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부 / 36.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한편 내가 근무하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는 조사연구사업의 하나로
'통일문제에 관한 교과서 분석'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1983년 10월 말 경 이 사업에 참여했던 초중고등학교 교사 일곱 분이
비밀리에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혹독한 조사를 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그 해 11월 초순 경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지역 기독교 사회운동 관계자들의 회의에 참석하느라
근 한달 동안 인도네시아와 방콕,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일본 동경과 오오사카 교오토 등지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 때 민청련의 창립 배경과 의의 앞으로의 운동 방향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일본 오오사카에서는 우리집에서 1년 여 함께 생활한 바 있는 김혜영 양관수 부부의 집에 머물면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양관수의 안내로 오오사카와 교오토 등지를 자세히 관람할 수 있었다.

 

12월 초순 경 한국에 돌아와 연구원에 출근해서야 나는 교사들이 비밀리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통일문제에 관한 교과서 분석' 사업은 기획과 진행의 책임을 이미경(전 국회의원) 연구원이 맡고 있었지만
실은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제안하고 소개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지 나로서는 초미의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교사들은 '경고'와 '주의' 등의 처벌을 받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내가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12월 중순부터 말 사이에 교사들이 또다시 연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연구 지도를 위해 강의를 했던 이영희 교수와 강만길 교수

그리고 연구원 원장 조승혁 목사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사태로 사건이 확대되었다.

 

남영동 수사 당국은 이듬해 1월 10일 조승혁 목사와 강만길 이영희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면서
이 분들이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상록회'라는 모임에서 강의를 통해
반국가단체인 북괴를 지지 찬양 고무하는 내용을 주입시켰다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교회와 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등 3개 기관을 대표로 해서 '통일문제에 관한 교과서 분석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실무 책임을 자청해서 맡았다.

 

그리고 1월 6일 민족 통일의 주체는 국민이며 특정 기관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1월 11일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구속 조치와 언론의 일방적 왜곡 보도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1월 25일에는 조직을 확대해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그리고 KNCC와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앞으로 이 사건을 통해서 통일 문제에 관한 논의가 보다 더 민주화되는 계기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공동성명에서 이 사건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로 민족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하여 강만길 교수는 한민족의 해방을 위해 적극 투쟁했던 민족적 사회주의자들은
해방 후 소련이라는 외세를 업고 등장한 김일성 집단에 의해 철저히 숙청 제거되어 김일성 집단에는 민족적 정통성이 없으며
결국 오늘날에 있어 정통성 문제는 남과 북 어느 쪽이 민주주의를 더 잘 실행라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둘째로 정치학적으로 전쟁이란 한 민족국가와 다른 민족국가 간의 싸움을 뜻하며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은 내란 혹은 동란이나 사변 등으로 불리운다.

 

이영희 교수는 1815년의 비엔나회의에서 내려진 전쟁에 관한 고전적 정의에 근거하여
6,25는 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한민족의 내부적 동란이나 사변에 외세가 개입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국제관례상 일반적인 견해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유엔이 외국 군대인 유엔군을 파견한 것은 국제 관례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사건임을 지적했던 것이다.

 

셋째로 한민족의 자주성과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미군이 한국에 영원히 주둔해 있을 수 만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주한 미군 철수는 우리 민족이 언젠가는 직면하고 대비해야 할 과제임을 지적한 것에 대해서

이를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고려연방제 지지로 몰아 세우는 것은 왜곡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네째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교차 승인 등은 직접적 의미에서의 통일 정책은 아니며
동서공존 내지는 현상 유지를 통한 장기적 모색의 사상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이러한 정책이 최선의 통일 방안인가에 대해서는 국민들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연구 관계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수사하는 과정에 대해서

첫째로 아직 발표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 수사를 펼치고 언론을 통하여
일종의 여론 재판과 사전 재판을 시도하는 것은 국민의 출판 학문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고,

 

둘째로 사회적으로 확실한 신분을 가진 분들에 대해

불법 연행, 장기 구금 수사, 수색 영장 없는 가택 수색 등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며,

 

셋째로 피의 사실이 확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문과 방송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세 분을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은
세 분의 인격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손상을 미친 행위임을 지적하고
정부는 이에 대해서 사죄하고 구속된 분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우리의 입장을 밝혔다.

 

이 때 나는 구속된 세 분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얼마나 악랄하게 협박당하고
비인간적인 수모를 당했나 하는 데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말할 나위없지만
이 분들 외에도 내 소개로 연구 사업에 참여했던 나의 오랜 친구 유상덕(당시 경기고 교사) 선생 등 7명의 교사들이
시도때도 없이 비참하게 남영동으로 끌려가 협박과 공갈로 주눅들고 나오는 모습 또한 차마 제대로 바라 볼 수 없었다.

 

초중고등학교가 겨울 방학에 들어 서면서 일곱 분의 선생님들은 더 이상 남영동에 개처럼 끌려 다닐 수 없다며
비록 교사직을 쫓겨 나더라도 일단은 피신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나는 이 분들의 요청으로 피신 장소를 적극 주선했다.


그 당시 이 분들이 편안하게 피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도와 준 김학민(학민사 대표) 등
친구들의 배려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남영동에서는 이 선생님들을 내가 어딘가에 숨겨 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언제가 되었든 내가 남영동에 들어 오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별렀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내 귀에 들려 오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은근히 협박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한 비판이 기독교와 가톨릭 등을 통해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번져 나가자

검찰은 구속 35일 만인 2월 14일 세 분들에 대해 공소보류 결정을 내리면서

세 분이 위법을 인정하고 개전의 정을 나타냄에 따라 석방한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세 분이 쓴 반성문과 인터뷰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기에서 공소보류란 주로 남파 간첩에게 적용했던 법률적 조치였다.

이를테면 간첩이 남파되자마자 바로 검거되었을 경우 그 간첩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상대 국가의 중요한 기밀이나 정보 등을 얻게 되거나 다른 많은 동료 간첩들을 검거하게 되는 등으로
당국에 현저한 공을 세우면서 계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에 취해지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중 간첩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거나 KAL 기 폭파사건의 김현희,

황장엽 씨처럼 귀순한 경우에 적용되는 조치인 것이다.

나는 검찰과 남영동 대공분실이 해도해도 너무 악랄하게 한다 싶어서

공동대책위원회 명의로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진실이 이처럼 왜곡당하기보다는 차라리 공정한 재판 과정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이 세 분은 45일 동안 정신적 고문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석방을 조건으로 하여 강제 진술 내용을 반복 연습시켜서
이를 마치 자연스러운 석방 인터뷰인양 여론을 조작하였다....
우리는 세 분의 정신적 상처가 하루속히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당국에 대해서는 그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 줄 것과
인권침해의 성격을 지닌 공소보류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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