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하라고 해서 부담이 됐다. 객관적 거리를 아직 유지 못해 겁이 났다. 불가피하게 김근태 시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과장은 있을지 모르지만 의도적 거짓말은 없다."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이 4일 오후 한양대 행정·자치 대학원 초빙 교수로 '한국정치론' 첫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김근태 전 의원은 '9월 위기설', '언론 장악 의혹' 등에 관한 의견을 밝힌 뒤 이명박 정부의 위기를 경고했다.
그는 또 지난 대선·총선 운동, 총선 이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열풍 관련 소탈한 소회도 밝혔다.
김 전 의원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20여 명의 학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정치 불신에 대한 원인, 피해, 극복 방안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조한 투표율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것이었다.
강의 첫 질문, '정치 불신'·'저조한 투표율' 왜?
김 전 의원은 '정치 불신'의 사례로 두 달 넘게 계속된 촛불 집회를 지적했다.
그는 "촛불 집회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돼서 이뤄지는 대의제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며
"현재의 정치 집단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점으로 그는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현격히 줄었다"며
"20%대의 지지율로는 쟁점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등의 쟁점 정책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논란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김 전 의원은 '9월 위기설'을 언급하며 "한국은 현재 IMF와 같은 위기는 오지 않는다. 다만 성격이 다른 위기는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엔 성장 위주의 정책했다가 안정 위주로 바꾸었다가 지금은 다시 대운하 하려고 한다.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을 타이밍 맞지 않게 추진하고 (경제)위기라고 했다가 위기 아니라고 하니까 신뢰가 안 생긴다"고 꼬집었다.
그가 경제 위기 극복, 신뢰 회복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인사(人事)'다.
그는 "인사가 만사"라며 "무모했고 책임지지 않았던 사람부터 근절하는 것이 경제위기를 뛰어 넘는 지름길"이라고 밝혔다.
▲ 김근태 전 의원.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무모했고 책임지지 않았던 사람 근절, 경제 위기 뛰어넘는 지름길"
김근태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법치보다는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지금은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국민을 겁주는 방법으로는 목표 달성할 수 없다"며
"법치주의보다는 힘 있는 사람이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총선 유권자 투표율이 점점 더 내려가고 있다. 대표성 문제가 있다"며
"대안으로 어떻게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지, 여론 모아지는 광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된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저조한 총선 투표율'을 언급한 것은 언론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권위주의 때는 여론 형성 주체가 언론 특히 신문이었다. 그러나 신문이 도전 받고 있다.
현재 언론 시장 갈등은 주도권 다툼 국면이 있다.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가는지 고뇌해야 한다.
한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은 자기가 느끼는 것을 두려움 없이 얘기하는 것이다.
권력자에게 두려움 없이 얘기하는 게 사회의 건강성을 높인다.
민주주의에선 그런 광장이 존재해야 한다. 신문은 참여 폭이 적었다."
김근태 전 의원은 포털 '다음'의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광장을 중요시했다.
그는 "알릴 수 있는 자유, 집회의 자유, 시위의 자유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토론하고 문제 제기하는 근본적인 힘"이라며
"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악플 규제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악성 댓글은 근절돼야 하지만 교육 과정에서 극복해야지 사이버 모욕죄 같은 것은 불필요한 낭비다.
인터넷은 직접 민주주의에 큰 역할을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7월3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기독교 시국기도회에 온 김근태 전 의원 부부. 김상만 기자 hermes@
"사이버 모욕죄, 불필요한 낭비"… "떨어지니까 '지못미', 고마웠다"
이날 그는 선거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소탈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총선)떨어지니까 (누리꾼들이)'지못미'라고 했다. 고마웠다"며
"그런데 쇠고기 수입 문제 나오니까 내 홈페이지에 '해결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삐쳤다"고 심경을 밝혔다.
18대 국회의원 배지를 못 달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또 "대선, 총선을 위해 전국을 돌면서 '싸움질 좀 하지 말라'는 얘기 들으면 얼굴이 화끈해졌다.
우리와 한나라당을 구분 못한 것에 속이 쓰라렸다"며 "보다 나은 정치 못한 것에 대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회도 나왔다.
그는 한양대와의 인연을 얘기하며 "71년도 대선 때 지명 수배를 받았었다. 한양대 근처 하숙집에서 6개월간 도망자 생활을 했다"며
"오늘 그 건물에 올라가서 보니까 (그 때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고 밝혔다.
강의 시간을 20여 분을 남기고 학생들의 자유 발언도 이어졌다.
학생들은 정치 불신과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김 전 의원은 발언을 수첩에 적으며 묵묵히 들었다.
수강 신청을 안 한 학생도 청강을 하러 올 정도로 수업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바보처럼 생각한다" 학생 불만 쏟아져
한 학생은 "(정치인들이)국민을 바보처럼 생각하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을 많이 느꼈다"며
"여야가 삼성 문제에 왜 그리 조용한지 답답했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오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생도 "선거 기간에는 백성 무서워했다가 배지 가지면 백성을 무지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민주당에 대한 질책도 잇따랐다.
한 학생은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상대방을 비판하며 네거티브 하는 것에 실망했다.
정치라는 건 대안과 정책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질문이 끝나자 김근태 전 의원은 정치 불신 문제에 대해선
"신뢰에 문제가 있으면 국민 통합이 안 이뤄진다. 신뢰가 있어야 타협할 때 양보도 하고 결론도 난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 삼성 문제에 대해선 "지배구조 상속에 있어서 현격한 문제가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개선되어야 하는데 왜 안되는지"라며 말을 아꼈다.
이날 1시간 30분 동안의 첫 강연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인사를 청하러 왔다.
김 전 의원은 첫 강연에 "반응이 꽤 좋네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한편, 그는 10일 민주평화연대, 민생정치모임 등 50여 명의 전·현직 의원이 참여해 발족하는
(가칭)민주연대에 대해선 "의원에게 물어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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