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푸키레프 (Vasili Vladimirovich Pukirev 1832~ 890) 자화상

바실리 푸키레프 (Vasily Vladimirovich Pukirev 1832-1890)는 러시아 풍속화가이다.
바실리 푸키레프는 1832년 툴라(Tula)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정확한 출생지와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농민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리기 시작했고, 
초등교육을 받은 후 모길레프 현의 무명 화가 도제로 들어 갔다.

그 후 우연한 기회로 모스크바 회화조각건축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세게이 자란코 (Sergey Konstantinovich Zaryanko 1818~1870) 교수 밑에서 회화를 배웠는데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서 1853년 예술아카데미에 보내진다.

1860년 초상화 작품으로 아카데미 회원 칭호가 수여된다.
1861년~1873년 모스크바 회화조작건축학교에서 교사를 했지만
말년의 작품들도 <어울리지 않는 결혼>(1863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Tretyakov Gallery 16번 방 <어울리지 않는 결혼식> 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걸혼식 . 1862. 173cm X 136.5 cm.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16번방.

칠십 살은 넘어 보이는 노인과 손녀뻘 되어 보이는 여린 소녀가 백 년을 함께 살자고 가약을 맺는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남자가 금방 핀 한 떨기 꽃같은 예쁜 여자 옆에 서서 결혼의 촛불을 밝힌다.
쭈글쭈글 한 남자는 제일 좋은 양복을 입고 반짝반짝 광을 낸 블라우스 리본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가슴에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황실 훈장을 다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알코올에 찌든 것일까, 
너무 어여쁜 신부 모습에 수줍은 것일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늙은 남자는 곁눈질로 가련한 소녀를 힐끔거린다.

사랑을 통한 배우자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거래로 성사된 혼인임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나이 든 남자와 너무도 여리고 어려 보이는 신부와의 부적절한 혼례 장면이
19세기 중반 러시아 사회에서는 꽤나 일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불평등한 결혼"이라는 작품은 그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원치않는 강제 결혼을 주제로 그려졌다.
그러나 문제의 사회 심리적인 의미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오직 신부만이 고통을 받고 증오하는 신랑의 괴롭힘을 견뎌야했다. 
물질적인 관심, 좋은 거래를 수행하려는 욕망은 부모가 자신의 딸에게 희생하도록 강요했다.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부분)

백옥같이 빛나는 하얀 드레스에 우아함과 순수함까지 차려 입은 청초한 여자는 
'행복, 순결, 반드시 행복해집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 꽃을 가슴에 달고 
머리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은방울 꽃 화환을 예쁘게 쓰고 
축 늘어진 힘없는 손을 어렵게 내밀어 결혼반지를 끼려 한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두 눈은 초점을 잃고 바닥을 헤맨다. 
이미 포기한 맘이야 붙들어 맬 수 있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애써 참으려는 그녀의 울음이 눈 주위로 붉게 일어나고 앙다문 양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림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어린 소녀 신부다.
신부는 여전히 아이이며, 처진 머리에 눈물을 머금고 있다. 
금발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얼굴이 참으로 슬픈 표정이다. 

그녀의 오른손은 제사장에게로 연장되며, 제사장은 얇은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워 넣을 것이다. 
신부의 표정은 무관심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운명에 무관심하다. 
웨딩 드레스를 입고 소녀는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될 가족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 (부분)

유명한 미술 ​​비평가이자 역사가 블라디미르 바실리에프 스타소프 (Prado Vadilyevich Stasov)는 
푸키레프 (Pukirev)의 그림을 보았을 때 
"마침내 현대 사회의 깊은 곳에서 찍은 오늘의 주제에 관한 연구, 
새로운 재능있는 예술가가 러시아에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의 의견을 말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주제를 충분히 깊이 고치지 않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한 많은 적을 발견했다. 
언론은 논란의 물결을 피우고 있다. 

그림의 묘사, 그 분석, 비평가의 의견은 걸작의 출현에 대한 적시성에 대해 결론을 맺게 했다. 
러시아 사회는 그들의 부도덕한 이유로 결혼 생활을 비난할 준비가 되었다.
불평등한 결혼! 슬픔과 고통, 연약한 처녀 영혼을 위한 죽음. 
이 주제의 비극은 A. N. Ostrovsky "The Poor Bride"의 연극으로, 
F. Zhuravlev의 "Before the Crown" 그림으로, V. Makovsky의 "To the Crown"과 같은 
회화와 문학 작품으로 구체화되었다.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 (부분)

 

금실 은실로 겹겹이 수놓은 사제복을 휘황찬란하게 차려 입은 대머리 사제는 
구부정한 허리를 똑바로 펴지도 못하고 어린 신부의 미래를 옭아 매려 허겁지겁 매달리고 있다.
늙은이와 소녀를 엮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노파는 이 결혼이 허사가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 노려본다. 
그리고 이 둘의 인연에 더 얻어낼 것은 없는지 주름진 싸늘한 눈을 희번덕인다.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 (부분)

그림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노라면, 뭔가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에게서 시선이 멈춘다. 
맨 오른쪽 윗부분에서, 고매한 분위기의 남자 하나가 팔짱을 낀 채 군상들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눈은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작가 푸키레프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눈길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러시아에서 1860년대는 대변혁과 전환의 시기였다. 
한때 유럽의 헌병 행세를 하며 각국의 자유화 운동을 간섭하고 탄압하던 러시아는 
크리미아 전쟁(1853~6)에서 참패하여 안팎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오랜 숙제이던 농노해방(1861)이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면서 마침내 단행된다.

이러한 일대 격변 속에서 러시아 사회 구석구석마다 변화의 싹들이 무성하게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라즈노치네치(разночинец)’의 등장이다. 
농노해방령이 내려지던 무렵 러시아에서 사무원이나 의사, 교사, 변호사, 회계사, 작가 등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은 그 출신성분이 매우 다양하였으며, 그 지위는 특권계층인 귀족과 사제, 

그리고 하층계급인 농노와 농민의 중간에 위치하였다. 
‘잡계급 인텔리겐차’라고 번역되는 그들은 대부분 사회 개혁에 대해 급진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품고 있던 그들은, 
사회 각 분야에 포진하여 러시아 사회 변화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예술분야에 있어서 그들이 창조한 새로운 미학은, 현실이 아무리 추할지라도 이를 아름답게 

가장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푸키레프의 저 매서운 시선처럼 문제투성이의 세상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그럼으로써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해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 (부분)

신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늙은 하객 4인방은 늘그막에 횡재한 친구가 심히 못마땅하다.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늙은이들의 심통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들의 뒤틀린 시선이 그림 전체를 건조하게 만들고 얼굴에 진 주름만큼이나 겹겹이 한숨짓게 한다.

그런 그들을 그림 한쪽에서 팔짱 낀 채 우울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은방울 꽃의 어린 신부와 나란히 서면 딱 어울릴 법한 턱시도의 젊은 남자는 푸키레프 자신이란다.
빚을 갚지 못하는 농노의 어린 딸을 선뜻 자신의 노리개로 취하고 
말도 안 되는 불합리를 재력으로 포장하는 현실을 작가 자신은 비통한 얼굴로 바로 본다.
그림 한 켠에 야멸차게 자리 잡아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한다. 
조용히 호통치는 것이다.

 

The Unequal Marriage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 (부분)

그의 <어울리지 않는 혼인>은 나이 든 고관에게 시집가는 가난한 처녀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촛불을 든 손을 힘없이 늘어뜨린 채 반지를 받기 위해 손가락을 내미는 신부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런 신부를 곁눈으로 바라보는 늙은 신랑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낯빛에 
이제는 오로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거늘 신랑은 신부의 행복에 전혀 관심이 없다. 
하객들의 표정에서도 신부에 대한 진정한 동정심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신부는 더욱 외로워 보인다.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러시아 대표 풍속화가이며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사실주의 화법인 대물묘법의 대가이다.

 

 

[영상] Tretyakov Gallery Room 16. 바실리 푸키레프 <어울리지 않는 걸혼식> 전시실

 

Firs Zhuravlev : Before the wedding. 결혼식 전. 1874. oil on canvas. 105 X 143 cm. Tretyakov Gallery

비슷한 사진들. 

아티스트 Firs Zhuravlev는 1874년에 러시아 사회에서 도덕성의 쇠퇴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방에서 이미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바닥에 앉아 울고 있고 냉혹한 아버지가 옆에 서 있다. 
소녀의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다. 
몇 분 후에 교회에 데려 가서 못생긴 부유한 노인과 결혼하게 될 것이다. 

 

Firs Zhuravlev: Before the wedding. 1874. oil on canvas. 105 X 143 cm.

 

Boy with Bird's Nest (1856) "새 둥지를 가진 소년"

회화 "일기"에서 나온 농부 소년은 푸키레프 회화에서 그같은 걸작 중 첫 번째는 아니다. 
1856년,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작가는 이미 "새 둥지를 가진 소년"이라는 그림에 작은 농부를 묘사했다. 
그는 숲 강의 건너 편에 잠겨 있는 소년을 묘사한다. 


그의 손에는 조심스럽게 새 둥지가 있다. 
소년이 땅에서 떨어진 둥지를 집어 들었는지 또는 지부에서 독립적으로 제거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소년의 얼굴이 그를 괴롭히지 않고 새 집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 Gambler. 1865.

 

In the Artist's Studio. 예술가 스튜디오에서. 1865. 

바실리 푸키레프 (Vasily Pukirev)의 다음 큰 그림은 

1865년에 해외에서 돌아온 직후에 쓰여진 "예술가 스튜디오에서"이었다. 
예술가의 역할에 Pukirev 자신을 묘사했다. 


그는 미술 사학자에게 커다란 아이콘을 보여 주며, 제사장은 세속적인 눈으로 그림을 본다. 
가정부는 집에 온 교회의 대표자를 보기 위해 소심히 동행한다. 
사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Pukirev 워크샵의 배치다. 
저자가 아이콘과 캔버스 디스플레이의 실제 사례를 묘사했는지 
아니면 허구의 음모를 묘사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Reception of a Dowry in a Merchant Family. 지참금 목록. 1873. oil on canvas. 73 x 66 cm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신부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드레스를 내보이고 있고,
신랑 측에서 보낸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참금 목록을 들고 있다.
하녀는 트렁크에 여러 혼수품을 챙기고 있으며 문 앞에는 신랑측 사람이 거드름을 피우며 서 있다.

바실리 푸키레프의 또 다른 그림은 결혼과 그 역겨운 물질적인 면을 주제로 한다. 
그림은 결혼식의 며칠 전 신랑의 집에 보내는 지참금을 모으기 전 평상시의 시간을 보여준다. 
분명히, 이 절차는 신부 가족에게 얼마나 불쾌한 지...
신랑의 자랑스런 포즈는 문 앞에 있는 장면에 보인다. 

신부와 여동생 또는 여자 친구는 공포스럽게 이 그림을 본다. 
한편, 신부의 어머니는 막내딸과 함께 가슴에 린넨더미를 놓는다. 
그녀의 얼굴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상화하려는 시도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이 작품은 1873년에 창안되었는데, 
이전 회화에서처럼 가난한 상인의 집의 생활과 가구는 매우 소박한 분위기였다. 
겸손한 설정, 여러 그림과 카나리아 케이지가 천정에 매달려 있다.

 

Wedding Interrupted. 1877.

성공을 얻은 바실리 푸키레프 (Vasily Pukirev)의 마지막 그림 중 하나는 
1877년에 그려진 이 작품이다. 
사진의 두 번째 이름인 "이중 어미"는 결혼식 장면이 중단되고 
신부가 의식을 잃어버린 것을 시청자에게 쉽게 설명한다. 
그녀의 약혼자 옆에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신랑의 아내다. 

결혼식 주제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다시 한번 전시장에 풍자를 만들어 냈다. 
즉 한 번에 두 명의 여성을 속이고 다른 여성과 재혼하기를 원하는 가출한 남편 
- 이것은 19 세기 말까지 공통적 인 문제가 되었다. 
캔버스가 순간적으로 눈에 띄고 있다. 
모든 인물은 ​​생동감이 있으며, 시청자가 주의를 기울이기 전에 잠깐 멈춰 있다.

 

1875년 이 그림으로, 바실리 푸키레프는 다시 농민 테마로 돌아 왔다. 
또 다른 슬픈 이야기를 묘사한다. 
무릎을 꿇은 여성이 집에서 그녀의 소를 가가져지 않기를 간청한다. 
그 당시 소작농들이 어떤 종류의 빚에 의해 가축들이 쫓겨나고 있다.
예술가는 그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그림에서 진실한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조명 솔루션은 매우 흥미 롭다. 
마치 무대에 있는 것처럼 기도하는 농민 여성과 집행관이 빛을 발하고 
여성의 가족은 그림자 속에 남아 있다. 
그들의 소망은 모두 이것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가까이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Vasily Vladimirovich Pukirev. 

 

[영상] Vasili Vladimirovich Pukirev, Marriage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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