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형식(대구 한의대 교수)의 넋 나간 황홀경 - ‘朴비어천가’ 인용합니다.

 

"꽃 중의 꽃 근혜님 꽃! 8천만의 가슴에 피어라, 피어라, 영원히 피어라!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 민족의 꽃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라!

별 중의 별 근혜님 별! 8천만의 마음에 빛나라, 빛나라, 영원히 빛나라!

저 하늘 높은 곳에 이 땅의 온누리에 아름다운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라!”

 

▲ ‘어천가’와 ‘鄧비어천가’ 핵심은 “번신물망모택동, 치부물망등소평” (飜身勿忘毛澤東, 致平)입니다.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난 건(정치적 해방) 오쩌둥 덕, 민을 먹고살게 한 건(경해방) 덩샤오핑 덕이니 이들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중의 역사학자들이 입을 모아 마오를 ‘파(破)의 지자’, 덩을 ‘입(立)의 지도자’로 칭송하면서 주문처럼 읊조리는 문구입니다. 꼭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천편일률적’ 인식조차 곽형식의 ‘박비어천가’만큼 낯부끄러울 일도 아니고, 그저 감성에 치우쳤던 이인화(이화여대 교수)의 ‘朴비어천가’보다는 낯간지러울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소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이후 봉건적 신분제 피 말디 한번이나마 중국 인민들이 ‘정치적 자유권’을 누려본 적이나 있었습니까. 지난날 빈곤의 유는 일단 논외로 친다면, 근래 덩의 개혁개방조차 우리나라로 치면 박정희가 성취한 거와 유사한 ‘서구식 산업화’의 성공적 도정일 따름이지, 그게 어디 중국 인민들의 ‘사회경제적 기본권’ 향유나 풍요의 공유이기나 한 겁니까. 사실 이거야말로 이른바 정치민주화의 위업을 달성한 우리 대한민국이 비로소 오늘날 성취해 나가야 할, 이 시대 최고최대의 현안 과제로 생각합니다.

 

※ 세상에 무슨 진선진미한 건 없을 겁니다. 모처럼 조선일보의 국제관계 좋은 기사 올립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좋기사 비율이 대체로 7 : 3이라면 나쁜 기사 비율은 3 : 7 정도일 겁니다. 이하, 요지와 함께 [조선] 기사, “115년 만에 일본 제친 중국… 中華주의 부활로 주변국 긴장!” 링크시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3&aid=0002456439

 

 

⑴ 경제력 美 이어 2위의 ‘G2 시대’로… 지난 10년간 年평균 10%대 고성장…

 

후진타오가 집권한 지난 10년은 중국이 'G2(주요 2개국)'로 불릴 정도로 경제·군사 등 각 방면에 걸쳐 국력이 크게 신장. 지난 10년간 연평균 10.7%의 고성장 기록. 2010년 일본을 넘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 2002년 1135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GDP지난해 5432달러로 4.7배가 돼. 전체 GDP도 같은 기간 미국의 7분의 1에서 절반 가까치솟아. 빈부·지역 격차에도 불구하고, 중국 동부 연안 지역의 상당수가 1인당 GDP 1만 달러를 넘어서는 등 전반적인 생활수준도 높아져.

 

이런 성장은 장쩌민 시절인 2001년 이뤄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기반으로 작용. 하지만 후진타오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4조 위안(약 7200조원)의 과감한 경기 양책으로 돌파하는 등 중국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끈 점을 과소평가할 수 없어. 또 3조 달러가 넘는 두둑한 외환을 쌓았고, 국가 채무가 GDP의 40%에 불과할 정도로 탄탄한 재정도 구축.

 

 

⑵ 군사력도 ‘G2' 시대로… 70년 숙원' 항공모함 첫 배치, 유인우주선 도킹도 성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 강화와 우주 개발도 본격화. 중국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국방비는 2002년 225억 달러에서 2011년 899억 달러로 4배 수준으로 증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는 것이 해외 연구기관들의 평가. 중국인의 70년 숙원이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도 실전 배치.

 

2003년 첫 유인우주선을 발사한 데 이어, 올해는 우주정거장 건설에 필수적인 유인우주선 도킹기술까지 확보해 물오른 과학기술 수준을 과시. 2008년 건국 후 처음으로 개최된 베이징올림픽은 중국민이 지난 100년 치욕의 역사를 씻고, 자존심을 회복한 대형 이벤트.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이 주변국에 대한 외교적 오만과 군사적 압박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위협론'과 중화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어.

 

 

⑶ 3通으로 대만관계 획기적 개선 - 편지도 힘들었는데 이젠 관광객들 서로 왕

 

중·대만 양안 관계 개선은 후진타오의 최대 치적으로 꼽혀. 1990년대만 해도 양안 관계최악. 1995~1996년 중국군이 대만 부근 해역에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해 미국의 항모핵잠수함이 출동하는 대만 해협 위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후진타오는 취임 후 중앙당 내 대만 소조 조장을 직접 맡아 강온 양면책으로 대만 관계를 풀어나가.

 

대만 독립 주장에는 강경 대응을 계속하면서도, 양안 교류와 경제 협력 분야에서는 통 양보로 대만을 끌어들여. 2008년 양안 간 직항로 개설과 직교역, 서신 왕래 등 3통(通)합의됐고, 2010년에는 자유무역협정(FTA) 격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 대만인의 반중(反中) 정서가 모두 해소된 건 아니지만, 10년 전 서신 교환조차 어려웠던 양안 관계는 서로 관광객이 오갈 정도로 해빙. 지난달 4일에는 '대만 독립'을 내걸고 중국과 대립해대만 민진당의 전 주석 셰창팅(謝長廷·67)이 방중하기도. 2008년의 대만 대선 당시 현 총통 마잉주(馬英九)와 대결했던 그는 역대 중국을 방문한 최고위급 민진당 인사.

 

 

⑷ 향후 최대 숙제 - 서부 대개발 본격 추진 등으로 ‘균부’(均富) 시대 열어내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지만, 경제·사회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긍정적 평가를 는 부분이 있어. 후진타오는 '과학적 발전관'을 표방하면서 지역·도농 간 불균형 해소에 노력. 2000년대 후반 농업세가 전면 폐지됐고, 농촌 지역 의료·양로보험 도입. 낙후한 중부 내륙과 서부 지역 발전을 위한 '중부굴기'와 서부 대개발 정책도 그의 임기 중에 본격 추진을 시작.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먼, 중국 최대의 향후 숙제일 것.

 

2012. 11. 7. (수) / 오용석, 개방과 통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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