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이름으로 공개된 DJ 대통령의 어느 날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71년 국회의원 선거 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가슴이 칼로 베인 것처럼 아팠다.

지팡이, 절룩거리는 DJ에 대한 무서운 조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증오와 적개심에 번득이는 야유가 몸서리치게 몸을 덮치는 느낌이었다.

 

지금 그 ‘지팡이’는 오히려 그리움과 어떤 의지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었을 때, 특히 90년대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상당수의 언론은 절룩거리는 김대중 선생을 비웃었다.

그렇게 절룩거리기 때문에 대통령 될 자격이 없다고 궤변을 늘어 놨다.

 

다리를 절게 된 것은, 대선후보 유세기간 도중, 무안에서 덤프 트럭의 기습에 의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직접 실행했거나, 아니면 기획·지시하고 다른 팀이 실행했을 거라는 건 모두가 짐작하는 일이다.

 

무안사건이 있은 지 2년여 후에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선생은 납치당했다.

꽁꽁 묶어서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박정희-이후락-중정 책임자, 주일 한국대사·공사들이 주모자, 주동자, 공범들이었다.

 

1996년 가을 쯤 이었다.

연말에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병원에 가서 수술 받기로 일정이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직감으로 다가왔다.

 

먼저 지금 이대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지 않으시냐고 직접 질문을 드렸다.

“그렇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반대한다.”고 분명하고 강력하게 말씀을 드렸다.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조병옥 박사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병 고치러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어렸지만 그때 국민의 절망과 통곡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시대가 달라져서 그런 일이 없겠지만,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둘째, 다리가 불편하신 것은 교통사고를 빙자하여, 살해하려고 했던 추악한 음모 때문입니다.

그래놓고 저들은 선생님 절룩거리는 것을 비웃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도덕하고, 적반하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못 견뎌서 수술하시는 것은 저들에게, 저들의 말도 안 되는 선동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가시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장애인들이 생각납니다.

장애인들의 90%가 후천성이랍니다.

병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반은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때문에 장애가 발생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술 받아서 나아지실 수 있겠지만, 다른 장애인들이 느끼게 될 모종의 ‘거리감’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결국 가시지 않았다.

물론 당신 스스로 결정하신 거지만, 내가 드린 말씀도 경청하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남겨진 일기에서 본 ‘아프다’고 하신 허벅지 관절, 그 구절이 내 가슴을 친다.

혹시 나 때문에 평생 그 허벅지 아픔을 짊어지시고 사신 것은 아닌가?

 

아니 이제 영면하셨기 때문에 그 허벅지의 아픔도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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