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briakova Zinaida For the toilet. Self-Portrait 화장대 앞에서 자화상. 1909. 
oil on canvas. 65 x 75 cm. The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화장대 앞에서 포즈을 취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1900년대 그려진 초상화라 믿겨지지 않을 만큼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당시 이 그림이 발표되었을 때 러시아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줄
 커다란 선물같은 작품이라고 칭송받았다 한다. 
사실적이면서도 마치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주는 매력 넘치는 초상화다.

 

Self-portrait, 1907.

그녀는 대체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비록 한때의 우울이 있었지만 그녀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1900년대 러시아에서 여자로 태어나서 그녀는 어느 남자들보다도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녀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가 타고났던 낙천적이고 선량하며 
동시에 여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용감했던 성격 탓도 있었다. 
그녀는 이상적인 여성상으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Girl with a candle. Self portrait, 소녀와 촛불, 자화상. 1911. Oil on canvas. 72 x 58 cm.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촛불은 곧바로 보이지 않지만 빛을 통해 인물에게 집중을 시켜 놓았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가 태어난 집안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가정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건축가였으며 건축가들의 사회의장인 동시에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일원이었다. 
그녀의 삼촌 알렉산드레 베노이스는 꽤 유명한 화가였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 에브게니 니콜라이에비치 란세레이는 유명한 조각가였다. 
또한 알렉산드레 베노이스의 자매였던 그녀의 어머니도 그림을 그리는 소질이 있었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는 그녀의 집안에 가득한 예술적 풍취에 의해서 
화가가 될 소질을 이미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의 아버지와 어머니 뿐만 아니라 그녀의 형제중의 하나인 
니콜라이 에브게니에비치 란세레이 또한 재능 있는 건축가였으며 
그녀의 형제인 란세레이가 지은 미술관은 러시아에서 중요한 예술적 문화재가 되었다. 
러시아인이자 영국인이었던 배우이자 작가 피터 유스티노프 또한 그녀와 인척 관계에 있었다. 
그녀의 예술적 소질은 이미 타고났던 것이다. 
그녀는 어린시절 러시아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1902년과 1903년에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배웠다. 
1905년에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같은 해에 러시아로 돌아온 세레브랴코바는 철도 기술자인 그녀의 사촌 보리스 세레브랴코바와 결혼했다. 
그녀의 예술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사랑의 시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녀의 첫 시도는 대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젊고 여성이었지만 표현에 있어서 용감했고 그녀가 표현하려는 주제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았다.

 

Self portrait, 1917.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의 아버지와 어머니 뿐만 아니라 그녀의 형제 중의 하나인 
니콜라이 에브게니에비치 란세레이 또한 재능 있는 건축가였으며 
그녀의 형제인 란세레이가 지은 미술관은 러시아에서 중요한 예술적 문화재가 되었다. 
러시아인이자 영국인이었고 배우이자 작가 피터 유스티노프 또한 그녀와 인척 관계에 있었다. 


그녀의 예술적 소질은 이미 타고났던 것이다. 
그녀는 어린시절 러시아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1902년과 1903년에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배웠다. 
1905년에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같은 해에 러시아로 돌아온 세레브랴코바는 철도 기술자인 그녀의 사촌 보리스 세레브랴코바와 결혼했다. 


그녀의 예술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사랑의 시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녀의 첫 시도는 대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젊고 여성이었지만 표현에 있어서 용감했고 그녀가 표현하려는 주제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았다.

 

Self-portrait with daughters, 딸들과 함께 있는 자화상. 1921. Oil on canvas. 90 x 62 cm. 
The Rybinsk State History, Architecture and Art Museum, Rybinsk, Russia

다정한 가정스런 분위기를 표현하는 이 그림 속에서 
그녀는 그녀가 낳은 앙증맞은 딸들과 함께 등장한다. 
어느 아름다운 모델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그녀는 
그림 속에서 그녀의 딸들과 함께 자상한 어머니로 등장한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이 그림은 밝고 화사하고 따스하다. 
그녀는 먼저 그녀 자신의 자화상들을 그림으로서 표현했고, 
이 자화상들은 곧 유명세를 탔다. 

1914년에서 1917년 동안의 그녀의 삶은 그녀 인생에서의 전성기였다. 
세레브랴코바 그녀 자신의 자화상들과 함께 이 시기에 그녀는 그녀가 살고 있던 
농촌마을의 농부들과 농촌 소녀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들은 따스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농촌의 전원마을이 가지고 있는 
대자연의 위엄스런 모습을 담고 있다. 
물론 세레브랴코바 그녀 자신도 여성이기에 되도록이면 
여성의 모습들을 그림속에 많이 그려냈다.

 

Self-portrait, 1921. Oil on canvas.

세레브랴코바는 동양의 모습을 표현하는데도 도전했다. 
그녀는 비록 여성이지만 도전하는데 있어서 결코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인도, 일본, 터키의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아름답고 풍유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그림에 표현했다. 
이 시절까지 그녀의 삶은 행복했고 풍요로왔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했고 그녀의 삶은 바뀌었다. 
그녀의 남편 보리스가 볼셰비키 교도소에서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그녀는 수입이 없었고 그녀가 양육해야 할 4명의 아이들과 그녀의 병든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그녀는 값비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유화를 포기하고 숯과 연필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도 그녀의 딸들도 다시 인생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딸 타티야나는 발레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었고 
세레브랴코바 그녀도 파스텔 그림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Self portrait, 1922. 

파리 시절, 파리에서 그녀는 많은 벽화들을 그렸다. 
그녀는 아이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러시아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어머니를 걱정했던 그녀의 아들 알렉산드레와 딸 카테리네가

파리로 와서 어머니를 만났다. 


이 이유로 그녀의 4명의 아들과 딸들은 두명씩 분리되었지만 
그녀의 아들과 딸들은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해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세레브랴코바는 마지막 여생을 여행으로 보낸다. 
세계의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그녀가 그 나라에서 바라본 풍경과 여성들을 그린다. 
여행과 그림은 그녀의 남은 여생의 즐거움이었다.

 

Self-Portrait in a White Blouse. 1922. Oil on canvas. 69 x 56 cm.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흰 블라우스를 입은 자화상'은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가 삼십대 후반 때인 1922년의 자화상이다.
아프리카와 모로코에서 그녀는 아프리카의 풍경에 매료되었고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아랍여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한다. 
그녀가 주로 표현하려고 했던 지향점은 이 대자연의 모습과 
대자연에서 어울리는 바로 자기자신과 같은 여성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이었다.

 

Self-portrait, 1924.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던 그녀는 러시아로 돌아가자마자 유명해졌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보티첼리 또는 르느와르와 같은 동급의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지카 또는 시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녀는 일에 충실한 알파걸인 동시에 집안에도 헌신적인 가정에도 충실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의 남편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과 딸들도 그녀를 믿음직한 어머니로 생각했다. 
그녀의 소중한 딸들에 둘러싸인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따스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의 마음이 그녀가 표현하려 했던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처럼 선량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다정한 어머니로서 그녀의 딸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해진다.

 

Self-portrait, 1930.

그녀의 자화상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그녀의 그림들도 아름답다. 그녀는 조명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적절한 조명을 사용하여 그녀 자신의 피부를 하얗게 만든다. 
그녀는 그림의 조명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으며 그림을 조명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확실히 아름다운 요정처럼 돋보이며 그녀 자신의 모습을 뽐낸다.

 

Self-portrait, 1946.

그녀는 유성페인트에 대해서는 싫어했다. 
한때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가난 때문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유화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그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되도록이면 모든 장르의 그림들을 시도한다. 
석판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소재를 사용하여 모든 주제의 그림들에 도전했다. 
그녀는 자신이 화가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그녀의 작업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었으며 그녀는 용감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용감했다.

 

Self-portrait, 1956. Oil on canvas 55 x 64 cm private collection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 그녀의 모습들, 그녀의 인생 속에서 
그녀의 그림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 속에서 그녀의 밝고 낙천적이며 
긍정적이고 용감한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밝고 용감하게만 보이는 그녀도 때때로 그녀 자신이 우울했음을 털어놓았다. 
세레브랴코바는 그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말한다.

"나는 활동적인 화가이다. 항상 활기에 차있으며 긍정적이다. 
나는 밝고 항상 내 일에 대해서 열정에 차 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이 희극배우일 뿐임을 발견한다."

이렇게 말한 그녀,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성도 때때로 우울한 기분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러한 때때로의 기분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밝고 용감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빛 뿐만 아니라 어둠의 모습도 인정해야 한다. 
빛을 인정하듯이 어둠도 인정해야 한다. 


빛이 자연스러운 우주의 모습이듯이 어둠도 자연스러운 우주의 모습이다. 
두 가지 측면을 인정할 때 진정한 낙천주의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빛이 어둠을 뚫고 가듯이 그림을 그리려면 캔버스를 인정해야 하듯이 
삶을 살아가려면 어둠을 인정해야 한다.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서 빛을 인정하듯이 어둠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밝은 빛으로서 세상을 살기 위해서이다.

 

At breakfast, 아침식사. 1914. oil on canvas, 107 x 88,5 The State Tretyakov Gallery

아침 식사하는 어린애들을 참 생기있게도 그려 놓았다. 
귀여운 아이들이 식탁에서 물을 마시거나 스프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여자아이는 스프 접시에 손을 얹고 관객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애는 셋중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기도 하지만 
뭔가 시크한 표정으로 관심 없다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

가운데 큰 수프 볼에 들어 있는 것은 아마 순무와 야채, 
고기를 넣고 끓인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쉬나 양배추 수프인 쉬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접시에 담긴 수프에 건더기가 안보이는 걸로 봐서 양배추 수프일 것 같다. 
왼편에 있는 빵도 맛이 있어 보인다.

 

House of cards, 카드로 만든 집. 1919. oil on canvas. 65 x 75.5 cm The State Russian Museum

세레브랴코바의 네 자녀들이다.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아르누보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유지했다. 
비록 그녀가 그 누구의 스타일을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들 속에서 
르느와르의 그림들이 지니고 있는 따뜻하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녀는 꽤 안정된 집안에서 자라났다. 
매력적인 소녀들이 그렇듯이 그녀 또한 집안의 안정된 보호를 받으며 자라났다. 
그녀는 대채로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낙천적이었고 항상 성실했다. 
일하는 화가로서도 집안의 어머니로서도 남편의 아내로서도 그녀는 항상 성실했다.

 

On the terrace in Kharkov, 1919.

지나이다는 1905년 보리스 세레브랴코바와 결혼을 하면서
성이 Lanceray에서 세레브랴코바로 바뀌게 된다.
이후 그녀는 남편 보리스 사이에 네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남편과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나 또한 내 남편과 가족들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 
나는 모두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뜻밖의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행복한 마법의 삶을 살고 있다."

 

Girls at the piano, 1922. 

뜻밖이었을까? 

그녀의 행복은 그녀 자신의 낙천적이고 성실한 삶의 자세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녀는 행복을 누릴만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자화상들은 모두 밝은 색채를 뽐낸다. 
어느 그림도 어두운 그림은 한점도 없다. 
밝고 산뜻하며 르느와르의 그림이 지니고 있는 밝고 순수한 색채를 뿜어낸다. 
또한 마네의 그림같은 우아함이 돋보인다. 


그녀는 그녀 자신과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그녀의 가족들과 그녀의 친구들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그녀는 사람들이 가진 젊음과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녀는 그림의 중심 인물 뿐만 아니라 그림의 배경들이 되었던 자연과 초상화에도 신경을 썼다. 
그녀가 자화상 속에서 사용한 작은 소품들의 용도를 보면 그 작은 소품들이 
그림 속에서 어떻게 모델처럼 그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지 살펴보면 
그녀는 그림의 중심 인물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소품과 배경을 사용할 줄 아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Portrait of Eugene Serebryakov, 1909. 

그녀는 그녀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 그녀 자신의 카논(이상적인 인체비례)을 창조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카논에 따라서 그녀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카논의 모습은 강렬한 밝고 아름다운 순수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아이들 그림에서 그녀의 아이들은 섬세하며 강하고 온순한, 
독립된 에너지가 가득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심리학도 활용했다. 
그녀는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지식에도 밝았다.

 

Alexander Serebryakov, reading a book, 독서하는  아들 알렉산드레. 1946.

그녀는 자유로운 여성이었고 화가라는 직업을 택함에 있어서 
그녀 스스로의 긍정적인 힘을 용감하게 믿었으며 그 밝은 힘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글 쓰기,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고 모든 예술분야에 있어서 관심이 많았다. 
남편이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그녀는 그녀 남편 곁에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림을 그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항상 함께 했다. 
아름다운 들판의 황금 물결, 지평선의 깊은 푸른색, 
그녀의 그림은 밝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밝고 순수했던 긍정적이며 용감한 삶처럼, 
그녀의 그림들도 밝고 순수한 긍정적이며 용감한 따뜻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Portrait of the artist's daughter, 딸. 1934. 

한 여름의 푸른 하늘처럼 봄의 따뜻한 꽃처럼, 늦봄과 초여름의 맑고 순수한 색채, 
밤의 빛나는 맑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그녀의 그림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Portrait of the artist's sister, 자매. 1934. 

그녀는 자연의 정확한 관찰을 통해 전통회화 기법에 인상파 요소를 결합한
자신만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하며 열심히 작품을 그렸다.
파리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녀는 1947년 프랑스 시민권을 받았다.

지나이다는 1924년 러시아를 떠난 이후 두고 온 두 자녀를 만날 수 없었다. 
드디어 이별한 지 36년 만인 1960년에 소련 당국으로부터 가족 방문을 허가 받고 상봉하게 되었다. 
이때 큰딸인 타티아나(Tatiana)도 어머니와 같이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었으며 
모스크바 예술 극장 (Moscow Art Theatre)에서 무대 장치 일을 하고 있었다.

6년 후인 1966년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그리고 그녀의 고향인 키예프에서 전시회도 열리게 되었다. 
지나이다는 이 전시회에 200여 점의 작품을 내놓았고, 기록에 의하면 화첩이 수백만 장이 팔리고 
그녀는 보티첼리와 르누아르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년 후인 1967년에 그녀는 파리에서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ortrait of Yekaterina Heidenreich in Red, 에카테리나 헤이덴레이체의 초상화. 1923년
pastel on paper.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지나이다가 그린 초상화 작품은 대단히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레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마음을 행복하게 해 준다.
파스텔로 그려진 작품.

 

E. Geyderih in blue. 블루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 1923.

 

Helene de Rua, Princess Jean de Merode, 1954.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미소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Marietta Frangopulo. 1922년
아름다운 소녀을 그린 초상화 작품.

 

Bleaching Cloth, 세탁부,1917, oil on canvas. 141.8 x 173.6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러시아 최초 여류 작가인 세례브라코바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힘을 가진 그림이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과감한 구도는 세탁부의 역동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Tata and Katia (In the Mirror). 1917년
지나이다의 귀여운 두 딸의 모습이 보이고 거울을 통하여 화가가 보인다.

 

The Breadseller from the Rue Lepic. 레픽거리에서 빵을 파는 여인. 1927.

레픽거리는 몽마르트르에 있는 곳이다.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고, 빈센트 반 고흐도 거주했던 곳이다.

 

The nurse with the child, 아기와 간호사. 1912. 

그녀의 작품에는 누드화와 남성들이 갈 수 없는 곳을 그린 작품이 여러 점 있다. 
세상의 무엇다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수유장면이 아닐까...

 

2명의 농부 소녀들. 1915. oil on canvas.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Harvesting, 추수. 1915. oil on canvas. 142 x 177 cm. Odessa Art Museum 

 

A portrait of Yvette Choviret, 1962.

 

Alexander in costume, 1952.

 

Country Girl, 1906. 

 

Elena Braslavskaya, 1934.

 

Merchant vegetables. Nice, 1931.

 

Nymph Flora, 1935. 

 

Nymph Justice, 1935. 

 

Peasant Woman with pots, 1900. 

 

Peasants, 농민들. 1914. Oil on canvas. 123.5 x 98 cm. Th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Russia.

 

Portrait of a nurse, 1903.

 

Portrait of a nurse, 1907. 

 

Portrait of A.A.Cherkesovoy-Benoit, 1938. 

 

Portrait of Berthe Popoff in a floral fascinator, 1941. 

 

Portrait of Countess Rosario Zubova, 1939. 

 

Portrait of Olga Konstantinovna Lancere, 올가 콘스탄틴노바 란세르의 초상화. 1910. 
Oil on canvas. 69 x 61 cm. Private collection

란세르(Lancere, Lanceray)는 그녀의 결혼 전의 부계 성이다. 
그녀의 집안 특히 외가는 우크라이나에서 유명한 예술가 가족이다.
이 작품은 아마도 그녀의 친정 자매나 친척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Portrait of S.M. Lifar, 1961. 

 

Portrait of S.M. Lukomskaya, 1947.

 

Portrait of the composer's daughter, EF Napravnik, 1910. 

 

Portrait of Vera Fokine. 

 

The Popoffs' doll, teddy bear and toy elephant, 1947. 

 

Portrait Z. N. Martynovskaya, 1961. 

 

Sleeping Katya, 1945. 

 

Two Peasant Girls, 1915. 

 

In the meadow, 1912. 

 

Terrace in Collioure, 1930. 

 

Terrace, 1900. 

 

Country kitchen around Budzhiano, 1932. 

 

England, 1953. 

 

Florence, 1949. 

 

Gatchina. Interior, 1922. 

 

Closet of ballerina Irina Baranova, 1933. 

 

Veranda spring, 1900. 

 

Yevgeny Lanceray in a shako, 1915. 

 

Still Life with a Basket of Pears, 1932. 

 

Fruit piece, 1931. 

 

Fruit piece, 1935. 

 

A basket with flowers, 1934. 

 

The fish on the green, 1935. 

 

Basket with grapes and peaches, 1931. 

 

Basket with grapes on the window, 1931. 

 

Still Life with Apples and a round bread, 1948. 

 

Still life with cauliflower and vegetables, 1936. 

 

Still Life with Grapes, 1936. 

 

Still Life with Vegetables, 1936. 

 

[영상] Zinaida Serebryakova 특별전

 

[영상] Zinaida Serebryakova (1884-1967) Russian Realist pa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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