만 잘 하는 사람을 전담 배치하는 건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

    - 가장 중요한 건 기자의 감인가.
    "꼼꼼한 건 필요하다. 데이터를 다룰 때 정확하고 꼼꼼해야 한다. 우리팀 김강민 기자가 트위터 분석을 맡아 고생했다. 그만 확인해도 된다고 해도 그는 혹시 실수가 있을까 싶어 끊임없이 확인하고 점검했다. 데이터 분석 시간을 100이라고 하면 50은 이런 오류를 검증하는 시간이다."

    - 그렇다면 데이터저널리즘 전문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데이터저널리즘을 하기 위해선 데이터가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에선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힘들다. 해외에 있는 데이터셋(특정 주제별 데이터들의 집합)을 가져와 시각화하고 분석해야 한다. 데이터를 구하기 어려울 때는 여러 곳에서 취재하고 그 정보를 입력해 만든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사업을 수주한 업체들의 자료 전부를 복사하고 입력한 적이 있다. 그 중 정말 일부가 보도된다. (내게 필요한) 데이터의 검색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인비져블 소스(드러나지 않은 데이터), 정보공개 청구 등을 적극 이용하고 취재원을 파악해서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 작업의 반이다."

    "탐사보도가 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할 것"

    -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 한국인 명단 공개'보도로 많이 알려졌는데.
    "'조세피난처 한국인 명단 공개'야말로 진정한 데이터 프로젝트였다. 전체 데이터만 200기가바이트가 넘었고 파일 수가 200만 개에 달했다. 전재국(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씨 이름이 발견된 곳은 여권을 복사한 사진 파일이었다. 사진 파일을 검색하려면 문자인식이 돼야 한다. 문자 인식과 데이터베이스 만드는 작업을 전 세계 탐사보도 매체의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이 만들었다.

    20년 넘게 (데이터저널리즘을) 연구한 입장에서 이 같은 멋진 데이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 비영리탐사보도 쪽에 있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런 데이터를 만져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를 밝혀내지 못해 보도하지 못한 적도 있나.
    "많다. 그래서 언론사에 데이터저널리즘 전문 인력을 갖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전체의 90%는 버리고 10%만 쓴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처음 가설과 (분석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다. 그 정도의 각오는 필요하다."

    - 사전적 정의 외에 개인적으로 데이터저널리즘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데이터에 중점을 두느냐, 저널리즘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 <가디언>의 데이터 에디터를 하는 사이먼 로저스는 데이터저널리즘을 저널리즘이라고 이야기한다.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저널리스트로 데이터라는 현장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분석을 통해 보도한다. 즉 중점을 저널리즘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 특정 기업이나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언론이 데이터저널리즘을 활용할 때 사실 왜곡의 우려가 있지 않나.
    "로 데이터(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팩트 자체를 틀리게 쓰지 않는 이상 왜곡할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또한 데이터셋이 더 커지면 사실이 왜곡될 문제 소지가 적다."

    - <동아일보>에서 <뉴스타파>로 옮겼는데 지면 위주 뉴스에 한계를 느꼈나.
    "그런 건 아니다. 뉴스 산업에서 미디어 비즈니스와 저널리즘이 양립할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 직장을 옮기기로 결정한 때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언론사에 온 이유가 미디어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저널리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고민했다. 고민의 답을 내리기 어려웠지만 미디어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또 <프로퍼블리카>를 보고 결심했다. <프로퍼블리카>는 해외 주요 언론사에 있던 시니어 기자들이 모여서 탐사보도매체를 만든 형태다. 특종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프로퍼블리카>라는 존재가 언론 생태계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비영리탐사보도매체가 저널리즘을 담당하는 한 축이라고 판단했다. 그 토대를 닦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옮기기로 했다."

    - 앞으로의 데이터저널리즘과 <뉴스타파>의 역할은.
    "<뉴스타파>가 데이터저널리즘을 앞서가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훨씬 더 데이터저널리즘을 잘 할 수 있는 곳들이 생겨날 것이고, 각 매체에서도 그런 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오리지널 데이터(원본 데이터)를 생산하고 싶다. <뉴스타파>의 이런 노력이 전체 언론 생태계의 데이터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1269&CMPT_CD=SEARCH
    www.ohmynews.com  
    진행 = 이주연 기자정리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 21기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9일 항소심에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원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은 2012년 대선 당시 온라인에 야당 후보를 비판하고 정부·여당을 찬양하는 글을 올리는 등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뉴스타파>와 데이터저널리즘의 공이 크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3년 3월 국정원 직원이 여론조작에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있다고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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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미안해"..김상환 부장판사 '친형' 연락피한 이유 알고보니
    친형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오해 피하려 사건배당 후 접촉 자제

    [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3년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한 김상환(49·사법연수원 20기·사진) 부장판사의 친형이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부장판사의 친형은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으로 지난해 초까지 현직에서 활동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지난해 9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배당받은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자제해왔고, 친형의 전화 연락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김 부장판사가 지난 9일 판결 선고에 앞서 "한 사람의 죄와 벌을 다룬 형사재판은 끝없은 숙고, 고민을 요구한다. 재판부는 알 수 없는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며 소회를 밝힌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또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바와 증거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성을 다해 탐구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다했다"면서 "지금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재판부가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성의껏 고민해 내린 결론을 지금부터 담담하게 얘기하려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선고를 내리기 몇 주 전 김 부장판사는 이런 사정을 아는 법조계 지인에게 고뇌를 털어놓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결문에는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그에 따른 긴 충고도 적혔다.
    그는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재판 중에 했던 말을 언급하며 "피고인이 한 말에서 받은 강한 울림을 우리 재판부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군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관이지만 국정원은 지금 현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문제된 특정 사이버 활동만이 관련 법률에 반함을 명백하게 지적함으로써 국정원의 헌신과 노력이 본연의 업무수행을 위해서만 집중되도록 해 장차 국민의 더욱 든든한 신뢰를 얻길 바라는 것에서 비롯됐음을 밝힌다"고 판결의 취지를 강조했다.
    국정원이 자기 성찰을 위해 2007년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보고서를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보고서에는 '정치에 대한 국가정보기관의 개입은 국가권력과 정책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과정을 왜곡함으로써 민주주의 근본을 무력화하는 것', '중립을 지켜야 할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은 자신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최고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위'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김 부장판사는 또 논어 위정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다"며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攻乎異端 斯害也已·공호이단 사해야이)"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출처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534881
    www.news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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