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rive.google.com/file/d/1GSLIinp340KAR915iPVV3TH3z92myRzV/view

 

 ‘음악 영화’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개인이 주연이든 공동체가 주연이든 ‘음악 영화’는 대개의 경우 소외나 우울, 빈곤을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는다는 스토리로 감동을 전한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명확해서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 또한 아름답고 결말은 주로 해피엔딩이기 때문에 잠시나마 관객들에게 정신적 순화를 선물한다. 영화 ‘피아니스트와의 마지막 인터뷰’는 이 범주에 충실하다. 영화의 원제는 ‘CODA’이다. 음악과 관련해서 ‘coda’는 긴 연주곡의 마지막에 연주되는 종결부이다. 이 영화에서 종결부가 의미하는 것은 어느 날 무대 연주에 대한 공포증에 시달리게 된 노년의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자신의 우울과 공포를 극복하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승화 시키는가이다.
영화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연륜이 깊은 손을 클로즈업한 화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열정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열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적이며 장면들은 유명 음악당이나 뉴욕의 센트럴파크, 남프랑스, 알프스 자락에 자리 잡은 스위스의 실바플라나와 같은 전원적 풍경들이다. 이 고전적이고 목가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세계적인 명망을 지닌 거장 피아니스트의 예술가적인 기품과 닮아있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을 초월하는 음악이나 억겁의 시간을 안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과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인 헨리는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무게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병이 있었던 사랑하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보살폈지만 아내는 스스로 삶을 끝냈기에 그의 슬픔은 더욱 깊었다. 또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이지만 완벽한 무대 연주에 대한 압박감과 두려움은 어느 날 갑자기 그를 연주에 대한 공포로 몰아넣는다. 심지어 연주를 하려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들이 사라져버리는 악몽을 꾸기도 하고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모인 기자들 앞에서는 공황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그에게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온 음악 평론가인 헬렌이 다가온다. 헬렌은 과거 피아니스를 꿈꾸었었지만 유명 콩쿠르에서 예선 탈락을 하고 난 이후 글을 쓰는 평론가가 되었다. 헬렌이 이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헨리의 훌륭한 실력이기도 하지만 과거 헬렌이 참가한 마스터 클래스에서 피아니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느낌’이라고 말할 만큼 깊었던 예술에 대한 그의 내면적 성찰이었다. 그토록 고매한 정신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가졌던 그가 현재 처해있는 트라우마를 지켜보면서 헬렌은 어떻게든 그가 다시 훌륭한 연주자로 되돌아오도록 곁에 있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헬렌은 헨리에게 자신이 콩쿠르에서 떨어지고 나서 머물렀던 자연에서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던 바위를 보고 낙심을 털어내고 마음의 자유를 회복했던 순간을 회상한다. 헬렌이 이때 언급한 비유는 니체의 ‘영원 회귀’이다. 그녀는 영원 회귀는 무한 순환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온 이야기와 시간을 묵묵히 안고 그 자리를 지키는 바위처럼 고난과 기쁨이 반복하는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라고 헨리에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헬렌은 헨리에게 니체에게 영감을 준 스위스 호수와 산이 있는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한다. 헨리는 그녀가 권한대로 그곳에 머무르며 매일 긴 계곡물이 흐르고 멀리 눈 덮인 알프스 정상이 보이는 산길을 산책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한 그곳에는 자연만이 아니라 그의 침울함을 조용히 지켜보는 중년을 넘어선 호텔의 프론트맨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그 호텔에 묵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을 자원한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절대 알 수 없다”고 말하면서 패색이 짙었던 헨리와 두던 체스 게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게임의 상황을 뒤집는다. 이 순간의 유쾌함으로 인해 헨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웃음과 유머를 되찾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헨리는 매일 지나치던 커다란 바위를 보는 순간 헬렌처럼 지난 과거의 슬픔이나 강박증적인 연주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연의 생명력 속에서 에피파니처럼 삶의 의미를 체득한 헨리는 숲속 벤치에 잠시 앉아, 함께 자전거를 탈 때 헨리가 바퀴에 걸려 넘어질까 봐 한쪽 바짓단을 양말 속에 넣어주었던 헬렌의 행동을 떠올리며 조용한 미소와 함께 스스로 바짓단을 양말 속에 집어넣는다.
이제 용기를 다시 되찾은 헨리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페달을 밟으며 예술가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다 열정으로 시작하고 서정적이고 잔잔한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 23번으로 마무리하는 피아니스트의 나이든 손의 연주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열정과 고요, 격랑과 잔잔함이라는 악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의 연주는 오랫동안 풍상을 견뎌온 바위와 같이 수많은 이야기와 시간을 품고 있는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삶은 살아 있는 생명력이고 그것이 헬렌이 말하듯 “사랑하는 관객을 위해, 자신을 위해 연주“를 계속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존재 가치가 될 것이다.
어쩌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멀리 떨어진 이야기일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의 공감력은 노년층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에 던지는 위로에 있다. 행과 불행이 반복되는 삶에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견뎌내는 것만이 자기다운 삶을 지켜내는 것이라는 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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