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 요양의 길목에서 / 백기완
전지요양 가는 길목에서 / 백기완
여기는 지금 어디쯤일까
흙먼지 한참 날리며 달려온
강원도 산비탈 인적 없는 마루턱
벗들은 살점을 뜯어주며
살아서 돌아오라고
살아서 이기고 돌아오라고
몸부림쳤지만
질경이는 밟히는 한이 있어도
바람 따위엔 안 쓰러지는 거
여보게들 거 알지 않는가
까마득한 산중턱엔
더덕 캐는 화전민이
한줌 됫쌀을 사려고
허리 굽는 분노가
산불처럼 산불처럼
목이 타는 덤불 속
그대로 뛰어들어
산사람의 그 짓거릴 하고싶은 건
여보게들 벗이여
정배길 같은 예까지 왔지만
나는 결코 어디에서고
홀로가 아님을
이제사 알겠네그려
저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마다
파랗게 무르녹는 병사들
소나무 병사
오리나무 병사
지난겨울 깡추위에 상한
참나무 병사까지
오라오라 따라오라고
지팡일 던지고
허리를 펴고 따라오라고
그 어느 때였던가
바로 이곳에서
나라를 지키고 세상을 건지려다
쓰러진 영웅들의 전설을
깃발처럼 날리며 일어서는
저 천만 군사의 아우성소리
벗이여
살점을 뜯어준 벗이여
이렇게 인적없는 첩첩산
이 골짝에서 만약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반드시 내 속에 병마 놈들이 박아 놓은 살과 싸워
이기고 돌아가는 줄 알라
그러나 만약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렇게 전해달라
결코 죽어서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저 아우성 소리
저 이름 없는 영웅들의 전설에 묻혀
한 여름엔 비바람과 싸우고
또다시 쓸쓸한 가을이
가랑잎으로 한 잎 두 잎 떨어져도
겨울을 박차고
개나리 진달래 피는
새봄을 위하여
그들 푸른 병사들과 묻혀 있다고
묻혀서 사랑하는 내 조국땅 통일을 위한
-81년5월 추곡약수터로 신병치료 하러 가는 길 산마루턱에서